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 둔화와 관세 강화로 제조업 투자와 외국인 투자 유치 약화…로비 성과도 제한적

◇ 미국 관세 강화와 신흥국 금융 위기 가능성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Fitch Ratings)는 최근 한국, 멕시코, 태국, 대만, 베트남 5개국 은행 부문 전망을 한 단계 낮췄다. 한국과 대만은 ‘개선’에서 ‘중립’으로, 일부 국가는 ‘중립’에서 ‘부정적’으로 내려갔다. 이는 미국의 소비가 1~2% 줄어드는 정도만으로도 신흥국 수출 감소 폭은 더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라이스대학 조세·예산정책센터의 존 다이아몬드 소장은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미국 소비가 줄면, 신흥국들의 수출이 크게 줄고 이것이 기업 이익 감소와 부채 상환 능력 저하로 이어져 금융권 부실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컬렌 헨드릭스 선임연구원은 “신흥국들은 과거 중국에 비해 훨씬 낮았던 관세 혜택을 누렸지만 그 혜택이 사라지며 제조업 기반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매력이 크게 줄었다”라고 지적했다.
◇ 한국, 성장률 전망 대폭 하락
한국은행은 지난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202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낮췄고, 5월 말에는 수출 부진과 내수 소비 위축을 이유로 0.8%까지 내렸다. 미국-중국 간 무역갈등이 더 심해질 경우 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초 국장단 회의에서 “미국 관세 강화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원화 환율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외국인 자금 이탈 위험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국은 4월 한국산 일부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가, 정부의 협상 결과 7월 말부터 이를 15%로 낮췄다. 그러나 완전 철폐 가능성과 재부과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어 관세 문제는 여전히 한국 경제 불확실성의 큰 요소로 남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7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 성장률을 기존 1.0%에서 0.8%로 낮췄으며,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과 국내 정치 불안, 기업 투자 위축이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관세 완화 위해 쏟아진 로비 자금, 성과는 제한적
지난 9일(현지시간)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최소 30개국이 미국 내 로비업체를 고용해 수천만 달러를 쏟아부었으나 관세 완화에 성공한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캐나다는 10여 개 로비 회사를 가동했음에도 관세율이 여전히 35%에 이르고 있다. 반면 멕시코는 트럼프 대통령과 비공식 친분을 통해 관세율을 25%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은 관세율을 46%에서 20%로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최초 협상 목표치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미국 내 주요 로비 회사 중 하나인 머큐리(Mercury Public Affairs)와 계약하고, 정부 차원의 외교·통상 협상 전략과 병행해 미국과 15% 관세율 조정 합의를 이끌어냈다. 머큐리는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협상 과정에서 접근 창구를 넓히는 데 기여했으며, 한국 정부는 미국 내 대규모 투자 계획과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제안해 25%로 예상됐던 관세를 일본·유럽연합과 같은 15% 수준으로 낮췄다.
그러나 의류·섬유·일부 전자제품 등 일부 품목에는 여전히 높은 관세가 적용돼 완전 철폐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2025년 7월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류 및 섬유는 10~15%에서 20~35% 사이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어 가격 상승 압박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자기기와 부품도 0~10% 기본 관세에 추가로 20~30% 관세가 중첩되는 경우가 있어 부담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 지도자와의 개인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직접 통화나 회담을 통한 협상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캄보디아는 관세를 49%에서 19%로 인하했고, 파키스탄도 29%에서 19%로 낮췄으나 전문가들은 “로비 성과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데 그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 문제를 넘어 한국을 포함한 수출 중심 신흥국의 금융 안정성과 성장 동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피치레이팅스와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소비 둔화가 신흥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잇따라 경고하고 있다. 한편 로비 경쟁은 관세 완화에 제한적 영향을 미친 가운데, 관세 정책은 앞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투자 흐름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