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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벽깨는 국가차원 구조조정해야 한국경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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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벽깨는 국가차원 구조조정해야 한국경제 살아"

[스페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신용없는 사람에 카드 너무 많이 내준 것이 카드사태 본질


개인 정보빼내 돈벌려는 세력 막지 못한 금융당국 큰 실수


▲정덕구니어재단이사장(전산업자원부장관)
▲정덕구니어재단이사장(전산업자원부장관)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 기자] 동북아시아 전략 연구를 목적으로 지난 2006년 12월 창립한 니어재단은 그동안 꾸준히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최근에는 ‘한국경제, 벽을 넘어서’를 출간해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와 정책적인 해법을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니어재단 정덕구 이사장은 지난 2000년에 산업자원부 장관을 그만둔 후 서울대 특임교수를 거쳐 베이징대에서 한국이 국난을 극복한 과정을 강의하기도 했다. 잠깐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으나 2년 만에 사퇴하고 중국에서 본격적인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국제금융전문가로서 중국의 일민대학에서 국제금융을 가르치는 사이 어느새 중국전문가가 된 정덕구 이사장. 세계의 관심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는 요즘, 그의 말 한마디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중국 경제를 ‘모순(矛盾)’으로 진단하는 정덕구 이사장을 만나 중국경제의 미래와 2014년 한국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순수 민간 씽크탱크인 니어재단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처음에는 중국경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다가 달러통화가 무너진 후 통화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어 경제 전반을 다루게 되었어요. 게다가 북한 핵실험, 천안함 사태, 연평도 도발 등이 일어나자 외보안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어요. 니어재단은 자연스럽게 경제와 외교안보를 두 축으로 해 매년 두 번의 세미나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당면 과제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경제학자 40명, 외교안보 전문가 30명 등 70명이 참여해 순수 민간의 힘으로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습니다.”

외환위기 후 금융개혁 주도


낙후된 시스템 아직도 방치


금융생태계 잘못 되어 있어


-요즘 카드회사의 정보유출로 국민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문제 발생 원인을 진단해주시고 해결책을 말씀해주십시오.

“서양에서는 일반인의 신용을 체크해 카드를 까다롭게 내주는데 반해 우리는 카드를 너무 쉽게 내주고 관리가 소홀합니다. 신용카드가 너무 많은 게 근본적인 문제이지요. 신용사회에서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까지도 신용카드를 내주는 바람에 카드깡이 일어나는 등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어요. 무엇보다 금융행위와 연결되어 신용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카드회사들이 돈벌이에만 몰두하고 정작 중요한 신용관리를 외면한다면 이번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 터질 수밖에 없어요. 산업이 소프트화 해지는 연성경제로 가는 과정에서 서비스 자유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진입장벽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느슨해지고 매뉴얼이 약해지기 쉬워요. 카드사로부터 정보를 빼내어 돈을 벌려고 하는 세력이 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한 것은 금융당국의 큰 실수입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에서 연구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중국의 관심은 자본개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어요. 사회과학원은 개방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기관으로, 개혁파들과 개방파들의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어요.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2단계 개혁개방을 하자 보수파들의 반발이 거센데, 외국의 저명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하며 보수파 지식인을 돌려놓아야겠다고 해서 저를 부른 것 같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내부 모순과 위협, 갈등요소가 많기 때문에 자기네 속을 바깥에 드러내기를 지극히 싫어합니다. 외국인이 사회과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적은 있어도 저처럼 연구고문으로 위촉해 예우를 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가 되었습니다. 우리와 이웃한 국가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중국 경제의 현주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중국은 속도가 늦춰지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자전거와 같습니다. 속도가 성장률입니다. 중국은 고속성장 체제를 유지하지 않으면 내부 모순과 갈등, 위험요소가 폭발하게 되어 있어요. 중국 정부는 이 속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언젠가는 위험요소를 관리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 것입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제2단계 개혁개방으로 가면서 전기밥솥에서 공기압을 빼내듯이 13억의 인구를 먹이고 입히는 게 중요합니다. 중국 정부는 현 체제만 가지고 앞으로 지속가능하게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많습니다. 현 상태를 내버려두면 폭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개혁개방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중국경제에 위험요소가 있고 갈등이 항상 존재하고 모순덩어리의 체제이지만 그래도 상당기간 안정적으로 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체제와 국영기업체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결국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세계 제1의 달러 보유국이지만 부채도 엄청난 것으로 압니다. 중국이 국가주도하에서 연평균 7% 이상의 고도성장을 해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가능할까요?

“원래 개발도상국가가 발전해서 성숙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성장률은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한국도 80년대 8%의 고도성장을 했지만 지금은 3%대의 성장률에 머물러 있습니다. 문제는 성장률이 떨어질 때 부실채권이나 부실금융기관이 뇌관이 되어 폭발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이 제2단계 개혁개방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통일은 환상이 아니다


北, 한국과 대화채널 갖고


서방세계와 친해지고 싶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북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통일은 환상이 아닙니다. 북한이 체제적으로 취약한 게 사실이지만, 외부의 강압에 상당 기간 견딜 수 있어요. 다만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얼마만큼 실수를 하지 않고 공고하게 끌고 나가느냐에 따라 개혁개방의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 55%가 본인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국민들이 통일을 원할까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열강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통일을 쳐다보고 있는데 국제적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이 빨리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통일이 빨리 올 수 있는 여건을 갖추려면 남북한 관계에서 우리가 영향력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이 안 도와주면 북한이 망할 정도의 영향력이 구축되면 통일은 쉽게 올 것입니다.”

