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구 3배 규모 거대 생태계, 만리방화벽 넘어 세계 소비·문화 영토 확장
검열 지침이 곧 '당의 명령'… 서구권의 중국 규제는 도리어 '통제 모델' 닮아가는 역설 초래
검열 지침이 곧 '당의 명령'… 서구권의 중국 규제는 도리어 '통제 모델' 닮아가는 역설 초래
이미지 확대보기‘디지털 영토’ 확장하는 중국… 11억 네티즌이 세계 경제 뒤흔든다
중국 인터넷이 국경 안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라는 인식은 과거의 유산이다. 11억 명에 육박하는 중국 네티즌은 이제 안방에 앉아 전 세계 공급망을 조절하고 소비 지도를 다시 그리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우리 경제와도 밀접한 이들의 영향력을 세 가지 핵심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현재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약 10억 9000만 명이다. 이는 미국 전체 인구(약 3억 4000만 명)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만약 이들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인도,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된다.
이 거대한 사용자 집단이 특정 상품에 관심을 두거나 불매 운동을 벌일 때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력은 일개 국가의 경제 정책보다 강력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소비 패턴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거름이 되어, 중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된다.
둘째, 중국 네티즌의 구매력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Shein) 등 이른바 ‘C-커머스’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 11억 명의 내수 시장에서 검증된 초저가 공급망은 이제 로스앤젤레스의 대학생과 서울의 직장인 장바구니까지 점령했다.
특히 중국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는 실시간으로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결정한다. 중국의 인플루언서가 소개한 제품이 하룻밤 사이에 품절되고, 이에 맞춰 전 세계 공장의 가동률이 조정되는 식이다. 이는 중국 인터넷이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전 세계 물류와 제조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지배하는 ‘통제 센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과거에는 구글이나 트립어드바이저가 관광지 맛집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중국의 ‘샤오홍슈(RedNote)’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이 샤오홍슈에 올린 ‘서울 성수동 맛집’이나 ‘제주도 숨은 명소’ 정보는 즉각적으로 중국 관광객의 발길을 돌린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 뒤셀도르프나 라오스 같은 외딴 관광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중국 네티즌이 인터넷상에서 형성한 여론과 취향이 전 세계 서비스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구조다. 리우 기자는 이를 두고 "만리방화벽은 정보를 가두는 성벽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에너지를 응축시켜 밖으로 뿜어내는 거대한 압력솥과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중국 인터넷은 단순한 ‘내수용’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 인터넷 사용자가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영향력 집단이 되어 전 세계 공급망과 소비 트렌드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트랜션은 아프리카 최대 휴대전화 공급업체로 자리 잡았고, 패션 기업 쉬인은 로스앤젤레스의 의류 트렌드를 주도하는 세계 최대 패션 유통업체가 됐다.
특히 지난해 미국 정가를 뜨겁게 달궜던 ‘틱톡(TikTok) 금지법’ 논란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씨가 튀었다. 미국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틱톡의 숨통을 조이자, 정작 미국 청년들은 또 다른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샤오홍슈(RedNote)’로 대거 자리를 옮기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2025년 초, 미국 행정부가 틱톡의 강제 매각 또는 서비스 중단을 압박하자 미 본토에서는 이른바 ‘틱톡 난민’이 쏟아져 나왔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들이 인스타그램이나 엑스(X) 같은 서구권 앱이 아닌, 중국 내수용 서비스로 여겨졌던 샤오홍슈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시 미국 앱스토어에서는 샤오홍슈의 영문 버전인 ‘레드노트(RedNote)’ 다운로드 횟수가 하루 만에 수십 배 폭증하며 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디지털 망명’으로 규정한다. 미국 이용자들이 자국 정부의 규제를 피해 스스로 중국의 디지털 생태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폐쇄적인 ‘만리방화벽’에 갇혀 낙후됐을 것이라 믿었던 중국 인터넷의 역동성에 미국 사용자들이 오히려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미국 청년들이 샤오홍슈에서 발견한 것은 철저한 검열만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알고리즘, 세련된 사용자 환경(UI), 그리고 무엇보다 틱톡보다 한 차원 높은 ‘검색 엔진’으로서의 기능에 매료됐다. 서구권 인터넷이 광고와 가짜 뉴스에 시달리는 동안, 중국 네티즌들이 그들만의 폐쇄된 환경 안에서 독자적으로 진화시킨 ‘디지털 문법’이 오히려 서구인들에게 새롭고 효율적인 표준으로 다가간 것이다.
검열과 저항의 공존… "당의 두려움이 인터넷에 적힌다"
한편 리우 기자는 이런 이면에 중국 인터넷을 읽는 법으로 '정교함'과 '회의주의'를 지적했다. 공식 발표문보다 '삭제되는 게시물'이나 '검열 지침'이 당국의 실제 고민과 공포를 더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한 '탕핑(躺平·누워 있기)'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번아웃을 겪는 밀레니얼 세대의 공통 언어가 됐다. 웨이보(Weibo)의 신조어는 엑스(X·옛 트위터)로 퍼지고, 도우인(Douyin) 영상은 틱톡을 통해 전파된다.
하지만 현장의 정보 접근성은 악화하고 있다. 리우 기자는 "2023년 중국 내 미국인 유학생 수는 700명 수준으로, 10년 전 1만 5000명에 비해 95% 이상 급감했다"며 "현지를 직접 겪지 못한 가짜 분석가들이 온라인을 점령하면서 중국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지난 2020년 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게재한 '중국은 아시아의 진짜 병자'라는 기고문은 양국 간 미디어 전쟁을 촉발해 수많은 외신기자가 추방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미국 인터넷의 ‘중국화’… 기술 권위주의의 역설
가장 큰 문제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이 오히려 중국의 통제 모델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리우 기자는 미국 정부가 2024년 대선 국면에서 젊은 층 표심을 잡기 위해 틱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지정학적 트로이 목마'로 규정해 금지하려 했던 이중성을 꼬집었다. 미국의 블로거 마이크 매스닉은 이를 두고 "미국 정치권이 중국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중국의 검열 모델을 따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물들과 정치 권력의 결탁은 민주적 감시를 벗어나 사생활을 감시하고 주의력을 착취하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리우 기자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시대에 '진실 속에 사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기술 권력에 맞선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리우 기자의 분석은 중국 인터넷을 단순한 규제 대상이 아닌, 인류가 직면한 '기술 권위주의'라는 보편적 위협의 선행 사례로 본다. 10억 명의 네티즌이 쏟아내는 데이터와 그에 맞선 통제의 기술은 이미 국경을 넘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중국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대가는 결국 우리 인터넷 환경의 퇴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