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 김정호가 스타트업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 지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
내가 '대동여지도'를 그려나갈 때, 사람들이 자주 비꼬듯 물었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느냐"고. 그때마다 답했다. "지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오늘날 그대들이 만드는 '프롭테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완벽한 플랫폼, 치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며 출발하지만, 막상 시장에 나가보면 예상과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고객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기능을 원하고, 경쟁자는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내 지도도 처음에 틀린 곳 투성이였다. '청구도'를 만들 때는 백두산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았고, 섬의 크기도 실제와 달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걸었다. 다시 물었고, 다시 그렸다. 그렇게 30년을 거쳐 비로소 '대동여지도'가 나왔다.
◇ 기술을 따르되, 두 발을 믿어라

그대들의 시대에는 참으로 신기한 기술들이 많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인공의 눈도 있고, 사람보다 빠르게 계산하는 기계도 있다. 유용한 도구들이다. 나 역시 당시 굉장히 정교한 나침반을 사용했고, 측량 기구를 구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정교한 기구가 있어도 반드시 직접 걸어서 확인했다. 기구는 숫자를 알려주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길이 비가 오면 끊어지는지, 어느 다리가 노약자는 건널 수 없는지, 어느 마을에 우물이 마르는지는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알 수 있었다.
그대들이 말하는 부동산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실제 그 마을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있을까. 임대료가 오르면 어떤 기분인지, 주변에 새 건물이 들어서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만나봐야만 안다.
◇ 혼자 걷지 말고, 함께 걸어라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혼자서 대부분의 일을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었다. 국가의 지원이 없고, 뜻을 함께할 동료 구하기가 귀했다. 그래서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들은 다르다. 협업이라는 것이 일상이고, 네트워크라는 것이 자연스럽다. 혼자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함께 발전하는 길을 택하라.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장 전체를 키우는 일이다. 나 혼자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정확한 지도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나.
정보의 표준을 함께 만들고, 기술을 공유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라. 그렇게 해야 '한국 프롭테크'라는 큰 지도가 완성된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되 실패에서 배워라
내 생애 가장 큰 실패는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직후 일어났다. 일부 관료들이 "지도가 너무 정확해서 외국에 유출되면 위험하다"면서 판목을 불태우라고 했다. 내 평생의 작품이 한순간에 재가 될 위기에 처했다.
절망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깨달음을 주었다. 좋은 것을 만드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실제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대들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내놨는데 고객들이 외면한다고 쉬이 포기하지 마라. 돈을 빌리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마라. 대신 그 실패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라.
'대동여지도'를 보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이렇게 큰 일을 혼자 해냈느냐"고.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큰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을 지도부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우리 고을, 그다음에는 우리 도. 이렇게 하나씩 확장해 나갔다. 작은 지도를 정확하게 그릴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큰 지도를 그릴 수 있겠는가.
그대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전체 부동산 시장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은 좋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동네, 한 건물, 한 명의 고객부터 해결해보라. 그곳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신뢰가 자연스럽게 확장될 것이다.
◇ 이익을 좇되 가치를 잊지 마라

요즘 젊은 기업인들을 보면 '뿔 달린 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이해한다. 사업이니 수익을 내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정한 가치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내가 지도를 만든 이유는 명예나 돈 때문이 아니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안전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농민들이 더 나은 땅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대들의 프롭테크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시장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가치 아닌가.
마지막으로, 길은 걸어야 생긴다. 아무리 정교한 지도가 손에 있어도 걷지 않으면 종이 위의 선에 불과하다. 완벽한 사업계획이 있어도 시작하지 않으면 머릿속 상상에 불과하다.
프롭테크든 다른 분야든, 그 모든 것이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이다. 이전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고, 이전에 없던 가치를 창조하고, 이전에 없던 연결을 만드는 일.
때로는 험하고, 막막하고, 혼자인 것 같겠지만 포기하지 마라. 그대들이 걷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후세 사람들이 따라올 길이 될 것이다.
나는 30년을 걸어 조선 팔도의 지도를 완성했다. 그대들은 얼마나 걸어서 어떤 지도를 완성할 것인가.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모든 이에게, 2025년 7월 한강을 바라보며, 김정호(1804?~1866?·조선 후기 지도 제작자)가.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