'AI 심장' HBM 자립에 사활…2026년 HBM3 양산 목표
SK하이닉스와 4년 기술 격차…美 추가 제재 '첩첩산중'
SK하이닉스와 4년 기술 격차…美 추가 제재 '첩첩산중'

미국의 고강도 반도체 규제 속에서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이 D램 자립의 승부수를 띄운다. 중국 1위 D램 제조업체인 CXMT(창신메모리)가 이르면 2026년 1분기 상하이 증시 상장(IPO)을 본격 추진한다. 이 상장은 중국 정부가 기술 혁신 기업을 지원하는 핵심 시장인 상하이 거래소 '커촹반(STAR Market)' 상장을 목표로 한다.
22일(현지시각) 로이터, 거룽후이, 시나닷컴 등 외신에 따르면 CXMT는 이번 상장을 통해 최대 3000억 위안(약 421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 가치를 목표로 한다. 이번 상장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첨단 칩 기술 접근을 강력히 제한하는 가운데, 핵심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끌어올리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행보로 풀이된다. 또한,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전략을 상징하는 대표 행사로도 꼽힌다.
2016년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진 CXMT는 그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확고히 지배해 온 세계 D램 시장에 도전하는 중국의 핵심 주자로 부상했다. 현재 세계 D램 시장은 삼성전자(2025년 점유율 추정 약 43%), SK하이닉스(약 32%), 마이크론(약 20%) 등 3강 체제가 확고하나, CXMT는 약 2~3%의 점유율로 추격 중이다. 기술력에서는 격차가 있지만, 중국 내에서는 유일한 범용 D램 대량 양산 업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CXMT는 이번 IPO를 통해 200억 위안에서 400억 위안 사이의 자금 조달을 모색 중이며, 내부 관계자들은 300억 위안을 중간 목표치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오는 11월 투자설명서를 공개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시장 소식통들은 공모 규모나 기업 가치, 구체적인 일정 등은 시장 수요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CXMT의 상장 추진은 최근 중국 반도체 시장의 열기와 맞물려 주목받는다. 중국판 반도체 지수인 CSI 반도체 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49% 급등하는 등, 업계 전반에 걸쳐 투자 심리가 크게 개선됐다.
앞서 지난 7월, CXMT의 모회사는 상장 전 규제 당국의 지도를 받는 'IPO 상담 절차'에 착수했다. 주관사로는 국영 투자은행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와 CSC 파이낸셜(중신건투증권)이 공동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CXMT 측은 아직 이번 상장 계획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두 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공모는 '반도체 독립'을 지지하려는 중국 본토의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에게서 강력한 수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CXMT는 '국가 전략 테마주'로 불리고, '중국형 삼성전자' 또는 '중국의 하이닉스'를 꿈꾸는 메모리 독립 선언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42억 달러 조달, 목표는 'HBM 자립'
CXMT는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며 SK하이닉스,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D1z (17~19nm 급) 공정 기반의 DDR4, DDR5 D램을 양산 중인 CXMT는 HBM 분야로 투자를 확대하는 중이다.
미국 정부가 2024년 12월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억제하기 위해 HBM 칩 접근을 제한하자, CXMT의 HBM 개발 노력은 더욱 시급해졌다. 이후 CXMT의 R&D 및 생산 능력 확장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전략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는 2023-2024년 자본 지출 규모를 60억~70억 달러로 추산하며, 미국의 추가 수출 통제가 없다면 2025년에는 이보다 5%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CXMT는 현재 중국의 금융 및 기술 중심지인 상하이에 HBM 후공정 패키징 시설을 건설 중이며, 내년 말 생산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설은 AI 및 서버용 D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 내 전략 거점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 공장의 초기 월간 생산 능력은 약 3만 장의 HBM 웨이퍼로, SK하이닉스 생산량의 약 5분의 1 수준으로 보인다.
CXMT는 자사의 'G4(16nm)' 공정을 활용해 2026년 4세대 HBM인 HBM3 양산을 시작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기술 격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SK하이닉스가 2025년 말 HBM4 양산을 목표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약 3~4년의 기술 격차가 있다. 테크인사이츠는 "CXMT가 SK하이닉스보다 약 4년 뒤처져 있다"며 "CXMT는 품질보다 수율 안정화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9월 HBM4 내부 인증을 끝내고 2025년 말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4년의 기술 격차…'내수용' 한계 넘을까
CXMT의 IPO는 세계 메모리 시장이 격변하는 가운데 추진된다. 최근 미국 마이크론은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사 제품을 핵심 인프라에서 퇴출한 지 2년 만에 중국 내 서버 칩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외국 기업의 이탈은 CXMT의 내수 시장 진입 여지를 확대하는 기회 요인이다. 반면, 세계적인 AI 칩 생산 급증으로 스마트폰, PC, 서버용 D램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메모리 업계가 예상치 못한 호황을 맞고 있다. CXMT는 중국 내 클라우드, AI, 국방 목적의 수요를 중심으로 '내수 기반 안정 성장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IPO로 조달하는 자금은 HBM 생산설비 및 R&D 확대, 3D D램 아키텍처 기술 개발, 신규 공정 장비 및 클린룸 확충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다만 위험 요인도 여전하다. 미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 ASML의 DUV/EUV 등 고급 노광장비 접근 제한 문제, 그리고 고질적인 수율 안정화 및 공정 신뢰성 부족 문제는 앞으로 DRAM 단가가 하락하면 자금 회수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중국의 AI 야망과 세계 메모리 공급망 경색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교차하는 가운데, CXMT의 상하이 IPO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정치 상징'이자 기술·자본·정책이 교차하는 '시험대'로 평가받는다. 투자자들의 신뢰는 물론, 중국이 자국의 첨단 메모리 선도 기업을 육성할 역량을 갖췄는지 가늠할 핵심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현재 기술력은 세계 톱3와 비교해 여전히 뒤처져 있지만,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자금 지원 △AI·HBM 중심의 수요 급증 △국내 투자자들의 애국 투자심리라는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리면서 2026년 상반기 상장은 중국 메모리 산업 성장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앞으로 CXMT가 HBM3를 성공적으로 양산해 엔비디아나 AMD 공급망의 일부라도 진입한다면, 중국 AI 반도체 생태계 자립을 가속화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