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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애플 잡으려면 돈 태워야"…퀄컴·미디어텍, 4400만원 웨이퍼 '출혈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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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애플 잡으려면 돈 태워야"…퀄컴·미디어텍, 4400만원 웨이퍼 '출혈 베팅'

TSMC 2나노·LPDDR6 동반 가격 폭등에 '진퇴양난'…칩셋 '급 나누기' 현실화
성능 5% 올리려 수익성 희생…2026년 스마트폰 시장 '가격 공포' 덮친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양대 산맥인 퀄컴과 미디어텍이 '비용의 덫'에 걸렸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 비용이 임계점을 넘은 상황에서 차세대 메모리 가격마저 급등하는 '이중고(二重苦)'가 닥쳤기 때문이다. 내년 출시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은 기술 경쟁을 넘어선 '원가 방어 전쟁'이 될 전망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각) WCCF테크 등 외신과 업계 소식통을 종합하면, 내년 안드로이드 진영의 플래그십 칩셋 전략이 전면 수정된다. 핵심 원인은 대만 TSMC의 2나노미터(nm) 공정 웨이퍼 가격 폭등과 차세대 D램 'LPDDR6'의 몸값 상승이다. 중국의 유력 팁스터(정보유출자) 디지털 챗 스테이션(Digital Chat Station)은 "비용 압박 탓에 내년 모든 플래그십 칩셋이 최신 메모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며 칩셋 라인업의 '급 나누기'를 예고했다.

퀄컴의 고육지책…"돈 낸 만큼만 성능 준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퀄컴이다. 퀄컴은 차세대 주력 제품 '스냅드래곤 8 엘리트 6세대'를 출시 시점부터 두 가지 버전으로 쪼갠다. 디지털 챗 스테이션은 최상위 모델인 '프로(Pro·가칭)' 버전에만 LPDDR6 메모리가 탑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반 모델은 기존 메모리 규격을 유지한다. 원가 절감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급 나누기는 메모리에 그치지 않는다. 상위 모델에는 더 강력한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탑재돼 성능 격차를 확실히 벌린다. 반면 미디어텍은 '디멘시티 9600' 단일 모델에 LPDDR6를 탑재하는 정공법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칩셋 제조사와 스마트폰 제조사 파트너들 모두 전례 없는 비용 압박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숨통이 트일 구석은 있다. 외신은 중국 메모리 제조사들이 내년 LPDDR6 대량 생산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공급망이 다변화되면 퀄컴과 미디어텍이 가격 협상력을 일부 회복할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메모리 가격 급등세가 2027년경에는 진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냅드래곤 8 엘리트 7세대'와 '디멘시티 9700'이 나올 때쯤에야 가격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웨이퍼 한 장에 3만 달러…성능 5%를 위한 '도박'


LPDDR6가 '변수'라면 TSMC의 파운드리 비용은 '상수'다. 내년 퀄컴과 미디어텍이 도입할 TSMC 2나노 웨이퍼 가격은 장당 약 3만 달러(약 44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칩셋 제조사의 수익성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액수다.

그럼에도 안드로이드 진영은 '출혈 경쟁'을 선택했다. 경쟁사 애플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용 A20 칩셋 생산에 TSMC의 기본 2나노 공정인 'N2'를 채택할 예정이다. 반면 퀄컴과 미디어텍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성능이 개선된 상위 아키텍처 'N2P'를 쓴다.

TSMC의 N2P 공정은 N2 대비 약 5%의 성능 우위를 제공한다. 수치상으로는 미미하지만, 퀄컴과 미디어텍 입장에선 애플을 앞서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하는 5%다. 문제는 대가다. 외신은 "이 미세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퀄컴과 미디어텍은 터무니없는(absurdly) 가격 책정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내년 모바일 시장의 공은 소비자에게 넘어갔다. 칩셋 제조사는 마진 축소와 판가 인상이라는 외통수에 몰렸다. 2026년 스마트폰 시장은 '혁신'보다 '가격표'가 화두가 될 공산이 크다. 소비자들이 LPDDR6와 N2P 공정이 가져올 성능 향상에 대해, 기꺼이 더 비싼 값을 지불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