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부진 넘어 과잉 생산 국면 진입했다는 지적 제기돼

세계 전기차 시장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배력을 자랑해왔던 테슬라가 최근 뜻밖의 행보에 나섰다.
미국은 물론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도 전기차 가격을 일제히 인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불과 3개월 만에 두 번째 가격 인하에 나서면서 관련업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테슬라가 최근 보이고 있는 행보는 부진한 수요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테슬라가 당면한 더 심각한 문제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수요가 줄어든 것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하지만 과잉 생산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
이는 테슬라의 가격 인하 행보가 단기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은 물론 감산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서 주목된다.
◇테슬라 모델3‧모델Y 가격 대대적 인하
테슬라의 가격 인하는 여러 시장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테슬라는 미국에서 지난해 21~31일 모델3와 모델Y 신차 구매자에게 7500달러(약 945만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지난달 초에서도 같은 제품을 대상으로 3700달러(약 466만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데 이어 한달도 되지 않아 할인폭을 두배로 확대한 셈이다.
다른 업체라면 몰라도 세계 1위 전기차 브랜드라는 시장 지배력을 등에 업고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왔던 테슬라가 취하고 있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테슬라가 수요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반증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이유다.
테슬라는 지난해 10월 가격을 내린 바 있는 중국에서도 모델3와 모델Y의 가격을 최대 13.5% 인하했다. 지난해 인하와 이번 인하를 합치면 현재 중국에서 살 수 있는 모델3와 모델Y의 가격은 지난해 9월과 비교해 최대 24% 내린 셈이다.
테슬라 한국법인인 테슬라코리아도 2년 만에 주요 모델의 가격을 12%가량 인하해 모델3(스탠다드 레인지 플러스 RWD)은 6434만원, 모델Y(롱레인지)는 8499만9000원으로 각각 내렸다.
일본에서도 지난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모델3와 모델Y 가격을 10% 인하했고 호주에서도 역시 이 두 모델의 가격을 인하했다.
◇테슬라, 과잉생산 국면 맞았나
특히 테슬라가 중국 시장에서 잇따라 파격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있는 배경과 관련해서는 중국 정부가 새해부터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의 시행을 중단한데 따른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조금이 없어지면 판매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니 가격 인하 카드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
가격 인하는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테슬라 입장에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출현을 감수하면서도 테슬라가 가격 인하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은 수요 감소에 대한 대응 차원일뿐일까.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가격 인하 조치는 기존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들이 과잉생산의 결과로 쌓인 재고를 밀어내기 위해 흔히 사용해온 전략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시적인 가격 할인 조치라는 테슬라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7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일시적인 가격 인하로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잉 생산으로 인한 재고 적체 문제가 테슬라 입장에서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테슬라가 ‘과잉 생산’으로 인한 위기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추측되는 시점은 지난 2021년 10월 미국 최대 렌터카업체 헤르츠로부터 10만대에 달하는 모델3을 주문 받고 부터라는 지적이다.
10만대는 당시 기준으로 테슬라의 전체 납품 물량 가운데 무려 12%를 차지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비즈니스인사이에 따르면 당시 테슬라 투자자들은 이 소식을 엄청난 호재라며 반겼지만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테슬라가 과잉 생산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같은 우려가 가격 할인 같은 것은 거의 모르고 살았던 테슬라가 최근들어 가격 인하에 전방적으로 나서면서 마침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
◇1분기에도 가격 인하 지속할지 주목
이와 관련, 미국 자동차시장 조사업체 에드먼즈의 이반 드루어리 선임연구원은 “과잉 생산에 따른 재고 문제를 가격 할인으로 해소하려는 전략은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주로 활용했던 전략이란 점에서 전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면서 “그러나 기존 완성차 업체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겠다면서 가격 할인 전략을 비판해온 테슬라가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전철을 밟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1분기에 테슬라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즉 가격 인하를 1회성 조치로 끝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가격 인하 조치를 이어갈 지가 테슬라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도이체방크의 에마누엘 로즈너 자동차시장 전문 애널리스트는 한발 더 나아가 “테슬라의 가격 인하 행보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테슬라 전문 분석가로 유명한 미국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도 최근 펴낸 투자노트에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논란만 일으키면서도 트위터 경영에 올인하면서 테슬라 경영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테슬라는 올 한해 기로에 놓인 상황”이라면서 “테슬라는 제2의 성장기로 넘어가는 길로 들어서느냐, 세계 1위 자리에서 고꾸라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