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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 등 서울대 교수 20인 '2017년 코리아 아젠다'에 답하다…헌정위기부터 4차산업혁명까지 고장난 대한민국 시계의 문제점 진단 후 공존의 길 해법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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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 등 서울대 교수 20인 '2017년 코리아 아젠다'에 답하다…헌정위기부터 4차산업혁명까지 고장난 대한민국 시계의 문제점 진단 후 공존의 길 해법 제시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지난해 우리는 소수 권력자들에 의한 초유의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사태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절망했다. 촛불로 희망을 보긴 했으나 2017년 정유년이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에 던지는 화두는 무겁고 절박하다. 안으로는 일자리 창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구현, 사회통합과 공동체 정신을 되찾는 일이 시급하고, 밖으로는 브렉시트, 보호무역주의, 난민 문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 북핵 위협과 같은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고장난 시계'를 고치기 위해 서울대 교수 20인이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집단지성으로 일자리 창출부터 4차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절박한 아젠다에 대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참여 필자는 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교수를 비롯해, 구민교 행정대학원 교수, 권오남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교수, 권혁주 행정대학원 교수, 김경범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남수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김동일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김범수 자유전공학부 교수, 김성민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김태균 교수 국제대학원 교수, 김화진 법학대학원 교수, 김현정 치의학대학원 교수, 문휘창 국제대학원 교수, 서승우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윤석민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유리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이종섭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임혜란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 차상균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최순철 치의학대학원 교수 등 미래지식사회연구소 소속 교수 2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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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코리아 아젠다'(나녹)는 참여 집필진의 전공분야와 아젠다의 중요성에 따라 ▲정치·경제 ▲국제·남북한 관계 ▲교육·대학입시 ▲사회통합·복지 ▲4차 산업혁명으로 나눠 진단하고 있다.

제1부 정치·경제는 2017년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 해결책을 제시한다. '헌정위기와 공화주의의 복원'은 2016년 하반기 우리나라를 강타한 초유의 헌정 유린 사태를 맞아 헌법 제1조 1항이 선언하는 '민주공화국'을 우리가 지금껏 잘 알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지금의 헌정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화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부와 권력의 실질적인 세습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극성으로 정치·사회 공동체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정계·관계·재계의 인사와 비선 실세에게 엄중한 정치적,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정의구현 차원에서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첫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위주의적 유산의 청산, 둘째는 우리의 무관심과 무감각, 무기력, 망각 등을 자양분 삼아 검은 권력이 독버섯처럼 자랐다는 사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또 '공익추구를 위한 정치구조의 개혁'에서는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 개혁을 위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길거리 싸움'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으나 싸움의 목적이 공적이익의 추구라는 점에서 사적이익을 위해 싸우는 조직 폭력배의 길거리 싸움과 구별된다는 점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가 직면한 문제점은 정치가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편협한 당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자신이 속한 정당, 정파, 정치세력의 사적이익을 위한 '길거리 싸움'으로 전락했다. 사적이익이 아닌 공적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구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정치구조의 중립성과 공공성 담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한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제,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회의원·기초의회의원 선출을 내용으로 하는 4년 임기의 지방자치 선거제를 특징으로 하는 '1987년 체제'의 개편이 필요하하다고 주장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미디어 정책'은 우리나라의 미래 사회를 보다 나은 성숙한 민주사회로 이끌기 위한 사회적 소통 차원의 과제와 이를 위한 미디어 정책의 과제를 논의한다. 또 '위기극복과 지속성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훌륭한 발전모델로 주목받는데도 나라 안의 여론은 비판적인 인식이 강하다는데서 시작한다. 특히 최근 최순실 사태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입장까지 가세하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비관론에 휩싸인 상태다. 이런 부정적인 미래관이 팽배한 현재, 우리나라가 어떠한 가치관과 태도로 2017년을 넘어 더 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지 경제와 경영 부문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전략적 방향과 시사점을 제시한다.

제2부는 국제정치와 남북한 관계를 다루는 세 편의 글로 구성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과 한국'은 21세기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패권변화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에 대한시사점을 도출한다.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최대의 경제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치는 큰 도전을 맞이했다. 패권경쟁의 추이를 살펴보려고 패권을 구성하는 물리적, 구성적, 제도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미국과 중국을 비교해 본 결과 중국의 경제력은 현재 미국을 추월했다고 할 수 있지만, 군사력과 제도력은 아직 뒤처져 있으며, 구성적 권력은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발전되었다. 미국과 중국이 어떤 내부개혁과정을 시도하느냐에 따라 패권변화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패권의 변화과정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미중 패권갈등의 기간 동안 힘의 이동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파악하며 우리나라는 사안별로 접근해야 하며 양측과의 전략적 외교관계로 자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남북한 사회통합'은 섬유의류산업의 관점에서 남북한 사회통합 이슈를 다루고, '국제개발협력과 한국의 원조정책'에서는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2015년에 유엔에서 합의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시대의 출범과 새로운 개발패러다임의 이행은 세계적인 공동의 과업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SDGs의 국내화에 필요한 전환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2030년까지 계속 이어질 SDGs라는 신개발담론을 설명하고 SDGs이행을 위하여 요구되는 전환적 거버넌스의 특징을 공론화하는 과정이 시급히 필요하다.

