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전기차 급증에 수요 50% 폭발… 공급은 '거북이'
광산 개발 '17년 병목'·제련 '중국 쏠림' 이중고… 韓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비상등'
광산 개발 '17년 병목'·제련 '중국 쏠림' 이중고… 韓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비상등'
이미지 확대보기S&P 글로벌은 8일(현지시간) 발간한 'AI 시대의 구리(Copper in the Age of AI)' 보고서를 통해 2040년 전 세계 구리 수요가 2025년(2800만 톤) 대비 50% 급증한 4200만 톤(t)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신규 광산 개발 지체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해, 2040년에는 약 1000만 톤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공급 공백(Supply Gap)'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AI·전기차·방산… 구리 수요의 '슈퍼 사이클’
보고서는 구리 수요 폭발의 4대 동력으로 ▲전통적 경제 성장(건설·가전) ▲에너지 전환(전기차·재생에너지) ▲AI 데이터센터 ▲국방 현대화를 꼽았다.
가장 강력한 변수는 단연 'AI 데이터센터'다. 챗GPT 이후 우후죽순 들어서는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막대한 전기를 소비한다. 전기를 나르는 전선과 배전 설비의 핵심 소재가 바로 구리다.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비중은 현재 5%에서 2030년 14%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구리 없이는 AI 시대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전기차(EV)는 내연기관차보다 2.9배나 많은 구리를 사용하며, 태양광과 풍력 발전 단지 조성에도 막대한 양의 구리 케이블이 들어간다. 최근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전 세계적 국방비 증액도 한몫한다. 첨단 레이더, 통신 시스템, 드론 등 무기 체계가 전동화되면서 구리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물자'로 격상됐다. 미국 정부가 2025년 구리를 '중요 광물(Critical Mineral)'로 공식 지정한 이유다.
지역별로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가 전 세계 구리 수요 증가분의 60%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분석됐다.
광산 발견부터 생산까지 '17년'… 공급망 동맥경화
수요는 빛의 속도로 늘지만, 공급은 거북이 걸음이다. S&P 글로벌은 "지상(인허가)과 지하(채굴 환경) 모두에서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장벽은 '시간'이다. 새로운 구리 광산을 발견해 첫 삽을 뜨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7년으로 늘어났다. 환경 영향 평가와 지역 사회의 반발, 복잡해진 인허가 절차가 개발 시계를 멈춰 세우고 있다.
보고서는 "획기적인 투자 없이는 기존 광산 생산량이 2030년을 기점으로 꺾일 것"이라며 "재활용을 최대로 늘려도 전체 수요의 3분의 1밖에 감당하지 못해, 2040년 1000만 톤 부족 사태는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제련은 중국이 장악… '제2의 요소수' 우려
광산에서 캔 구리 정광(Concentrate)을 순도 99.9%의 전기동(Cathode)으로 만드는 '제련(Smelting)' 단계가 중국에 집중된 점도 시한폭탄이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구리 제련 용량의 약 40~50%를 틀어쥐고 있다. 원료(광석)는 칠레나 페루에서 나오지만, 이를 쓸 수 있는 금속으로 바꾸는 '수도꼭지'는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위기 시 구리 공급망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의미한다.
최근 제련 수수료(TC/RC)가 사상 최저치로 추락해 서방 제련소들이 경영난을 겪는 와중에도, 중국 기업들은 정부 지원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시장 지배력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 보고서는 "가공 용량의 지리적 쏠림은 글로벌 공급망을 무역 장벽이나 정책 충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킨다"고 지적했다.
한국, 구리 99.9% 수입… '자원 안보' 골든타임
이번 '구리 쇼크' 경고는 자원 빈국이자 제조 강국인 한국이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방산 등 전기를 많이 쓰고 구리가 필수적인 산업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정작 원재료는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땅에서는 구리가 섞인 돌(광석)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한국의 구리 광석 자급률은 0%에 가깝다. 우리는 해외에서 흙과 돌이 섞인 '구리 정광'을 수입해, 울산 온산공장(LS MnM) 등에서 끓여 순수한 구리로 만들어 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관세청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은 매년 약 170만~200만 톤의 구리 정광 등을 수입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입액만 약 100억 달러(약 14조 5300억 원) 에 육박한다. 이렇게 만든 전기동을 국내 산업계가 매년 70~80만 톤씩 소비한다. 이는 세계 6위권의 소비 규모다.
만약 글로벌 구리 공급망이 막혀 원료를 들여오지 못하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회로도,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음극재도, 현대차의 전기차 모터도 만들 수 없다. 공장이 멈추는 것이다.
S&P 글로벌 다니엘 예르긴 부의장은 "구리는 더 이상 경기 흐름만 타는 원자재가 아니라 미래 기술과 안보의 필수재"라고 강조했다. 2040년 1000만 톤 부족 사태는 먼 미래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해외 광산 지분을 직접 확보하고, 폐전선 등 도시광산(재활용)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자원 안보' 차원의 선제적 대응 전략을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