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타계로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문제가 재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주요 기업들의 상속세 납부 사례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용, 불필요 지분 매각 통해 상속세 재원 마련할 듯
1일 금융계에 따르면 고 이건희 회장 배우자 홍라희 전(前)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10조 원 중반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3일 종가를 기준으로 고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 총액 18조2250억 원에 각종 할증과 공제를 합하면 총 10조6000억 원이라는 금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지난 2017년부터 보수를 일체 받지 않는 '무보수 경영'을 펼쳐오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재계는 이 부회장이 지배구조 유지에 꼭 필요하지 않은 지분을 매각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주요 기업 상속세 마련 어떻게?
재계 등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7~8월 한진칼 보유 주식 80만 주를 담보로 약 400억 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조 회장이 그동안 연봉과 배당 등으로 재원을 마련해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항공업계 불황으로 수입이 줄어 현금 마련을 위해 대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올 초 부친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작고로 ‘상속세 폭탄’을 맞았다. 계열사 지분과 토지 등을 넘겨받은 대가로 신 회장 등 상속인들이 떠안은 상속세는 30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업계는 신 회장이 배당과 보수만으로 상속세를 전부 내긴 힘들 것으로 보고 분할 납부나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을 통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금껏 가장 많은 상속세를 낸 기업인은 구광모 LG 회장이다. 구 회장은 지난 2018년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작고한 이후 구 전 회장의 (주)LG 지분 8.8%를 상속받았는데 상속세가 무려 7200억 원에 달했다. 구 회장은 5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는 ‘연부연납’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문학적 상속세에…韓 기업 위기 직면"
천문학적인 상속세 규모에 중소·중견기업 중에선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의 김준일 전 회장은 4000억원 안팎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에 결국 지난 2017년 홍콩 사모펀드에 회사를 매각했다.
손톱깎이 세계 1위였던 쓰리세븐도 비슷한 사례다. 2008년 창업주 김형주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 해 회사를 매각했다.
천문학적인 상속세에 대한 우려로 지난 25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삼성 상속세 없애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초 "한국 상위 25대 기업이 내야 하는 상속세만 210억달러(약 24조원)에 이른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로 한국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오만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h3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