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MT/s 초고속 DDR5·모바일 D램 동시 출격…기술 격차 '삭제' 시도
AI 메모리 품귀 틈타 시장 침투…'자급자족'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정조준
AI 메모리 품귀 틈타 시장 침투…'자급자족'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정조준
이미지 확대보기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CXMT)가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CXMT의 차세대 D램(DRAM) 기술이 단순한 연구개발(R&D) 수준을 넘어 실제 양산 제품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3일 IT전문 매체 WCCF테크에 따르면 CXMT는 '2025 중국 국제 반도체 박람회'에서 자체 기술로 생산한 DDR5 및 LPDDR5X 메모리 제품군을 전격 공개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소위 '메모리 빅3'가 독과점해 온 글로벌 D램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 발표는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넘어, 전 세계적인 AI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틈타 글로벌 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서버·AI까지 '빈틈' 없다…턱밑까지 쫓아온 기술력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CXMT가 공개한 제품의 '다양성'과 '스펙'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 기업들에 비해 수년 뒤쳐져 있다고 평가해 왔으나, 이날 공개된 제품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그 격차가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내놓은 모듈의 종류다. CXMT는 일반 데스크톱 PC용인 UDIMM과 노트북용 SODIMM은 물론, 고도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서버 및 데이터센터용 RDIMM, 그리고 차세대 폼팩터로 주목받는 CSODIMM, CUDIMM, TFF MRDIMM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풀 라인업(Full Spectrum)'을 선보였다.
이 중 'TFF MRDIMM'이나 'RDIMM' 라인업의 확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CXMT가 단순히 중국 내수용 PC 시장을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수익원인 데이터센터와 엔터프라이즈 서버 시장까지 진입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PC 시장은 정체된 반면, 데이터센터 시장은 AI 열풍을 타고 급성장하고 있는 핵심 승부처다. CXMT는 자사의 DDR5 IC(집적회로)가 데이터센터부터 일반 소비자용 PC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장 세그먼트에 적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기술적 자신감을 내비쳤다.
中 연합군의 공습…오버클럭 성능도 '합격점'
CXMT는 칩 단품 공급을 넘어, 자국 내 메모리 생태계와의 협업을 통한 세력 확장도 꾀하고 있다. 이번 엑스포에서 CXMT는 중국의 유명 메모리 모듈 제조사인 아스가르드(ASGARD)가 자사의 DDR5 칩을 탑재해 만든 게이밍 메모리 키트를 시연했다.
아스가르드는 업계 최초로 CUDIMM 규격의 DDR5를 선보인 제조사 중 하나로, 이번 시연을 통해 CXMT의 칩이 고성능을 요구하는 게이밍 환경에서도 훨씬 높은 오버클럭(OC) 속도로 안정적으로 작동함을 증명해 보였다. 통상적으로 오버클럭 능력은 메모리 칩의 수율과 설계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중국산 칩이 고속 오버클럭을 견뎌냈다는 것은, 그만큼 공정 안정화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의미한다.
'온디바이스 AI' 정조준…모바일 D램도 최고 속도
DDR5와 함께 공개된 LPDDR5X(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 5X) 제품군 역시 위협적이다. CXMT는 12Gb 및 16Gb 용량의 칩을 공개하며, 이들이 최대 10667MT/s의 속도로 작동한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모바일 D램 시장의 주력 제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최고 수준의 속도다.
이 칩들을 조합하면 12GB, 16GB, 24GB, 32GB 등 다양한 고용량 모바일 패키지 구성이 가능하다. CXMT는 이 제품들이 노트북과 임베디드 플랫폼을 겨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AI 시장(AI Markets)'을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최근 스마트폰과 노트북 자체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엣지 디바이스(Edge Device)에서도 고대역폭, 고용량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CXMT는 LPDDR5X를 통해 이 신규 시장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빅3' 공급난이 기회…빈집 털러 오는 '차이나 반도체'
CXMT의 이번 신제품 데뷔는 시기적으로도 매우 절묘하다. 현재 글로벌 D램 시장은 AI 반도체(HBM 등) 수요 폭증으로 인해 극심한 공급 불균형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생산에 라인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Legacy DRAM) 공급이 줄어들었고, 이는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AMD가 메모리 비용 상승을 이유로 GPU 전 모델의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메모리 공급난은 IT 산업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 공백’은 후발 주자인 CXMT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글로벌 제조사들이 물량을 대지 못해 허덕일 때, CXMT가 안정적인 물량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침투한다면, 중국 내수 시장은 물론 일부 해외 시장에서도 빠르게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CXMT의 이번 행보는 중국이 해외 반도체 제조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자급자족(Self-Sufficiency)' 단계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을 틈타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메모리 코리아'의 아성이 견고한 가운데, 턱밑까지 추격해 온 중국의 추격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