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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사상 첫 '0달러' 제련 계약에 구리값 하락…공급망 재편 신호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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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사상 첫 '0달러' 제련 계약에 구리값 하락…공급망 재편 신호탄 되나

구리 정광 부족-中 제련 능력 과잉 맞물린 결과…시장 우려했던 '마이너스' 수수료는 피해
中 대규모 수출에 단기 공급 숨통…美 관세 등 겹쳐 변동성 지속 전망
최근 중국 제련업체와 칠레 광산업체가 사상 처음으로 ‘0달러’에 구리 정광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구리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구리 정광 부족과 중국 내 제련 설비 과잉이 맞물린 이번 계약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중국 제련업체와 칠레 광산업체가 사상 처음으로 ‘0달러’에 구리 정광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구리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구리 정광 부족과 중국 내 제련 설비 과잉이 맞물린 이번 계약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사진=로이터
닷새 동안 이어진 구리 가격 상승세가 꺾였다. 칠레 광산업체 안토파가스타와 중국 주요 제련소들이 구리 정광 처리비용(TC/RC)을 사상 처음으로 '톤당 0달러'에 합의하는, 시장의 구조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전 세계의 구리 정광 공급 부족과 중국 안의 제련 능력 과잉이 맞물린 결과로, 시장이 우려했던 '마이너스(-)' 수수료 계약을 막아내며 심리적 바닥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7일(현지시각) 마이닝닷컴,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코멕스(Comex) 시장에서 9월 인도분 구리 가격은 닷새간의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과 중국발 공급 확대 기대감 때문에 전날보다 1% 이상 하락한 파운드당 5.0450달러(톤당 1만 1120달러, 약 1517만 원)에 거래됐다. 미국의 관세 부과를 앞둔 선제 매수세 때문에 미국과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가격차는 이미 크게 벌어졌다. 같은 날 LME 3개월물 구리 가격은 톤당 9887달러(약 1349만 원)로 더 높게 형성됐다.

◇ 사상 초유 '0달러' 계약… 이유는?


이번 가격 하락은 중국 제련업체와 칠레의 광산업체 안토파가스타가 맺은 제련수수료 계약에서 비롯됐다. 양측은 2026년 생산분 절반의 구리 정광 처리비를 톤당 0달러, 파운드당 0센트로 책정했다. 이는 2025년 한 해 기준 가격인 톤당 21.25달러에 비하면 파격 조건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미 손실을 보던 중국 제련업체들이 안토파가스타의 구리를 수수료 없이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구리 정광 공급이 심각하게 부족한 가운데 중국 정부의 에너지 비용 지원 정책에 힘입어 제련소가 늘어난 것이 주된 배경이다. 현물(스팟) 시장의 처리비는 이미 톤당 마이너스 43달러 수준까지 떨어져 제련소가 광산업체에 비용을 내줘야 했다. 이 때문에 '0달러' 합의는 제련소들이 최악의 음수 계약을 피하고 업계의 심리적 저지선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안토파가스타는 협상 초기에 톤당 마이너스 15달러를 제시했으나 최종적으로 '0달러'에 타결됐다.

◇ 中 제련사 수출 확대… 시장은 '촉각'


이런 가운데 일부 중국 제련업체들은 LME의 숏 포지션(공매도)을 풀기 위해 수출을 서두르고 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은 장시구리(Jiangxi Copper), 퉁링비철금속그룹(Tongling Nonferrous Metals Group) 등이 총 3만에서 5만 톤 규모의 정제 구리를 아시아 LME 창고로 내보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움직임은 단기로 세계 공급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거꾸로 중국 내수 시장의 공급은 더 빠듯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국제구리연구그룹(ICSG)은 2025년 세계 구리 시장이 28만 9000톤 공급 과잉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정광 부족과 지역별 공급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투자은행은 미국 밖의 공급난 때문에 LME 구리 가격이 오는 8월 톤당 약 1만 50달러(약 1371만 원)로 정점을 찍은 뒤, 9월 미국의 관세가 시행되면 다시 1만 달러(약 1364만 원) 밑으로 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요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사회기반시설 투자가 성장을 꾸준히 이끌고 있다.

◇ '0달러'가 새 기준점… 구리 시장 어디로


이번 합의는 중국 제련소의 집단 협상력과 세계 공급망에서 높아진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기준 가격 협상에서 '0달러'가 새로운 심리적 저지선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LME 재고가 급감하고 백워데이션(현물가 강세)이 심해지는 등 시장의 구조 불안은 여전하다. 미국의 관세 부과, 달러 약세, 중국의 산업 정책 같은 복합 변수가 맞물리면서 구리 가격의 높은 변동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