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미국, 신조 문 못 열어도 정비 문은 연다… 한국, 年 10조대 미 해군 MRO 선점

글로벌이코노믹

미국, 신조 문 못 열어도 정비 문은 연다… 한국, 年 10조대 미 해군 MRO 선점

자국 조선 붕괴로 연 12척 공급 공백… 미국, 동맹에 손 벌릴 수밖에
글로벌 함정 MRO 92조 시장, 한국 빅3 올해 4건 수주로 3배 속도전
신조는 법이 막았다… 승부처는 MRO와 미국 현지 생산
제조 기반 붕괴가 만든 이 공급 공백이 동맹국에 열리면서, 검증된 납기와 가성비를 갖춘 한국 조선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함정 방산은 이제 한국 조선의 부수 사업이 아니라 이익 변동성을 낮추는 핵심 신성장 동력이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제조 기반 붕괴가 만든 이 공급 공백이 동맹국에 열리면서, 검증된 납기와 가성비를 갖춘 한국 조선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함정 방산은 이제 한국 조선의 부수 사업이 아니라 이익 변동성을 낮추는 핵심 신성장 동력이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 줄 수 있느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던진 요청이다. 두 정상은 지난 7(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만나 군용 선박 건조 협력의 후속 협의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화답하며 한국 조선사들을 소개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수석대변인이 8일 브리핑에서 밝혔다. 세계 최강 미 해군이 동맹의 조선소에 함정을 맡기려는 이례적 장면이다.

이 요청의 밑바탕에는 미국 국방부와 해군이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에 전투함·급유함 정보요청서(RFI)를 보낸 사실이 깔려 있다. 신조는 물론, 그 전 단계인 유지·보수·정비(MRO)까지 한국을 향한 손짓이 빨라지고 있다.

이 요청이 나온 배경은 냉정하다. 미국은 연 12척의 함정을 확보하려 하지만, 자국 조선소만으로는 이를 만들 수 없다. 미 의회예산처(CBO)2025년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제조 기반 붕괴가 만든 이 공급 공백이 동맹국에 열리면서, 검증된 납기와 가성비를 갖춘 한국 조선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함정 방산은 이제 한국 조선의 부수 사업이 아니라 이익 변동성을 낮추는 핵심 신성장 동력이다.

글로벌 함정 및 MRO 시장 구조시장 규모.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함정 및 MRO 시장 구조시장 규모.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시장의 실체… 92조 글로벌 MRO, 그 안의 10조대 표적


한국이 겨냥하는 시장은 세 겹으로 나뉜다. 가장 바깥은 글로벌 함정 시장 전체다. 시장조사기관 GM인사이트는 이 시장을 20251158억 달러(174조 원)로 추산하고, 2035년까지 연평균 7% 성장을 전망했다.

그 안에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이 있다. 모도르인텔리전스는 글로벌 함정 MRO 시장을 20256138,000만 달러(92조 원)로 추산했고, 20317366000만 달러(1107400억 원)까지 커진다고 내다봤다. 한화오션도 첫 미 해군 수주 당시 이 시장을 연 600억 달러(902000억 원) 규모로 규정했다.

가장 안쪽, 한국이 당장 파고드는 표적은 미 해군의 MRO 예산이다. 미 회계감사원(GAO)20251월 보고서에서 미 해군이 MRO 서비스에 연 60~74억 달러(9~11조 원)를 쓴다고 밝혔다. 이 예산은 2030년 최대 120억 달러(18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국내 조선업계는 함정 정비 관련 예산 전체를 잡은 미 국방부 2026 회계연도 기준(162억 달러)을 근거로, 한국이 겨냥할 아태 지역 가용 시장을 연 20조 원 안팎으로 보기도 한다. 집계 범위에 따라 수치가 갈리는 셈이다. 미국은 자국 도크가 부족해 연 130~150척을 동맹국 조선소로 보내 정비받고 있다.

미국, 상선 기준 3척 대 중국 1000


미국은 세계 최대 해군 예산을 쓰지만, 그 예산을 소화할 산업이 무너졌다. 격차는 한 줄로 요약된다. 상선 건조 능력은 미국이 연 3척 수준인 반면 중국은 연 1000, 한국은 연 200척 이상이다. 2023년 미국 조선소가 세계 신조선 건조에서 차지한 비중은 0.1%에 그쳤다.

함정 척수 패권도 이미 넘어갔다. 중국 해군은 2020년 전투함 척수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미 해군은 2024년 말 296척에 머물렀으나 중국은 2025년 약 395, 2030435척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강점은 여전히 잠수함과 항모 항공에 있지만, 중국의 조선 규모가 만드는 전력 재생산 능력이 전략 격차를 벌린다.

