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셧다운 막아라"…워크로드 75% 지역 이전 '디지털 주권' 확보 사활
가트너 "2030년까지 유럽 조직 75% 이상, 하이퍼스케일 워크로드 이탈"
가트너 "2030년까지 유럽 조직 75% 이상, 하이퍼스케일 워크로드 이탈"
이미지 확대보기최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트너 IT 심포지엄-Xpo(Gartner IT Symposium-Xpo) 현장에서 시장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트너의 수석 애널리스트 나데르 헤네인(Nader Henein)은 기존 거대 하이퍼스케일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정했다.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이미 거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구축해 놓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생각할 때, 이 경쟁은 어렵고, 따라잡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특히 필요한 초기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본 지출(Capital Expense, CapEx) 비용이 '막대하다(massive)'는 점을 강조했다.
"원격 통제 불가" 운영 주권 사수
이러한 지정학적 상황은 이미 서유럽 시장에서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트너의 선임 애널리스트 르네 부에스트(Rene Buest)는 서유럽 CIO 및 IT 리더 2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향후 더 많은 현지 또는 지역 클라우드 제공업체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53%는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응답했다. 이는 유럽의 기술 리더들이 미래에 글로벌 벤더 사용을 적극적으로 제한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수치이다.
유럽 조직들이 이처럼 클라우드 의존도를 줄이는 근본적인 동기는 외부 통제에 대한 두려움, 집중 리스크, 그리고 제재나 강제적인 셧다운으로 인해 디지털 암흑 사태(digital blackout)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이다. 부에스트 애널리스트는 현재 유럽 조직들이 데이터, 운영, 기술 전반에 걸친 통제권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주권 수준을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미국 기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법인이 클라우드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운영 주권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에스트는 핵심은 "클라우드 운영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갖느냐"에 있으며, 이는 "다른 누군가가 원격으로 당신의 시스템을 종료시키거나 차단할 수 없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실제로 이러한 운영 주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은 주요 유럽 회원국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구글(Google)과 탈레스(Thales)의 합작 투자사인 S3NS(탈레스가 95% 이상의 소유권 보유)와 캡제미니(Capgemini) 및 오랑주(Orange)가 마이크로소프트 기술을 사용하여 구축한 블뢰(Bleu)와 같은 이니셔티브가 현지 운영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일에서도 SAP의 자회사인 딜로스 클라우드(Delos Cloud)가 마이크로소프트 기술을 활용하며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부에스트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협력 구조가 결정적인 방화벽 역할을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미국 파트너가 업데이트 제공을 중단하여 환경이 구식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이 클라우드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차원의 의무화도 이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네덜란드 의회는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구축하도록 의무화했다. 심지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기존의 미국 클라우드 계약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논의가 이론적인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2025년 1월에는 아시스(Arsys), BIT, 그단스크 공과대학교 등 8개 유럽 기술 조직이 오픈네뷸라 시스템즈(OpenNebula Systems)의 조율 하에 유럽 최초의 주권 에지 클라우드인 'virt8ra'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클라우드 독립' 대가, 10년 전략 투자
워크로드의 이동이 워낙 두드러지자 가트너는 이를 '지정학적 워크로드 이동(Geopatriation)'이라는 용어로 명명했다. 이는 기존의 프로덕션 워크로드를 하이퍼스케일 환경에서 현지 또는 지역 제공업체로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부에스트 애널리스트는 2030년까지 유럽 조직의 75% 이상이 가상 워크로드를 지정학적으로 이동(geopatriate)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CIO들이 선제적으로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CIO들은 유럽 제품과 솔루션에 기술 예산의 5~10%를 전용으로 투자하여 시장이 개발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는 비용을 수반한다. 유럽 조직들이 주권 클라우드를 필요한 '보험 정책'으로 보면서도, 표준 하이퍼스케일 가격보다 '10% 미만'의 추가 비용만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점이 제약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예산 제약은 현재의 주권 클라우드 상품과 충돌한다. 부에스트 애널리스트는 독일의 주권 클라우드인 딜로스(Delos)의 경우 비용이 최대 20%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럽 CIO들에게 독립으로 가는 길은 10년에 걸친 장기적인 전략적 헌신과 단기적 불편함의 수용을 요구한다. 헤네인 애널리스트는 주요 SaaS(Software-as-a-Service) 플랫폼의 오픈소스 대안과 같은 현지 솔루션들이 종종 "동일한 수준의 완전성"이 부족하고 "실제로 필요한 기능이 부족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헤네인은 "이러한 것들에 투자를 시작해야 하며, 이는 전략적 단계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신의 후임자에게도 즉각적인 결실을 맺지 못하고, 10년, 5년, 6년, 7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결실을 맺을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기술 채택 주기를 예로 들며, 하이퍼스케일러들 역시 고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투자한 자금으로 현재의 기능 세트를 구축했음을 상기시켰다.
기술 리더들은 또한 성능 및 효율성 관련 문제에도 직면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수년간 전력 효율성을 최적화하는 데 투자해 왔기 때문에, 현지 진입자들이 운영 비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어렵다. 헤네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우 조율된 공공-민간(public-private) 합작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서유럽 전략의 핵심 요소는 오픈소스 기술의 부상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365와 같은 기존 SaaS 솔루션에 대한 필수적인 대안으로 간주된다. 부에스트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사례를 인용했다. ICC는 한 수석 검사가 제재 명단에 오르면서 오피스 365 계정에 대한 접근 권한을 잃은 후, 마이크로소프트를 완전히 떠나 오픈소스 솔루션으로 전환했다.
헤네인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긴장이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주권 확보를 위한 추진력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비록 이 여정이 막대한 자본 투자와 단기적인 기능 희생을 수반하지만, 유럽 리더들은 중요한 인프라에 대한 최종 통제권이 반드시 현지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번 변화는 기술 시장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의미하며, 클라우드 환경을 글로벌 상품에서 전략적 국가 자산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유럽이라는 세계 최대 경제권 중 한 곳에서 장기적인 영향력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맞춤형 현지 운영 모델에 점차적으로 적응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