제3부는 교육과 대학입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대한민국 교육의 현재와 미래'에서는 지금 우리나라가 성적경쟁 위주의 추격형 인재양성교육에서 4차 산업혁명의 지식정보 융합사회에 필요한 인재양성교육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한다. 지능정보사회에서는 직업상황을 포함한 삶의 상황 전반이 빠르게 변화된다. 미래 세대가 변화무쌍한 미래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지식전달에서 탈피해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교육의 미래를 세대역량으로 디자인'에서 개인의 성공적 삶과 사회의 발전에 요구되는 핵심역량을 규명하고, 장기적으로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진단하고 이를 교육에 반영하려고 힘쓴다. 이 과정에서 미래세대 역량담론을 개인차원이 아닌 세대차원에서 조망하여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그 세대 전체가 누구나 공평하게 획득해야 할 역량이라는 집단적이고 공공성과 공평성에 기초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미래사회를 살아갈 학생'을 연령을 기반으로 연령대 특유의 사회문화적 체험 층위에 기반을 둔 공동체, 세대 귀속성, 공통의 표식, 공동의 정체성을 지닌 실체로 설정하고, 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의 교수학습의 양상과 이에 동반되는 역량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다.

특히 '교육과 대학입시'의 핵심은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무엇을 준비하자는 얘기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미래를 위한 준비는 바로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이고, 하려고 하는 일이 미래의 모습이다. 오늘 하는 일이 어제와 같다면, 미래는 우리가 만든 미래가 아니라 우리에게 강요된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했던 일과 다른 일을 시작해야 미래가 있다. 교육과 대학입시에서 다른 일은 기존에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결정과정을 만드는 일이다. 정파와 개인의 이익이나 신념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사회 구성원 다수의 현재와 미래 운명을 결정짓는 과정을 공개하고 이슈를 공유해야 한다. '어떻게 결정하는가'의 문제가 '무엇을 결정하는가'보다 더 중요하다. 2017년 우리사회 앞에 닥친 교육 이슈 중에서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누리과정 의무교육화'와 '2012학년도 수능'이다.

이 책은 제4부 사회통합과 복지에 이어 제5부 제조업의 위기와 새로운 생산패러다임의 등장을 배경으로 4차 산업혁명을 자세히 검토한다.

다보스포럼에서 2016년 1월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등장한 후 ICT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산업, 사회 구조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기존의 경제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내세우는 초연결성과 초지능성은 생상성과 편의성이 증대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일자리 감소 등의 부정적 결과도 초래할 것이다. 전통적 제조업에는 사이버물리 시스템이 도입되어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소비자 맞춤형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의 변화가 예상된다. 공유경제 등의 신개념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에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의 도입으로 촉발된 4차 산업혁명은 기회인 동시에 커다란 위기이기도 하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교육, 경제 등 모든 부분에서 4차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장기계획 수립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는 이제 초기 연구수준을 지나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자율주행은 가까운 미래에 사람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일상적 기술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전통적 자동차 산업과 경제, 사회와 우리의 문화 전반에 폭넓은 변화를 가져올 'Game Changer' 역할까지 할 것이라고 저자는 예견한다. 이러한 영향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술적 관점에서는 현재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고, 법적·윤리적 관점에서는 사고 때 분쟁을 해결할 책임 소재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 자동차와 외부 간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사생활 침해와 해킹 등 정보보안 문제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이 실현되려면 인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작동하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미지의 사고 상황에서 도덕적이고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판단 시스템의 구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어떤 판단이 가장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할 논의의 장이 서둘러 마련되어야 한다.

'섬유패션산업'은 최근 첨단 기술에만 치우친 연구개발 정책과 투자로 전통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을 다루며,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한 '의료산업'은 의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으로 구별해 논의한다. 우리 의약산업은 의료기기산업과 비교하여 정부가 관여하는 비탄력적인 특성을 보유한 의약품 가격과 함께 고위험·고수익 산업이고, 아직도 글로벌 경쟁력에서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의료기기산업은 의약산업에 비하여 연구개발 기간이 짧고, 임상에서 꼭 필요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한다면 소규모의 투자로도 국내와 글로벌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상용화할 수 있다. 의료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업과 병원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병원은 신기술이나 보험수가 등재 등 국내의 안정적 시장 확보, R&D 전 과정에 기업·병원 연계 시스템 구축, 인허가와 마케팅을 위한 의료기기 안전성과 효율성, 규제 효율화를 통한 신속한 시장 진출, 더 나아가 글로벌시장 개척을 위한 임상교수의 활동지원과 기업과 첨단의료복합단지·병원·인증기관을 연계하는 신뢰성 평가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