정비 지체는 더 심각하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 해군 정비 작업이 20년 뒤처져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쓸 수 있는 함정이 정비 지연 탓에 조기 퇴역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GAO는 그 원인으로 노후 인프라와 숙련 인력 부족을 지목했다.

미국도 손을 놓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4'미국 해양 패권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2027 회계연도에는 15000억 달러(2253조 원) 규모의 국방예산을 제안했다. 국방부 함정 건조 계획은 2054년까지 총 401억 달러(60조 원) 규모다. 그럼에도 CBO는 연 12척을 미국 조선소만으로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정말 외주 줄 수 있나'… 법이 만든 벽


이 지점이 한국 기회의 상한선을 결정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은 전투함 신조를 해외에 발주할 수 없다. 미 연방법 10 U.S.C. 8679는 함정과 선체·상부 구조의 주요 구성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여기서 '주요 구성품'에는 선체 블록도 포함돼, 블록 조각조차 해외에서 만들어 들여올 수 없다. 대통령이 국가 안보상 예외를 승인할 수 있는 조항이 있으나, 의회 견제로 실제 발동은 매우 어렵다.

규제는 오히려 강해지는 흐름이다. 재러드 골든 하원의원이 주도한 수정안은 전투함과 그 부품의 해외 조달을 전면 봉쇄하는 내용으로, 202665일 하원 군사위(HASC)를 통과했다. 이 수정안을 담은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은 같은 날 하원 군사위에서 찬성 44대 반대 12로 가결돼 하원 본회의로 넘어갔다.

다만 골든 수정안은 미국 내 신조에 초점을 맞춰, 동맹국 조선소에서 이뤄지는 미 해군 함정 MRO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상원 군사위(SASC)611일 연료·수송함 등 보조함 2척씩의 해외 건조를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달리해, ·하원 조율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다.

당장 한국이 접근할 수 있는 물량은 일본을 모항으로 하는 미 7함대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 MRO에 사실상 국한된다. 그러나 상한선이 여기 갇혀 있지만은 않다. 미 해군은 자국 정비 적체가 심해지자 본토 소속 함정과 구축함 등 일부 전투함 MRO까지 한국·일본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앞서 튀르키예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군함 10척 건조를 직접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 개정이나 예외 조항을 동원해 신조 협력까지 밀어붙이려는 기류가 감지되는 만큼, 상한선이 깨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투자 관점에서 이 대목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한국 조선의 미국 수출 스토리는 신조가 아니라 MRO와 현지 생산에 달려 있다. 완제 전투함을 한국에서 만들어 파는 길은 막혀 있고, 미국 현지 조선소를 인수·투자해 그곳에서 짓거나 한국 조선소에서 정비를 맡는 방식이 현실적 통로다. 한국 대형 조선사들이 잇따라 미국 현지 조선소에 지분을 투자하는 것도 이 법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미 시작된 실적… 올해 수주 3배로 뛰었다


'내 돈과의 연결'은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올해 들어 미 해군 MRO 사업을 각각 2건씩 총 4건 수주했다. 지난해 연간 실적(HD현대중공업 1, 한화오션 2)을 불과 3개월여 만에 넘어선 속도다. 두 회사는 올해 각각 3척 이상 수주를 목표로 잡았고, 삼성중공업도 함정정비협약(MSRA) 취득을 추진하며 미 해군·해상수송사령부 사업 참여를 노린다.

수익 규모를 가늠해보면 기회의 크기가 드러난다. 미 해군 MRO 예산 연 9~11조 원 가운데 한 자릿수 후반대 점유율만 확보해도 조 단위 매출이 열린다. 다만 이는 시장 규모를 전제로 한 계산일 뿐, 3가 공식 제시한 목표는 '올해 3척 이상'이라는 건수 기준임을 분명히 해둔다. 실제 매출은 함정 규모와 정비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협력 구조도 넓어졌다. HD현대는 2025년 헌팅턴잉걸스(HII)와 차세대 군수지원함 공동 설계·건조 협약을 맺었고, 삼성중공업은 미국 비고르마린그룹과, 제너럴다이내믹스는 삼성·한화오션과 각각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화그룹은 2024년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1502억 원)에 인수한 뒤 50억 달러(75100억 원)를 더 투자해 연 1척 수준의 건조 능력을 20척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흐름은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최대 1500억 달러(225조 원) 규모의 조선산업 재건 투자(MASGA)와 맞물린다.

