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영화는 새로운 해석과 상상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할 때는 창작적인 설정과 역사적인 기록은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나 국가기관의 배후설 같은 중대한 의혹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극적 상상인지 관객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74년 사건에는 수사와 재판을 거친 공식의 기록이 있다. 다른 해석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금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과 ‘사실’은 전혀 다르다.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관객에게 사실처럼 각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책임이 따른다.
육영수 여사의 피격은 단순한 영화 소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죽음이었다. 당시 미국 대사관 보고에도 국민적 충격과 대규모 조문 행렬이 기록될 만큼 사회적인 파장이 컸다.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이어가더라도 희생자의 죽음과 국민의 슬픔까지 흥미 요소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에는 정부 정책 외에도 앞선 정부의 개발 구상, 미국의 지원, 한일 국교정상화 자금, 기업과 노동자의 노력,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전과 중동 건설 등의 요인이 작용했다. 박정희의 역할은 인정하되, 모든 성과를 한 사람에게 귀속하는 것은 정확한 역사 서술이 아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5천 년 가난을 앃어 낸 중요 역사적 성과지만 권위주의 통치와 정치적 억압, 인권침해, 노동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과오 때문에 경제개발의 성과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공과를 함께 기록하는 태도가 진영의 찬양이나 비난보다 훨씬 성숙한 역사관이다.
흥미로운 지난 장면은 박정희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경제적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독재와 인권침해를 비판했다. 이는 과거를 지우기보다는 공과를 함께 기록하고 갈등을 화해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를 비판하면서도 인간을 절대적인 천사와 악마로 나누는 데 거리를 뒀다. 이 관점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공적을 지우거나 과오를 미화하면 결국 역사적 이해는 빈약해진다. 복잡한 인물일수록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역사다.
‘암살자(들)’ 논쟁의 핵심은 영화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다. 의혹이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구별되어 관객에게 제시되는지가 중요하다. 창작자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관객이 이를 역사적 결론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면 사회적인 책임 논쟁들은 피하기 어렵다.
논란이 된 것은 영화와 관련해 육영수 여사의 피격 장면을 연상시키는 홍보 상품이었다. 실제 총격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상품화했다면 단순한 마케팅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과와 남은 상품 폐기는 당연하며, 역사적 비극을 다룰 때 더욱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
논란은 영화의 관심을 높이고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희생과 역사적 상처를 자극하는 장사가 반복되면 사회가 비극을 소비하는 구조에 빠질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상업적 성공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역사적 사실을 희생시킬 권리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는 우리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 현대사의 기록이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도 기억해야 할 비극이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를 허물거나, 미화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기록하고 공과를 평가하며, 죽음마저 흥행상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적 정의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