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운 좋게도 나는 1944년, 그러니까 노동력이 부족해짐에 따라 독일 정부가 사형시키려던 포로들의 평균 수명을 연장하기로 결정한 뒤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수용소 안의 일상을 눈에 띄게 개선하는 동시에 임의적인 사형집행을 중단시켰다. 그러므로 내 책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당혹스러운 주제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잔학상에 관해 덧붙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중략) 이 책에 나오는 일들이 모두 허구가 아님을 밝히는 것은 굳이 필요하지도 않으리라."(작가의 말 中에서)
작년 말 보고 싶은 영화 목록을 적어둔 것 중, 최근 DVD로 '더 리더'(The Reader)(스티븐 달드리 감독, 2008)와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93), '피아니스트'(The Pianist)(로만 폴란스키 감독, 2002)를 보았습니다. 느낌가는 대로 선택한 영화의 공통된 소재가 우연히 유대인들의 학살이었음을 알고, 약간은 우울하면서도 과거사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제 딸로부터 소개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심리학이나 소설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로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실화라고 듣고서 급 호감이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는 저자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산 증인이며, 이탈리아 현대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가 겪은 일들을 생생하고도 차분하게 들려주는 데, 우리 시대에 누구나 참조하고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증언 문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설명하자면,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24세에 체포되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로 이송된 후, 174517이라는 해프틀링(포로)으로 생활하는 10개월간의 체험을 전혀 가식 없이 기록한 책입니다. 특히 작가 자신이 목격하고 감내한 공포를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특유의 절제와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의 낭비도 없이 266쪽부터 340쪽까지 이어지는 부록1 「독자들에게 답한다」(1976 청소년판 부록), 부록2 「프리모 레비 작가 연보」, 부록3 「아우슈비츠수용소」, 부록4 「작품해설」이 본 책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일단,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중간 중간 숨을 몰아쉬게 되니까요.) 긴장 속에서 마지막 극적인 부분 '열흘간의 이야기'까지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다 읽고 나면,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할 일을 미루거나 안 하는 저의 게으름을 심히 탓하게 됩니다. 올해는 무슨 일을 하건 간에 더욱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살아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고, 추위를 보호해 줄 옷을 입고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주변에 먹을 것이 널려있음에 또한 너무 너무 감사하게 됩니다. 프리모 레비가 살아 돌아와 줘서 감사하고, 그래서 이렇게 인간의 밑바닥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유대인은 왜 그렇게 차별을 받아야만 했을까하는 안쓰러움과, 전 세계적으로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탄 민족을 이토록 학살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발전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해 봅니다. 작가의 아우슈비츠수용소 마지막 열흘 동안 인펙치온잡타일룽 병동에서 죽은 쇼마지를 비롯해, 당시 수많은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
하얀 눈이 오는 아침을 바라보는 여유로움도, 그 위를 두 발로 사뿐사뿐 걸을 수 있는 즐거움도 다 우리에게는 행복인 것입니다. 이 책을 추천해준 저의 아리따운 딸에게 감사하며.
이원정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도봉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