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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의 춤 성찰(Ⅱ)-우락(羽樂) '한여름 밤의 춤'…여덟 편의 전통춤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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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의 춤 성찰(Ⅱ)-우락(羽樂) '한여름 밤의 춤'…여덟 편의 전통춤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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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의 '입춤'
8월 25일(금) 저녁 7시 30분, 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 주최의 국수호의 춤 성찰(Ⅱ)-우락(羽樂)이 「한여름 밤의 춤」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입춤」(국수호), 「화랭이춤」(김진아), 「하슬라 정백」(精魄, 이동하 심재훈 손무경 선승훈 노연택), 「호적산조」(笛, 황재섭), 「한국 최초의 무희 ­ 배구자의 타령춤(노해진), 「춘설」(春雪, 이민선 이연희 이청산), 「무동」(舞童, 조의연), 「우락」(羽樂, 국수호)에 이르는 여덟 개의 레퍼토리로 구성된 춤은 윤중강이 해설을 맡았고, 춤의 정본을 감상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입춤」(立舞) : 맨손 춤이다. 춤에 뜻을 두고 첫발을 떼는 기본 춤이며, 농익은 완성의 단계에서 꺼내는 춤이다. 국수호의 입춤은 전북의 것을 정형으로 삼으며 정자선의 아들 정형인에게 배운 후 자신의 가락을 더 해 다듬은 남무(男舞)이다. 수묵을 배경으로 망건에 다 품격의 위상이 돋보이며 꽹과리를 뺀 삼물과 대금, 거문고에 맞춘 디딤이 활기와 어울린다. 이매방류 승무 1호 이수자이자 여러 전통춤에 두루 능통한 그가 요즈음 판에서 입춤을 춘다. 절제된 몸의 기본이 전통춤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교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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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의 '화랭이춤'

하슬라 정백(소리 김영안)이미지 확대보기
하슬라 정백(소리 김영안)


「화랭이춤」 : 경기도당굿의 굿거리들을 진행하는 박수가 ‘화랭이’ 이다. 신라의 화랑에서부터 이름이 유래한다. 고증의 옛 사진이 투사된다. 축원·축수의 매개자 화랭이는 오방색 주조의 무녀복과 긴 갓을 쓰고 다양한 성격의 춤과 굿거리를 관장한다. 신을 청하고(청신), 신을 가르고(가래조), 신을 축출 귀속시킨다. 나라의 국태민안 굿부터 마을의 안녕과 부귀의 축원굿까지 모두 아우른다. 당당하고 호탕한 남성적 기운이 굿 전체를 관통한다. 꽹과리를 집어 들고 놓고 다시 집어 들며 굿을 관장하는 화랭이의 다양한 춤사위와 가락을 바탕으로 춤이 진행된다. 김진아의 춤은 꽹과리를 가슴에 보듬고 끝난다. 오십 년 전 도당굿을 새긴 국수호 지음의 춤이다.

「하슬라 정백」(何瑟羅 精魄) : 하슬라는 강릉 땅의 고구려 때 이름이다. 동해의 모진 파도와 태백산의 산등성이를 넘고 살았을 특별한 삶이 펼쳐진다. 짊어지고 살아 이어온 영혼들의 한과 정이 무대에 잡힌다. 강원도 정선아리랑의 혼백을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하슬라인들의 정과 한을 풀어 내보는 태초의 춤이다. 김영안의 소리가 강원도의 영상과 만나면서 투박하고 듬직한 원시적 사내들이 등장한다. 다듬지 않은 원시적 모습은 석기 시대를 접하는 듯하다. 영상은 강원도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전경으로 가무를 이끈다.

황재섭의 '호접산조'이미지 확대보기
황재섭의 '호접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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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진의 '배구자의 타령춤'


