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대륙 행보, 美 규제 뚫을 '중국형 가우디 2E' 전격 공개
단일 칩 버리고 '맞춤형 칩렛' 선회…차이나모바일과 슈퍼노드 동맹 결성
단일 칩 버리고 '맞춤형 칩렛' 선회…차이나모바일과 슈퍼노드 동맹 결성
이미지 확대보기"인텔의 지난 40년이 중국과의 '만남'이었다면, 앞으로는 중국 산업 깊숙이 파고드는 '결합'이 될 것입니다."
미국 반도체 제국 인텔의 수장 립부 탄(Lip-Bu Tan) CEO가 중국 충칭에서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기술적 이상주의를 외치던 전임 팻 겔싱어(Pat Gelsinger)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철저한 '실리(實利)'와 '시장 친화적' 전략으로 중국 시장을 사수하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중국 충칭에서 열린 '2025 인텔 기술 혁신 및 산업 생태계 컨퍼런스'는 립부 탄 체제의 인텔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었다. 지난 3월 취임한 탄 CEO와 9월 합류한 앨런 왕(Alan Wang) 인텔 차이나 회장이 공식 석상에 나란히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 매체인 21세기경제보도와 텐센트 테크 등에 따르면, 탄 CEO는 유창한 중국어로 연설하며 중국 파트너사들과의 스킨십을 과시했다. 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도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모놀리식' 고집 꺾고 '칩렛' 유연성 택했다
왕 회장은 개최지인 충칭의 독특한 산악 지형을 인텔의 차세대 '18A(1.8나노급)' 공정 구조에 빗대 설명했다. 충칭의 입체적인 공간 활용이 마치 18A 칩 하단의 '후면 전력 공급층'과 상단의 '신호층'이 수직으로 적층 된 구조와 닮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비유를 넘어, 인텔이 고객이 원하는 대로 GPU(그래픽처리장치), NPU(신경망처리장치) 등을 섞어 '맞춤형 칩(Customized Chips)'을 제공하겠다는 유연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적과의 동침'…엔비디아 손잡고 ASIC 시장 정조준
립부 탄 CEO의 등판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는 경쟁사와의 관계 재설정이다. 인텔은 이번 행사에서 AI 전략의 핵심 축으로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꼽았다. 지난 9월 중순, 엔비디아는 인텔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양사의 파트너십이 공식화됐다. CPU 시장의 제왕 인텔이 AI 가속기 시장의 절대강자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텔이 자존심을 굽히고 실질적인 생태계 확장을 택했음을 시사한다.
탄 CEO는 특히 주문형반도체(ASIC) 사업 조직을 재편하며 중국 고객사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친 카티 전 CTO가 오픈AI로 이적하며 생긴 리더십 공백을 탄 CEO가 직접 메우며, AI 및 첨단 기술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점도 인텔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현장에는 레노버, 화웨이 출신들이 설립한 엑스퓨전(xFusion), 럭스쉐어 등 중국 내 1만 5000여 파트너사들이 집결해 인텔의 생태계 장악력이 여전함을 과시했다.
中 규제 맞춤형 '가우디 2E'로 틈새 공략
가우디 2E는 24개의 GPU 코어와 96GB 메모리를 탑재해 거대언어모델(LLM) 추론에 최적화됐다. 주목할 점은 카드 간 연결 대역폭을 초당 225GB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최신 플래그십 모델 대비 다소 낮춘 수치로, 고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규제 테두리 안에서 중국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적점'을 찾은 것으로 분석된다. 인텔은 단일 기기부터 최대 3대(24 카드)까지 확장 가능한 유연한 배포 옵션을 제공해 중국 데이터센터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차이나모바일과 '분리형 슈퍼노드' 구축…인프라 표준 선점
인텔은 단순 칩 공급을 넘어 데이터센터 아키텍처 표준 전쟁에도 뛰어들었다. 이날 공개된 '개방형 분리 슈퍼노드(Open Disaggregated Supernode)' 아키텍처는 연산 랙과 스위치 랙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확장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고객은 필요에 따라 GPU를 8개에서 최대 1024개까지 늘리며 거대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
인텔은 이미 중국 최대 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의 클라우드 자회사와 손을 잡았다. 양사는 제온 6 프로세서와 32개의 가우디 카드를 탑재한 분산형 클러스터를 구축 중이다. 이는 인텔의 하드웨어가 중국 국가 핵심 인프라의 표준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알박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30년 전 중국에 첫발을 디뎠던 인텔이 이제 18A 공정과 칩렛, 그리고 엔비디아와의 동맹을 무기로 다시 한번 '대륙의 AI 심장'을 노리고 있다. 립부 탄의 실리주의가 중국 시장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업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