경쟁 구도, ‘한국의 물량, 일본의 지리


경쟁은 세 갈래로 갈린다. 한국은 '빠르고 싸게', 일본은 '정치적으로 안전하게', 유럽은 '기술적으로 안정적으로' 승부한다. 특히 미 해군 MRO에서 일본은 만만찮은 상대다. 7함대 모항인 요코스카·사세보를 끼고 있어 지리적 접근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다. 한국이 물량과 단가로 파고든다면, 일본은 정비 접근성으로 맞선다.

호주 사례는 이 경쟁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호주 차기 범용 프리깃(SEA 3000) 사업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개량형 모가미급 11(최대 100억 달러, 15조 원)에 돌아갔다. 캐나다의 대규모 잠수함 교체 사업(CPSP)에서도 한국은 고배를 마셨다.

캐나다 정부는 76일 최대 12척 규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스(TKMS)를 선정했다. 한화오션·HD현대 컨소시엄은 초도함 2032년 인도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으나, 캐나다는 나토(NATO) 동맹 내 잠수함 공동 운용과 안보 통합을 택했다.

비록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은 KSS-Ⅲ 잠수함의 성능과 신속 납기 역량을 입증하며 향후 유럽·타 지역 잠수함 교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한화오션이 예비협상대상자로 남은 만큼, TKMS와 캐나다의 협상(6~18개월)이 무산되면 기회가 되살아나는 구조이기도 하다.

기회의 문은 다른 지역에서 다시 열린다. 인도는 2030년까지 전투함정을 85척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270억 달러(405540억 원) 규모의 재무장을, 덴마크가 대규모 함대 확장을 추진하며 정비 수요를 키우고 있다.

한국의 발목… 내부 한계도 있다


기회가 크다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한국도 인력이 부족하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조선소 역시 극심한 숙련공 부족과 주 52시간제 제약으로, 급증하는 물량을 단기간에 소화할 생산 캐파(capacity) 부담을 안고 있다. 이미 상선 슈퍼사이클 물량이 도크를 채운 상황에서 함정 MRO까지 얹으면 병목이 생길 수 있다.

둘째, 미국 내 정치 변수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국 조선 노조의 반발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골든 수정안이 상징하듯, 미 의회에는 자국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동맹 협력의 문턱을 높이려는 흐름이 상존한다.

셋째, MRO 사업 자체의 구조적 약점이다. 정비는 검사 착수 후 작업 범위가 바뀌어 사전 계획이 어렵다. 마진도 통상 한 자릿수 영업이익률에 머문다. 업계가 여러 함정을 묶는 패키지 계약과 다년 계약을 관건으로 꼽는 이유다.

3단계 수익 시나리오


그럼에도 성장 경로는 뚜렷하다. 첫째, MRO 진입 단계다. 2024년 시작돼 올해 본격화됐다. 마진은 낮지만 반복 수주와 장기 계약으로 현금흐름 안정성이 높고, 무엇보다 미국의 신뢰를 얻는 교두보다.

둘째, 블록·모듈 공급 단계다. 현행법상 한국 국내 공장에서 만든 전투함 블록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길은 막혀 있다. 그래서 한화오션은 인수한 미국 현지 필리조선소를 블록·모듈 생산 기지로 삼는 우회 전략을 편다. 미국 땅에서 만드는 블록은 해외 건조가 아니어서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HD현대도 같은 이유로 현지 생산 거점 확보를 검토 중이다. 이 단계는 결국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이 갖춰지는 속도에 좌우된다. 올해 하반기 워싱턴 DC에 들어설 한미 조선 협력 기구가 실질적 계약 흐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셋째, 현지 생산·완제 수출 단계다. 필리조선소를 20척 규모로 키우고 유럽·인도 수출을 더하면 부가가치가 정점에 이른다. HD현대와 안두릴이 공동 건조한 자율운항 무인함정 시제함은 올해 10월 미국 연안에서 시험 운항에 들어갈 예정으로, 무인함정이라는 새 축도 열린다.

관건은 두 가지다. 미국의 법적 제약이 얼마나 풀리느냐, 그리고 한국이 현지 인력·공급망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다. 필리조선소는 프로펠러와 엔진을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 원가 경쟁력 확보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미국이 자력으로 메울 수 없는 함정 수요의 구조적 공백, 그리고 유럽·인도·태평양으로 동시에 열리는 시장은 한국 조선이 향후 10년간 붙잡아야 할 최대 기회다.

신조 발주는 법에 막혔어도 정비 수요는 외주가 불가피하다. 10조 원 규모의 미 해군 MRO 진입로를 국내 업계 최초로 한화오션이 확보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