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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의 아침] ‘공급망은 안보다’…K산업이 서 있는 지정학의 한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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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의 아침] ‘공급망은 안보다’…K산업이 서 있는 지정학의 한복판

동맹 기반으로 재편되는 공급망…한국 기업의 역할이 더욱 부상
산업부 김태우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산업부 김태우 기자
글로벌 공급망이 더는 경제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공급망은 이제 국가의 힘과 안보를 가르는 새로운 전장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장과 방산으로 이어지는 핵심 산업의 이동 경로는 국가의 성장 경로와 안보 지형을 동시에 결정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기술 경쟁을 넘어 동맹 기반의 공급망 재편으로 확장됐고, 이 흐름의 중심에 한국 기업들이 서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공급망이 산업의 논리에서 안보의 논리로 넘어간 순간, 한국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자 교차점이 됐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과 핵심기술 보호 전략은 공급망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대표 사례다. 반도체 장비와 배터리 소재, 전기차 부품을 둘러싼 규제는 사실상 국가 단위의 경제안보 전략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은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주요국의 파트너로 호출되고 있다. 삼성과 LG의 전장 협력, 현대차그룹과 북미 공급망의 재결합, 배터리 3사의 현지화 투자는 모두 지정학적 요구와 산업 경쟁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결과다.

조선과 방산 분야는 더욱 극적이다. 미국의 마스가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며 한국 조선업은 다시 미 해군 공급망의 핵심 후보로 떠올랐다. 잠수함과 군수지원함, 연료전환 선박처럼 고난도 기술이 집중된 분야일수록 한국 기업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수출 증가가 아니라 동맹국의 국방 전략과 연결되는 구조적 변화다. 산업 경쟁력이 국가 신뢰와 직결되는 지점에서 한국 조선·방산은 전례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기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급망이 안보로 편입된다는 것은 곧 기업의 전략이 외교와 정책, 국제질서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는 의미다. 미국과 유럽의 규칙이 계속 바뀌고, 핵심 광물과 첨단기술의 거래가 정치적 변수로 좌우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민첩한 대응과 명확한 전략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공급망 외곽의 중견·중소 부품사는 더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산업 생태계의 균열이 기회 자체를 위협할 위험도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 경쟁력과 외교 전략의 결합이다.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면서도 공급망 다변화와 동맹 네트워크 강화에 나서는 이중 전략이다. 미국과 유럽의 정책 변화를 즉각적으로 해석하고, 중동과 동남아 신흥시장과의 기술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같은 방향을 볼 때에만 공급망 대전환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

세계가 새로운 공급망 질서를 짜는 지금, 한국은 더 이상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그 질서를 만드는 중심선에 서 있다. 산업의 힘이 외교의 무게가 되고, 기술의 깊이가 국가의 신뢰가 되는 시대로 들어섰다. 공급망은 안보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국가와 기업만이 다음 10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