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 '최저가 입찰' 원칙, 국산 드론 불신과 성능 저하 악순환 불러
"표준화로 가치 평가 전환, 전시 대비한 대량 생산 능력 확보 시급"
"표준화로 가치 평가 전환, 전시 대비한 대량 생산 능력 확보 시급"

부풀려진 통계, 정책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만, 한국 드론 산업은 그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강왕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무인이동체사업단장은 드론 산업 현황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의 산업 실태 조사가 제조와 응용 분야 데이터를 구분 없이 섞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통계상 기업 수는 부풀려졌지만, 실제 수익 규모와 기업 수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생기는 데이터 왜곡이 나타났다. 이처럼 결함 있는 통계에 기대서는 현재 산업이 마주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효과 있는 정책을 세우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핵심 소재 해외 의존…공급망 불안 여전
외부 환경의 취약성 역시 한국 드론 산업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핵심 원자재를 지나치게 해외에 기대는 점은 산업의 안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과 같다. 국내 드론 산업은 비행 제어 컴퓨터와 통신 장비 등에 꼭 필요한 희토류, 반도체 같은 핵심 소재를 중국,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몇 해 동안 중국이 자국의 영향력을 무기 삼아 희토류와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조치는 비행제어컴퓨터와 통신장비 생산에 바로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만약 중국발 공급망에 한 번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산업 전반의 불안정성이 깊어지며 생산 라인 전체가 멈춰 설 수 있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최저가 입찰'의 덫…내부 생태계마저 흔들린다
내부 생태계의 문제도 심각하다. 부품 국산화가 일부 추진되고는 있으나, 실상은 '속 빈 강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부품 제조업체들이 생산에 뛰어들고는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의 기술 개발보다는 해외 제품의 사양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최종 제품인 드론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과 기술 협력 및 호환성 검증이 부족해, 막상 부품을 개발해도 완제품에 적용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고 디지타임스 아시아는 꼬집었다.
설령 정부 과제 등을 통해 공식 공급업체로 뽑히더라도, 대부분 국내 기업들은 드론의 뼈대인 기체와 눈 구실을 하는 카메라 등 일부 부품만 납품할 뿐이다. 통합 운영·데이터·클라우드 시스템 구축은 미흡하며, 세계적인 브랜드와 견줘 체계 있는 사후 지원이 없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런 문제들이 겹치면서 국내 드론 업계에서조차 국산 부품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가장 큰 문제는 공공 조달 시스템이다. 기술력이나 안정성보다는 가격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저가 입찰' 방식이 국내 드론 산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공공기관 납품 실적을 쌓아야 하는 국내 공급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이는 성능을 떨어뜨리는 값싼 부품 사용으로 이어진다. 정부 담당자가 가격 외에 성능과 안정성을 따져 더 유리한 제품을 고르려 해도, 그 결정 이유를 일일이 대야 하는 복잡한 절차 탓에 최저가 업체를 고르는 관행이 굳어졌다. 이런 구조가 낳은 문제는 국산 드론의 성능 저하를 부르고, '국산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만 시장 전반에 키우고 있다.
'가치 평가' 전환과 '대량 생산'…미래를 위한 제언
이 어려운 상황을 풀 대안으로 'K-블루 UAS(K-Blue UAS)' 시스템 도입이 나왔다. 강왕구 실장은 드론의 핵심 사양을 표준으로 삼고, 이 기준에 따라 제품의 성능과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조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을 이끌고, 선정 기준을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 품질 저하를 막으며 기술력 있는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는 시장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방산 업계에서는 미래 전장 환경에 대비해 생산 역량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윤관섭 LIG넥스원 항공드론사업부 부장은 디지타임스 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아무리 우수한 공급망과 활용 여건을 갖췄더라도, 충분한 생산 속도와 규모를 갖추지 못하면 시장의 요구와 국방 수요를 결코 채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전시에는 수백만 대의 드론이 단 몇 달 만에 모두 소모될 수 있으며, 현재 생산 규모와 속도로는 국방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대규모 생산 역량을 갖추려면 물리적 AI와 디지털 트윈 같은 혁신 기술의 연구개발이 꼭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규모 드론 운영과 정비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시장이 가득 차는 '성장 이후' 단계를 대비한 긴 안목의 전략을 세우는 일이 시장 성장 계획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한국 드론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구조의 취약점을 없애는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 공급망을 여러 곳으로 넓히고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 힘쓰는 한편, 제조와 응용 부문 데이터를 따로 집계해 정확한 산업 지표를 내야 한다. 또한, 표준 사양과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공공 조달을 품질 중심으로 바꾸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첨단 제조 기술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나아가 전시나 재난 상황에 대비한 드론 운영 및 유지보수 체계를 세움으로써, 한국 드론 산업은 비로소 국방과 민간 시장 모두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