-남북통일과 관련해 중국과 미국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북한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문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북한의 실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상당한 영향이 있다는 것도 오해이고, 미국이 북한을 때리면 북한이 무너진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적절한 타협이 있어야 남북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요. 북한은 굶으면서 10년을 버텨왔는데 얼마나 더 버틸지 모릅니다. 김정은이 불장난을 치다가 스스로 실수해 무너져 쫓겨나는 건 상당히 가변적인 상황입니다. 미국과 중국 어느 나라도 지금 북한에 대해 핵문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견제를 심하게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기 때문에 북한이 우리 한국과 대화 채널을 갖고 서방세계와 친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생존이 어려운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원조라든지, 안전보장이라든지 대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남한이나 미국 중국의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북한이 어떻게 무너지고 통일이 될지 쉽게 가늠할 수 없으므로 착실히 지금부터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이 낙후되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떻게 금융개혁을 해야 할까요?

“외환위기 직후 금융개혁을 주도하면서 지켜본 금융의 낙후가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요. 모두 금융 생태계가 잘못되어 그렇습니다. 금융 생태계 전체를 보면서 문제를 찾아야지, 그 안에 있는 돌, 시냇물, 나무와 같은 개별 요소를 가지고는 금융개혁이 되지를 않습니다. 금융기관 임직원, 금융기관 노조 등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손대기 어렵지만 금융 생태계 전체를 보면서 변화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하게 됩니다.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에도 금융 생태계가 낙후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한국은 그들보다 훨씬 더 낙후돼 있으므로 금융 생태계적 변화를 가져오도록 개혁을 서둘러야 합니다.”

중국경제는 '모순'의 경제


정부주도 제2의 개방 준비


아베노믹스 선택은 불가피


-아베노믹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본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아베노믹스는 불가피했어요. 더 계속가다가는 일본경제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여론이 돌면서 아베가 치고 나왔어요. 어떤 경우든 아베노믹스가 성공할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환율이라든지, 금융자금이라든지 이를 중심으로 해서 주가가 오르고 환율이 안정되어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개별기업이나 산업이 적응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따라서 아베노믹스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이사에 재선임 되셨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1년에 4번씩 이사회가 열립니다. IFRS에서 회계기준을 만들어 이사회에게 넘겨주면 이사들은 승인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사실 아주 골치 아픈 자리이지요. IFRS의 결과가 대한민국 기업에 영향을 미치니까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와 정책적인 해법을 제시한 연구서 '한국경제, 벽을 넘어서'를 출간하셨는데….

“1년에 두 권씩 책을 내고 있어요. 1년 내내 세미나를 해 그 결과를 가지고 책을 출간하는 것이지요. 박근혜 정부가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경제를 성장시키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어요. 왜 노력해도 안 될까요. 평범한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이고 서로 간에 꼬여 있기 때문이지요. 박 대통령이 심플하게 접근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까 거대한 벽이 막아서더라는 거죠. 박 대통령에게 벽을 벽으로 보고 벽을 어떻게 부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접근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2014년 세계 경제 전망과 한국 경제의 대응은?

“기술적으로 반등이 있을 거예요. 테크니컬 리바운드가 있는데 선진국이 뒤처지고 개도국이 중심이 되어 끌고 왔습니다. 선진국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금년이 지난해보다 나을 것입니다. 2014 하반기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경기가 리바운드 하더라도 한국경제는 3.5% 정도 성장할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먹구름이 몰려오면 벽을 넘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2014년 한국 경제 전망과 단기 경제정책 과제를 제시해주시죠.

“단기적으로 보면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거나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산업화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걸 뛰어넘어 세계 경제의 핵이 되는 중심국가가 되려면 현재의 성장률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펼쳐야 가능합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과제로 장기 추세선의 하락을 우려하시는데….

“장기 추세선은 어느 나라나 선진국이 되면 하락합니다. 임금이 오르고 자본투입량이 제한되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장기 추세선이 하향이 되지만 특히 한국은 하향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제입니다. 경제성장률이 8%대에서 3%대로 오는데 시간이 얼마 안 걸렸어요. 이처럼 장기 추세선의 급속한 하락을 막으려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볼 때 한국은 무너질 나라는 아니지만 상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성장률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어요. 제도와 관행이 뒤떨어지는 게 너무 많고 금융이나 거시경제의 정책운영에서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또 기본적으로 고령사회, 산업의 노쇠화, 국회나 정부의 정책프로세스가 낙후되어 있어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이 문제를 과감하게 고쳐서 정리하고 넘어가야 희망이 보입니다.”


행시 10회 출신…IMF협상대표로 외환위기 극복 기여


■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누구인가?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948년 충남 당진군에서 태어나 배재고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1976년 국세청에 입사했다. 그후 재무부 경제협력국장, 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 등을 거쳐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로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으며 산자부 장관 재직 때는 한국의 중장기 통상산업 정책과 에너지 정책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덕구 이사장은 “IMF협상 당시 속된 표현으로 송장을 만지고 살인범이 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결과적으로 그 압박감이 국민에게 힘이 되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면서 “말을 잘해서 협상에 성공한 게 아니라 우리 준비상태가 철저했고, 국민들이 자기를 희생하며 국난을 극복하자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2001년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을 맡았으며, 중국 베이징대와 일민대 초빙 교수를 지냈다. 2007년부터 재단법인 니어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거대 중국과의 대화’, ‘외환위기 징비록’,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기로에 선 북중관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