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출신 제프 얀이 세운 하이퍼리퀴드, 벤처투자 거절하고 2년 만에 바이낸스 10% 규모 성장…트럼프 관세 발표 때 190억 달러 청산 논란

디 인포메이션은 지난 20일(현지시간) 2년 된 이 거래소가 외부 투자 없이 자체 토큰만으로 성장하며 암호화폐 시장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11명 직원이 만든 파괴력
하이퍼리퀴드는 2022년 말 FTX 붕괴 뒤 제프 얀이 세운 탈중앙화 거래소다. 중앙화 거래소인 FTX가 사용자 자산을 맡아두다 파산한 것과 달리, 하이퍼리퀴드는 알고리즘이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고 고객이 직접 자산을 보관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란 중국 이민자 2세 얀은 국제 물리학 올림피아드 은메달과 금메달을 딴 수재로, 2017년 하버드를 나온 뒤 고주파 거래회사 허드슨 리버 트레이딩에서 알고리즘 개발자로 일했다. 그는 1년도 안 돼 회사를 나와 푸에르토리코에 카멜레온 트레이딩이라는 트레이딩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에는 지금 인공지능 검색엔진 퍼플렉시티(Perplexity AI) 공동 창립자 데니스 야라츠(Denis Yarats)와 코딩 도우미 커서(Cursor) 연구원 제이콥 잭슨(Jacob Jackson)이 함께했다.
얀은 FTX를 믿지 않아 거래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FTX 붕괴를 계기로 하이퍼리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이퍼리퀴드 웹사이트를 보면 직원들은 캘리포니아공대와 매사추세츠공대 출신으로 시타델, 허드슨 리버 트레이딩, 에어테이블 같은 곳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핵심 팀은 대부분 익명이거나 가명을 쓰며, "일리엔신크(iliensinc)"로 올라온 또 다른 공동 창립자도 하버드 출신이다.
벤처캐피털 투자 거절하고 토큰으로 성장
하이퍼리퀴드가 암호화폐 업계에서 눈길을 끄는 까닭은 성장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파운더스 펀드 같은 주요 벤처캐피털이 투자 뜻을 밝혔으나 얀은 모두 거절했다. 그 대신 자체 토큰 HYPE를 내놓아 거래량에 따라 전체 토큰 공급량 가운데 31%를 사용자한테 무료로 나눠주는 방식으로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이를 에어드랍이라고 부른다.
얀은 지난해 8월 우 블록체인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하이퍼리퀴드가 시작됐을 때 보통은 벤처캐피털한테서 큰 규모 자금을 모으고 많은 흥분을 일으키는 게 표준이었다"며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항상 뭔가 가짜 같았다. 진짜 발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이퍼리퀴드는 거래 플랫폼에서 나오는 수수료 대부분을 미결제 토큰 사들이기에 쏟아부어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썼다. HYPE 가격은 지난해 11월 발행 때 토큰당 3달러 90센트에서 지금 38달러로 뛰었다. 유통되는 HYPE 토큰 시가총액은 약 100억 달러(약 14조 2500억 원)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성공한 토큰 출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공개 자료와 디 인포메이션 보도를 보면 패러다임, a16z, 판테라, 갤럭시 디지털, 하이브마인드, 코인펀드 같은 거의 모든 유명 암호화폐 펀드가 지금 HYPE 토큰을 갖고 있다. 나스닥 상장 미국 회사 하이퍼리퀴드 스트래티지스는 지난 7월 8억 8800만 달러(약 1조 2600억 원) 규모 HYPE 토큰을 쌓아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토큰을 살 수 있게 할 계획을 발표했다. 바클레이즈 전 최고경영자 밥 다이아몬드(Bob Diamond)가 회사 회장을 맡기로 했다. 그러나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고 발표 뒤 주가는 64% 떨어졌다.
지난 10일 폭락 때 190억 달러 청산 논란
하이퍼리퀴드는 지난 10일 세계 암호화폐 시장 폭락 때 전례 없는 주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제품에 100% 관세를 때린다고 발표하자 암호화폐 시장이 곤두박질쳤고, 이날 하이퍼리퀴드에서 190억 달러(약 27조 원) 이상 거래가 청산됐다. 코인글래스를 보면 이는 업계 역사상 가장 큰 청산 규모다.
특히 트럼프 관세 발표 불과 몇 분 앞서 두 익명 사용자 계정이 시장 하락에 거는 큰 규모 거래를 해 논란을 낳았다. 거래자들은 베팅한 사람이 백악관 누군가한테서 정보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암호화폐 펀드 하이브마인드 창립자 맷 장은 "하이퍼리퀴드는 익명 거래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퍼리퀴드는 익명성과 높은 레버리지를 내세워 거래자를 끌어들였다. 플랫폼 거래량 대부분은 무기한 선물이다. 무기한 선물은 끝나는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파생상품 거래로, 미국 플랫폼에서는 쓸 수 없는 높은 레버리지를 걸 수 있다. 거래소는 거래 소프트웨어만 내놓을 뿐 중개인 역할을 하지 않아 사용자 신원 확인 책임이 없다.
하이퍼리퀴드 알고리즘은 거래소를 큰 손실에서 지키려고 거래자한테 포지션 청산을 강요했다. 레버리지 쓰는 거래자는 시장 하락 때 항상 청산 위험을 떠안는다.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와 마찬가지로 하이퍼리퀴드는 시장이 혼란스러울 때 거래자 뜻과 관계없이 거래를 강제로 끝냈다. 이 때문에 많은 거래자가 예상 밖 손실을 보았고, 손실을 줄이려던 방어 전략도 소용없게 됐다. 하이퍼리퀴드는 전 세계에서 규제를 안 받아 문제가 생겨도 사용자는 거의 구제받을 길이 없다.
'모든 금융' 품겠다는 야심
하이퍼리퀴드 지금 거래량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같은 상품 거래량의 약 10%에 이른다. 얀은 하이퍼리퀴드 블록체인을 개선하고 기업들이 이를 통해 상품을 내놓도록 부추기는 데 시간 대부분을 쓴다. 그는 자주 텔레그램에서 개발자 질문에 24시간 안에 답한다.
사모펀드 회사 아틀라스 머천트 캐피털 창립 파트너이자 하이퍼리퀴드 토큰을 가질 계획인 데이비드 샤미스는 "그는 이사회가 없다. 투자자들이 그한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르며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며 "그는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이퍼리퀴드가 하려는 일은 암호화폐를 넘어선다. 사람들이 블록체인에서 여러 투자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게 해 '모든 금융을 담겠다'는 것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 같은 민간 기업 가치평가에 투자자가 베팅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벤츄얼스 공동 창립자 알빈 시아는 "지금 하이퍼리퀴드에서는 암호화폐 무기한 자산만 거래할 수 있으나 결국에는 공개 주식, 지수, 민간 기업, 원자재, 심지어 금리까지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얀은 이번 달 싱가포르 컨퍼런스 패널에서 "하이퍼리퀴드가 실패한다면 대체로 우리 커뮤니티가 세상을 위해 진짜 값어치 있는 것을 만들지 못한 탓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퍼리퀴드가 미국 시장에 들어가려면 면허를 받은 법인을 사들이거나 직접 세우는 걸 생각해볼 수 있으나 내놓는 레버리지를 줄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마인드 장은 "사람들은 아직 바이든 행정부 때 암호화폐를 엄하게 규제하던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며 "사람들은 지난 10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 들어 암호화폐 규제가 얼마나 많이 풀렸는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