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교황 이름으로 ‘레오 14세’를 택했다.
레오 14세는 사상 미국인 출신 교황이라는 기록과 함께 최초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 교황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9일 미국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이는 교황직을 미국인에게 맡기지 않아온 바티칸의 오랜 암묵적 전통을 사실상 무너뜨린 결정으로 평가된다. 가톨릭 내에서 미국은 현실 세계의 경제·정치적 영향력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우려로 교황 후보군에서 항상 배제돼왔기 때문이다.
교황 선출 직후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레오 14세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인사로 첫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평화의 메시지가 여러분의 마음과 가족,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며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라틴어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어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악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연대를 강조했고 프란치스코 전 교황에 대한 경의도 표했다.
지난 1955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레오 14세는 수학을 전공한 뒤 신학 교육을 받고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했다. 이후 약 20년 동안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치클라요 교구 주교로 임명된 뒤 지난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대체로 계승할 인물로 평가된다. 바티칸 전문기자들이 운영하는 ‘콘클라베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환경 보호, 이민자와 빈곤층 지원, 교회 내 여성 참여 확대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여성 부제 서품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낙태와 안락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며, 페루 주교 시절에는 젠더 교육 도입에 반대하며 “젠더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존재하지 않는 성별을 만들어 혼란을 초래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번 교황 선출은 지난 7일 시작된 콘클라베에서 네 번째 투표 만에 결정됐다. 총 133명의 추기경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으며 이는 최근 콘클라베 중 비교적 빠른 결정으로 기록됐다.
레오 14세의 선출은 전통을 깼다는 점 외에도 미국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자긍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오랫동안 활동한 페루에서도 국가적 자랑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