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미지 확대보기수소가격은 낮출 수 있을까. 수요기업은 가격이 내려가야 쓰겠다고 하고, 생산자는 구매자가 있어야 투자하겠다고 한다. 배관과 저장시설을 깔 사업자는 확실한 물량을 요구한다. 모두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모두가 기다리면 거래는 시작되지 않는다. 수소가격 정책의 첫 과제는 이 기다림을 끝내는 것이다.
수소를 무엇에 쓰는지부터 넓게 보아야 한다. 수소는 발전과 자동차의 연료에 그치지 않는다. 정유공정과 암모니아·메탄올 생산에 이미 쓰이는 산업 원료이고, 앞으로는 철강 환원공정의 핵심 투입재가 된다. 수소가격은 에너지 요금이자 철강·화학·정유산업의 생산비다. 청정수소를 적정 가격에 확보하지 못하면 공정 전환 기술을 개발해도 산업에 적용하기 어렵다.
시장에 맡기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수소가격에는 설비비와 전력비뿐 아니라 금융비, 저장·운송비, 공급 중단 위험이 들어 있다. 판매처가 불확실하면 투자자는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고, 적은 물량을 나르면 운송비가 오른다. 특정 수요처를 위한 생산시설과 배관은 거래가 끊기면 다른 용도로 돌리기 어렵다. 전형적인 조정 실패다. 정부의 역할은 거래가 성립할 조건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공급자를 경쟁시키는 것이다.
독일의 H2Global이 그 방법을 보여준다. 중개기관이 경쟁입찰로 공급자와 장기 구매계약을 맺고, 수요기업에는 단기 입찰로 판매하며, 그 가격차를 공적 재원으로 메운다. 다만 낮은 입찰가가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보조금으로 구매자 가격을 낮춘 것과 생산비용 자체가 내려간 것은 다르다. 유럽수소은행 두 번째 경매에서는 선정된 사업 상당수가 계약 단계에서 빠져나가, 올해 1월 지원협약에 서명한 사업은 6개에 그쳤다. 가격과 함께 자금조달과 구매계약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해야 한다.
중국은 수요를 조직하는 데 집중한다. 올해 3월 발표한 수소 종합응용 시범정책은 도시군 단위로 교통과 철강·화학 수요를 묶어 2030년 최종 이용가격을 kg당 평균 25위안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용 규모를 키워 비용을 낮추는 전략이다. 부생수소와 재생에너지 수소 등 여러 공급 경로를 함께 활용하면서 청정화 조건을 분야별로 달리 적용한다. 청정성 기준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을 늘리면서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는 참고 사례다.
한국은 상당한 산업 수요를 가진 구매국이다. 그러나 잠재 수요가 크다고 협상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실제 구매 물량과 시점, 품질을 약속하고 여러 공급자를 경쟁시킬 때 바이어의 힘이 생긴다. 기업마다 불확실한 수요를 따로 제시하는 것과 이행 가능한 계약으로 수요를 묶는 것은 전혀 다르다. 국내 생산과 수입 공급원을 함께 확보해야 협상 선택지도 넓어진다.
시간도 많지 않다. 포스코는 2028년 포항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HyREX) 실증설비를 준공하고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원전 전력을 활용한 청정수소 실증을 2028년 준공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제철기술이 완성된 뒤에야 수소를 어디서 얼마에 가져올지 논의하면 늦다. 실증 단계의 원가와 운전 자료가 상용화 단계의 구매계약으로 이어지도록 지금 설계해야 한다. 원전 전력이 곧 값싼 수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 전력으로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정부는 세 가지를 서둘러야 한다. 첫째, 공적 중개기관을 통한 경쟁입찰과 한시적 가격차 지원 제도를 만들고, 장기계약에 원가 하락을 반영하는 가격 조정 조항을 넣어야 한다. 둘째, 원전 연계 수전해가 실제 사업이 되도록 전력 이용조건을 정비하고, 계통에 기여한 수전해의 유연성에는 검증을 거쳐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셋째, 수소도시 사업은 준공 실적이 아니라 구매계약, 공급가격, 설비 가동률, 배출 감축으로 평가해야 한다.
청정수소로 가야 한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대체 공급이 준비되기 전에 기존 시장을 급격히 줄이면 운전 경험과 투자가 함께 위축된다. 기존 수소로 거래를 이어가되 배출량을 측정하고 청정수소 비중을 늘릴 일정을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
수소가격은 낮출 수 있다. 다만 기다려서가 아니라, 물량을 모으고 공급자를 경쟁시키며 설비를 더 자주 돌릴 때 낮아진다. 수소정책의 성과는 발표된 사업 규모가 아니라 확보한 계약 물량과 실제로 내려간 가격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