「호적산조笛」 : 적, 소리가 날아다닌다고 해서 ‘날라리’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호적 소리는 십 리 밖에서도 들린다”라고 한다. 급한 소리를 안 낸다고 해서 태평소라고도 불린다. 호적 소리를 몸으로 잡아 몸 소리가 들린다는 적(笛)은 인간의 몸 울림이다. 공간을 잡는 몸에 기운이 파장을 이루고 아래·위 좌우의 기운이 질펀한 춤 소리이다. 갓에 꿩 털 두 개 꼽고 부채 하나씩 두 손에 들고 춤추며 호적 소리는 몸을 울리게 하는 듯하다. 몸의 소리가 듣고 보는 모든 이에게 몸에 스며든 빛과 느릿한 역동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배구자의 타령춤」 : 배구자(裵龜子, 1905~2003)는 한국 최초의 무대 무용가였다. 열두 살에 천승곡예단(天勝曲藝團)에 입단하여 한국인 최초로 서양무용을 배웠고, 전통무용의 현대화에 노력했다. 뉴욕에서 안나 파블로바로부터 4년(1928~1932)간 발레를 배운 춤의 선각자였다. 노해진은 원각사 터(정동극장)에서 한국 최초의 무희를 생각하며 춤을 재현했다. 일본 포리도루 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배구자 악극단의 배구자가 부른 천안삼거리에 맞추어 춤이 창작되었다. 배구자와 춤 동작에 관한 고증적 사진과 시각적 이미지에 접근하는 노력과 음원이 현란한 노해진의 춤과 어울려 과거에 있는듯한 보랏빛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재하의 거문고 창작곡이 아름답다.

이민선, 이연희, 이청산의 '춘설'이미지 확대보기
이민선, 이연희, 이청산의 '춘설'

조의연의 '무동'이미지 확대보기
조의연의 '무동'


「춘설」(春雪) : 천년의 소리에 가야금의 향이 품어내는 봄, 사람의 몸 향기이다. 봄눈 녹는 시절, 청노루가 튀어나오고 참꽃이 피어 화전의 낭만을 부르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화평의 세상에 꽃을 맞으면 그곳이 무릉도원이다. 영상 문이 열리면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이 연출된다. 부채를 든 세 여인은 가야금 소리에 취해 봄을 만끽하고 있다. 새로운 전통춤의 모습으로 십팔현(十八絃) 가야금 음악의 내적 응집성을 몸으로 연주하는 형식으로 안무 되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이 시대를 거슬러 신선의 세계로 확장된다.

「무동」(舞童) : 무동은 김홍도화(金弘道畵) 속의 춤추는 아이이다. 국수호 창작의 변화무쌍이다. 무동은 붉은 신발, 모자에 붉은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다. 그 춤추는 아이를 2012년 초연에 무대에 올렸다. 세월을 전하는 아이는 성장의 나이테를 입었다. 삼현육각 타령장단에 맞춰 무동은 살아나와 무대를 가르고 자진모리장단에 온 사방에 흥과 멋을 떨어뜨려 관객 마음을 설레게 하고 동살풀이에 흥을 싣는다. 「무동」(舞童)을 추는 사람은 온몸으로 무대에 흥을 퍼지른다. 관객과 소통하듯 에너지를 쏟은 작품은 연기영역이 넓다.

「우락(友樂) : 초수대엽 동창이」 : 우락(羽樂)의 本心, 남창가곡으로 마음의 춤을 춘다. 시간의 흐름을 노래한 가곡 가사들을 들으며 서른일곱(1987년)에 이수대엽 그 느린 춤을 만들었고, 삼십오 년 뒤 <초수대엽 동창이>를 추었다. “한국 악에는 있는데 춤에는 없는 소재들을 저 지난해 舞樂에 시작했는데 友樂 기획공연에 초대되어 ‘초수대엽 동창이’를 몸에 실었다. 한국춤의 정취는 가득한데, 심취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시작한다.”라고 말하는 국수호의 모습에서 내공의 심오함을 느꼈다.

초수대엽 동창이의 '우락(友樂)'이미지 확대보기
초수대엽 동창이의 '우락(友樂)'


모두가 문명의 대오(隊伍)로 뛰쳐나가는 이 시대에 전통춤이라는 화두를 두고 성찰하는 국수호의 모습은 현실을 초월하는 학자의 모습이다. 춤은 몸으로 쓰는 시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수호는 이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다. 시성(詩聖)으로 가는 길목에 도반의 제자들은 꽃 대신 춤으로 그에게 존중의 서사를 써내었다. 아름다운 날,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고 춤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야 한다. 술한 전통춤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 춤의 소중함이 알려지듯 국수호의 춤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기억해야 한다.

「한여름 밤의 춤」은 전통춤 창작의 품격을 보여 준다. 시대의 무용가 국수호는 레퍼토리를 잘 배합하였고 연출과 안무를 조율해내며 참여 무용가들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춤의 달인답다. 국수호가 주도하는 춤은 늘 진정성을 보여 왔다. 전통춤의 본질을 꿰뚫고, 창작해내며 자기화시켰다. 간지럽힐 정도로 정갈하게 차린 여덟 편의 작품은 나머지 편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탁월한 기량의 수준을 맞추려는 서로의 노력이 「한여름 밤의 춤」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이 품격의 춤 향연이 지속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장석용(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 제공=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