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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제국' 노리던 사우디, IOC와 협상 결렬로 '삐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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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제국' 노리던 사우디, IOC와 협상 결렬로 '삐그덕'

IOC “전쟁 게임은 올림픽 정신을 해친다”
사우디 “올림픽 흥행 위해선 인기 게임 필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AP통신·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AP통신·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e스포츠 올림픽' 개최 계약이 전격 취소됐다. e스포츠 콘텐츠 기반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종주국이 되려던 사우디의 행보에 차질이 예상된다.

IOC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올림픽 e스포츠 개최에 관한 협력을 종료하기로 상호 합의했다"며 "양측은 이후 e스포츠에 관한 목표를 각자의 방식으로 추구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말 발표했다.

사우디와 IOC는 프랑스 파리 하계 올림픽 개최를 앞둔 지난해 7월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당시 양측은 2025년 사우디에서 IOC 공인 'e스포츠 올림픽'을 개최한 후 이를 올림픽과 같은 정기 대회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총 12년이었다. 올해 초 e스포츠 올림픽의 개최 시점을 오는 2027년으로 2년 미룬데 이어 1년 만에 협력 공동 개최 자체가 불발됐다.
업계인들 사이에선 IOC가 이번 계약을 포기한 이유가 게임에 대한 관점 차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인칭 슈팅(FPS)을 비롯해 상당수의 e스포츠 인기 종목 게임들은 전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IOC는 이들 게임들의 과도한 잔인성 때문에 종목 채택을 거부했다. 산업계가 e스포츠 대회의 인기를 위해 이들 종목의 유치를 주장해 양측이 대립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23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중 e스포츠 세부 종목으로 선정된 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인간 대 인간의 총격전이란 본래 콘텐츠가 '국가 간 화합'이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금지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개발사 크래프톤은 운전을 하고 과녁을 쏘는 일종의 '온라인 스포츠' 모드를 별도 개발했으며 아시안게임 대회 또한 해당 모드로 각 국가대표가 맞붙는 형태로 진행됐다.

IOC의 발표 직전 사우디가 다수의 슈팅 게임 IP를 보유한 게임사 일렉트로닉 아츠(EA)에 투자했다는 점 또한 이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는 요인이다. EA는 '배틀필드'와 '에이펙스 레전드' 등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익숙한 FPS들을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9월 EA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 인베스트먼트 펀드(PIF)와 실버레이크, 어피니티 파트너스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컨소시엄에 회사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IOC와의 협력 중단과 이에 따른 'e스포츠 올림픽' 개최 불발은 사우디의 e스포츠 분야 투자에 있어 적지 않은 손실이 될 전망이다. 사우디는 e스포츠 종목이 될 법한 인기 온라인 게임 IP나 자국민 출신 대형 e스포츠 스타 등을 보유하진 못한 곳이다. 부족한 기반을 오일 머니로 대표되는 자금력과 이에 따른 거대한 대회 규모로 채워왔다.

이후 사우디는 자체적으로 개최해온 연례 게임 대회 'e스포츠 월드컵'에 집중할 전망이다. 세계 각국 프로게임단이 맞붙는 클럽 대항전으로 올해 기준 한국에서도 다수의 게임단이 출전해 젠지 e스포츠가 리그 오브 레전드(LOL) 종목에서, DN 프릭스의 '울산' 김수훈 선수가 철권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내년에는 e스포츠 월드컵 외에도 국가 대항전 'e스포츠 네이션스 컵'도 병행 개최할 계획이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