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물가·서비스물가도 예상보다 낮아져
라가르드 “같은 강도로 대응할 필요 없다”…시장선 연내 0.25%포인트 추가 인상 전망 유지
라가르드 “같은 강도로 대응할 필요 없다”…시장선 연내 0.25%포인트 추가 인상 전망 유지
이미지 확대보기유로존 물가상승률이 지난달 들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낮아졌다.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완화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긴축 압박도 일부 줄어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가 1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한 6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속보치가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는 로이터가 집계한 경제 전문가 전망치 3.0%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난 5월의 3.2%와 비교하면 0.4%포인트 낮아졌다.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3% 아래로 내려온 것은 최근 에너지 충격 이후 처음이다.
◇근원물가도 2.4%로 둔화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낮아졌다.
서비스 물가상승률도 5월 3.5%에서 6월 3.2%로 내려왔다. ECB가 특히 주목하는 서비스 물가가 둔화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서비스 물가는 임금과 내수 압력을 반영하는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품목별로 보면 에너지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8.7% 올라 여전히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5월 10.8%보다는 상승 폭이 줄었다. 식품·주류·담배 물가는 1.6% 올라 5월 1.9%보다 둔화됐고 비에너지 산업재 물가는 0.9%로 전달과 같았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낮아진 배경에는 최근 유가 안정이 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 연장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한 뒤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면서 에너지 가격 압력이 완화됐다.
◇ECB, 지난달 3년 만에 금리 인상
ECB는 지난달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이는 2023년 이후 첫 금리 인상이었다.
ECB의 예금금리는 2.25%로 높아졌다. 중동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이 충격이 식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이 금리 인상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6월 물가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ECB의 추가 긴축 명분은 다소 약해졌다. 에너지 충격이 경제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번지는 이른바 2차 파급 효과가 아직 제한적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이번 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연례 포럼에서 2022~2023년처럼 강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시 ECB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물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라가르드 총재는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강도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난달 금리 인상이 단순한 ‘보험성 인상’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위험 평가에 근거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금리 인상 이후 관찰된 지표들이 당시 판단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시장, 연내 추가 인상 전망은 유지
물가 둔화에도 금융시장은 ECB가 올해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스와프 계약에 반영된 시장 가격을 보면 투자자들은 ECB가 연말까지 0.25%포인트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6월 물가가 예상보다 낮아졌지만 물가상승률이 네 달 연속 ECB 목표치 2%를 웃돌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코메르츠방크 이코노미스트들은 ECB가 9월에 금리를 0.25%포인트 더 올려 예금금리를 2.5%로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들은 에너지 가격이 낮아지더라도 기업들이 이미 높아진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려 할 수 있어 물가상승률이 올해 남은 기간 3% 안팎에 머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6월 물가 둔화가 ECB의 긴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ABN암로 인베스트먼트 솔루션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크리스토프 부셰는 6월 물가 하락이 라가르드 총재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봤다. 그는 유가 상승의 2차 파급 효과가 제한적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화는 큰 변동 없어
유로화는 물가 지표 발표 뒤에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유로화는 달러당 1.139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지난주에는 시장이 ECB의 금리 인상 기대를 뒤로 미루면서 유로화가 1년 만의 저점까지 떨어졌지만 이번 물가 지표 발표 이후에는 제한적인 움직임에 그쳤다.
이는 시장이 6월 물가 둔화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ECB의 정책 경로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가가 다시 오르거나 기업들이 에너지 비용을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물가 압력이 재차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닝스타의 마이클 필드 최고 주식 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이 불과 몇 달 전만큼 큰 우려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조용히 반길 것이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긴축 명분 시험대
이번 6월 물가 지표는 ECB의 통화정책 논쟁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물가가 예상보다 빨리 낮아지고 근원물가와 서비스물가까지 둔화됐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에너지 충격이 완화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더 올리면 경기 둔화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쪽에서는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 2%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로존 경제가 이미 에너지 가격 상승을 겪었고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과정이 늦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CB가 지난달 금리를 올린 것은 물가 충격이 오래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6월 물가가 2.8%로 낮아지면서 시장은 이제 그 판단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는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물가 둔화가 곧 긴축 종료는 아니다
6월 물가 둔화는 ECB에는 분명 반가운 신호다. 이란 전쟁 이후 유럽 경제를 짓눌렀던 에너지발 물가 압력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긴축 종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ECB의 목표는 물가상승률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중기적으로 2%에 안정시키는 것이다. 6월 수치가 개선됐더라도 물가가 네 달 연속 목표치를 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ECB의 다음 결정은 유가와 서비스물가, 임금 흐름, 기업의 가격 전가 정도에 달려 있다. 7월과 8월 지표가 추가 둔화를 확인해주면 9월 인상론은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에너지 가격이 다시 오르거나 서비스물가가 버티면 ECB는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명분을 갖게 된다.
유로존의 6월 물가 하락은 인플레이션 공포가 정점을 지났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라가르드 총재가 말한 것처럼 ECB가 과거와 같은 강도로 대응할 필요가 줄어들었을 뿐 물가와 금리를 둘러싼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