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조원 안 되는 한국시장에 해외기업 몰려
탈고, 한국 지렛대 삼아 해외시장 진출위 한 포석
27년간 2.7조 민간 투자해 이뤄낸 고속철도 기반 위기
296개 국내기업중 283개가 종업원 수 50명 미만 기업
탈고, 한국 지렛대 삼아 해외시장 진출위 한 포석
27년간 2.7조 민간 투자해 이뤄낸 고속철도 기반 위기
296개 국내기업중 283개가 종업원 수 50명 미만 기업
이미지 확대보기납품 실적을 쌓기 위해 사업을 수주하려는 해외업체들의 진입이 본격화했고, 정부는 고속차량 입찰 문턱을 알아서 낮춰 일반 전동차 입찰 수준으로 자격 제한을 완화해 지난 27년의 기간 동안 2조7000억원의 민간투자와 별도의 국고 투입, 대규모 인력을 들여 개발한 순수 국산 고속차량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는 최악의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해외업체 ‘스펙 쌓기’ 최적화된 한국 시장
그간 국내 철도차량 시장은 낮은 진입 문턱에도 불구하고 해외업체가 들어올 유인이 많지 않았다. 시장 규모 자체가 워낙 협소한 데다 차량당 발주 단가도 낮아 개별 업체가 영업이익을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스페인 탈고(TALGO)의 국내 시장 진출이 ‘스펙 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국내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사를 둔 탈고는 캐나다 철도차량 제작사 봄바디어(Bombardier)와도 기술제휴를 맺은 바 있는 글로벌 제작사다. 동력 집중식 고속차량을 납품해 온 탈고는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납품 실적을 쌓는 것이 미래를 위해 매우 절실하다.
유럽철도산업연맹(UNIFE)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고속차량의 약 75% 이상이 동력 분산식이다. 수송력이나 선로 유지보수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동력 분산식 도입은 앞으로 더욱 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업체 진입에 관대하면서도 다른 글로벌 경쟁사로부터 견제받을 우려가 없는 국내 시장에서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입찰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탈고에 희소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수익보다 동력 분산식 납품 실적이 중요한 탈고는 이번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입찰에서 응찰가를 최대한 낮추는 식으로 수주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기업 규제 철폐로 국내기업 ‘역차별’
2005년 코레일이 발주한 KTX-Ⅱ(현 KTX-산천) 100량짜리 사업에서 현대로템은 고속차량 기술을 이전했던 프랑스 알스톰과 경쟁해 최종 낙찰됐다. 산업 보호를 위한 정부의 조치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코레일이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삭제한 뒤로 해외업체가 자유롭게 입찰에 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탈고도 뛰어들었다. 국내 시장 입찰에 대한 어떠한 자격 제한이 없으므로 코레일이 요구하는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제작 경험이 없더라도 최종 낙찰이 가능하다.
이미지 확대보기기술 종속되면 고속차량 산업 생태계 고사
자격이 불충분한 해외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시장 진입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국내 고속차량 산업 생태계의 붕괴다. 철도차량은 국가 기간교통망이자 국민의 대중적 교통수단이지만 국내 시장 규모는 최근 5개년 평균 약 9400억원 정도로 매우 열악하다. 이는 글로벌 철도차량 시장 규모(연 80조원) 대비 1% 미만 수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고속차량은 최근 10개년 기준 연평균 2000억원 규모로 오는 2027년 이후 대폐차 물량이 본격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소량이다. 지금부터 해외업체의 초기 진입을 막지 못한다면 고속차량 발주물량마저 해외업체의 몫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특히 탈고의 사례처럼 동력 분산식 납품 실적이 없는 업체가 최종 낙찰된 선례를 남긴다면 국산으로 둔갑한 해외 고속차량의 국내 진입이 줄줄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는 총 296개 철도차량 부품업체가 있는데, 이 가운데 283개 업체가 종업원 수 50명 미만인 중소기업으로 영세하다. 국내 고속차량 업체가 수주량이 줄어들면 이들 영세 부품업체는 도산 위기로 연결된다.
국산 고속차량 수주가 줄어들면 연구‧개발(R&D) 투자는 감소하고 그만큼 해외 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면 국산 고속차량의 해외 수출길도 막히게 된다. 비용도 문제다. 해외업체가 시장진입 목적으로 한시적 저가 공급 전략을 내세운 이후 유지보수 공급 단가 인상책으로 손실 만회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속차량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부의 제도적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21조1항3호)에는 ‘특수한 설비 또는 기술이 요구되는 물품 제조의 경우에는 당해 물품 제조에 필요한 설비 및 기술의 보유상황 또는 당해 물품과 같은 종류의 물품제조실적’으로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라면서,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 납품 실적이 없는 탈고조차 입찰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