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이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면, 일상 또한 자연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면 삶은 더욱 즐거워 질 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모든 일상생활이 억눌린 듯 답답하고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우울감을 떨쳐 버리는 데에는 자연만 한 것도 없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30분간 숲길 2㎞를 걷는 것만으로도 경관, 햇빛, 피톤치드 등 다양한 숲의 치유 인자로 인해 긴장, 우울, 분노, 피로 등의 부정적 감정을 70% 이상 감소시킨다고 한다. 숲은 오감을 자극해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조절해 면역력을 높여주므로 숲을 찾는 것만으로도 고립과 격리로 인한 답답함이나 우울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나의 하루는 늘 도봉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도봉산을 바라본다. 날마다 바라보는 산이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다가온다. 어느 날은 쨍한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숄을 걸친 여인처럼 안개를 산허리에 휘감고 은근한 눈빛을 건네기도 한다. 아침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점점 초록으로 짙어지는 매혹적인 산 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집을 나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은 마음의 문을 열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깨닫게 해주기도 하고, 자연의 대상들을 감성적인 눈으로 보고 관찰하게 되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비밀을 은밀히 가르쳐 주기도 한다.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은 결코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다. 자연을 관찰하는 행위,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넉넉히 채워주기 때문이다.
일부러 꽃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집 근처의 소공원이나 가까운 숲을 찾아 오감을 열면 자연스럽게 자연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새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에 귀가 열리고 풀과 나무, 꽃들이 눈을 크게 뜨게 만들고 꽃향기, 숲 향기가 코를 뻥 뚫리게 해 줄 것이다.
"토란국에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거기에다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니 팔여(八餘)가 아니겠나."
김정국이 말한 팔여(八餘)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연친화적인 삶인 셈이니 한 번 곱씹어 볼 만하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