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애플의 혁신 서사는 언제나 애플의 이름으로만 쓰인다. 신제품 발표 무대에서 공급사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는다. 한 고객만 바라보고 막대한 투자를 감수한 공급사의 헌신 위에서 혁신이 완성되는데도 영광은 애플이 가져가고 위험과 비용은 공급사가 지는 구조는 오래도록 바뀌지 않았다. 핵심 부품을 책임지는 공급사가 완성품의 성패 앞에서는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 애플식 분업의 현실이다.
이 구조는 계약서에서 시작된다. 2014년 애플에 사파이어 소재를 납품하려던 미국 GT어드밴스트는 파산 신청 뒤 법원에 제출된 자료로 계약 내용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애플 외 다른 업체에는 제품을 팔기 어렵게 묶는 독점 조항, 위반 시 건당 수천만 달러대 위약금 조항이 공급사의 손발을 옭아맸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이매지네이션은 2017년 애플이 자사 기술을 쓰지 않겠다고 밝히자 주가가 하루 만에 폭락하며 존립이 흔들렸다. 공급사가 애플 한 곳에 목을 매는 순간, 계약은 대등한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가 된다. 위약금이 두려워 다른 고객사를 찾지 못하고, 애플이 주문을 줄이면 설비투자는 고스란히 공급사의 부담으로 남는다. 애플이 내세우는 '혁신'의 이면에는 이런 불균형한 계약이 있다.
가격 협상은 더 노골적이다. 애플은 대체 공급처를 거론하며 해마다 단가 인하를 압박하고, 불량 비용까지 공급사에 떠넘긴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반복돼 왔다. 가격 협상력이 없는 공급사는 물량을 잃을까 목소리를 낮춘다. 그렇게 쥐어짠 원가 위에서 애플은 영업이익률과 시가총액을 자랑한다. 공급사의 마진은 얇아지고 협상 테이블의 힘은 애플로만 기운다. 공급사가 혁신의 파트너가 아니라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관행이다. 이것을 혁신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나마 그 교체조차 제때 되지 않는다. 교체용 재고가 부족해 불량 판정을 받고도 한 달가량 기다리거나, 환불 후 재주문을 권유받았다는 사례가 나온다. 재주문하면 내년 1월에나 받는다. 무상 교체를 약속해 놓고 물량은 준비하지 못한 셈이다. 소비자는 불량품을 쥔 채 기다려야 하고, 애플은 기다림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뿌리에는 수율이 있다. 업계에서는 아이폰 듀오의 조립 수율이 60% 안팎에 그친다고 본다. 10대를 만들면 4대는 팔 수 없다는 뜻이다. 출시 전부터 이런 수치가 흘러나왔는데도 애플은 서둘러 출시를 밀어붙였다. 100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뤄진 힌지(hinge)가 발목을 잡았고, 안정화에는 반년에서 1년이 걸린다는 관측이다. 버려지는 부품의 손실을 누가 감당할지 애플은 말이 없다. 소비자에게는 교체를 안내하면서 공급사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애플은 미성숙한 수율과 덜 검증된 힌지로 서둘러 제품을 내놓았고, 그 부담을 소비자와 공급사에 나눠 지웠다. 청구서는 결국 소비자의 기다림과 공급사의 단가 압박으로 돌아온다. 혁신은 무대 위에서 박수받는 일이 아니라 문제가 터졌을 때 끝까지 책임지고 파트너와 이익을 나누는 태도에서 증명된다. 부품 공급사의 헌신을 외면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시험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라 특권일 뿐이다.
박상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park03@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