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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의 손맛으로 빚는 지평막걸리, 바로 이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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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의 손맛으로 빚는 지평막걸리, 바로 이맛이야!”

'지평막걸리' 가업 4대 이어온 31세 사장

'87년의 손맛'에 인생을 걸었다
6.25지평리 전투 역사 간직 자부심

건강하고 맛있는 술 빚는 게 목표

전통 주조과정 체계 잡은 후 마케팅 혁신할 터


지평막걸리 4대 사장 김 기 환 대표


▲ 6.25전쟁 중에는 UN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한 붉은색 목조건물의 지평양조장./사진=문승연 기자[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네이버 백과사전이나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서 ‘지평양조장’을 검색해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중 하나’, ‘한국전쟁 당시 인근에서 잔존한 유일한 건물로, 지평리 전투 당시 UN군 사령부로 사용’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1925년 처음 문을 연 지평양조장은 1대 사장인 고 이종환 씨가 경영하던 것을 2대 사장인 김교십 씨가 인수했고, 그의 아들 김동교 씨를 거쳐 현재 4대 사장인 김기환(31) 씨가 양조장의 대를 잇고 있다.

10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의 손맛을 되살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사장 김기환 씨는 홍보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2010년 가업(家業)을 잇기로 결심, 술맛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물론 최근에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긴 했지만, 전국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양조장은 살아남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김기환 씨는 가업을 물려받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전통의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체제를 갖추고 나면 자신의 전공인 홍보감각을 살려 ‘지평막걸리 전문점’을 여는 등 막걸리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해보이겠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경기도 양평의 지평양조장에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기환 사장을 만나 백년 기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지평막걸리 4대 사장 김기환 대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데….


“아버지는 제가 대를 이어 양조장에 발을 들여놓는 걸 처음엔 반대하셨어요. 막걸리는 사양산업이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지요. 그러나 저는 80여년이라는 긴 세월의 무게를 잘 살려낸다면 지평막걸리라는 브랜드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변화를 시도하다가 그보다는 먼저 전통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 들어 ‘술맛’에 집중하고 있어요.”

-광고회사 사원에서 양조장의 주인으로 직업을 바꿀 때 나름대로 목표가 있지 않았습니까?


“양조장을 크게 키우겠다는 생각은 없고 우리의 색깔 있는 술을 만들어 작지만 오랫동안 갈 수 있는 양조장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각종 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여 궁극적으로는 독일의 소규모 맥주공장 정도로는 키워볼 생각입니다.”

-지평양조장은 한국전쟁 당시 인근에서 잔존한 유일한 건물로, 지평전투 당시 UN군 사령부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맞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이 이곳에서 직접 지휘를 했다고 해요. 몽클라르 장군은 자신의 계급을 자진 강등하면서 부대를 통솔하겠다고 나선 전설적인 인물로 지평전투에서 큰 공적을 세웠다고 합니다. 6‧25기념일이 다가오면 프랑스 대사관이나 미군부대에서 지평전투 현장을 둘러보고 저희 양조장에 들릅니다. 지평전투 60주년 당시에는 300명이 방문했습니다.”



-지평막걸리는 진(眞), 미(美)로 구분되어 나오는데, 무엇이 다른지요?


“지평막걸리 진은 밀로 만든 술이고, 지평막걸리 미는 쌀로 만든 술입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누룩의 원료가 밀가루이기 때문에 쌀 막걸리는 쌀 70%와 밀가루 30%의 비율로 배합한 것이고, 밀 막걸리는 100% 밀로 생산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쌀보다는 밀로 만든 술이 더 많았는데, 요즘은 쌀로 만든 술이 더 많이 팔려요. 쌀술이 깔끔한 맛을 낸다면, 밀술은 조금 걸쭉한 맛이 납니다. 그런데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서울에서도 걸쭉한 맛을 내는 밀술을 찾기도 합니다.”

지평막걸리를 서울에서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전문 양조회사의 전국 유통망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양평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유통을 하되, 일부 서울 지역에서만 유통하고 있다. 진대감 신사점을 방문하면 집 막걸리와 맛이 흡사한 지평막걸리를 마실 수가 있다.

-막걸리의 맛을 위해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지요?


“가장 큰 노하우는 오동나무에서 누룩 배양작업을 하는 데 있어요. 지평막걸리는 막걸리 특유의 쌉쌀한 누룩의 향과 오동나무의 향이 결합되어 묵직한 감칠맛을 냅니다. 요즘엔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전문업체로부터 누룩을 가져다 쓰거나 양조 과정을 기계화하고 있는데 반해 저희는 마지막 단계인 병에 주입하는 과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부분 또한 다른 주류업체와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술맛은 누룩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누룩을 제조하는 단계는 가장 손이 많이 간다. 찐 밀가루에 백국균(누룩곰팡이)을 입힐 때 온도가 36~42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적정 온도를 벗어나게 되면 균이 자라지 않거나 죽게 된다. 따라서 온도를 유지하며 골고루 균을 입히기 위해 1시간 가량 손으로 섞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김 사장은 이와 함께 막걸리는 90% 이상이 물이기 때문에 양평의 맑은 물이 맛을 더 좋게 한다고 덧붙였다. 지평양조장은 막걸리를 지하수로 만들고 있는데, 아무리 가뭄이 와도 수원(水原)이 마르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 누룩 발효실

-한창 잘 나가던 막걸리가 주춤합니다. 지평막걸리는 어떻습니까?


“막걸리의 인기가 예전에 비해 주춤해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평막걸리는 전통 맛을 고수한 덕분에 오히려 수요가 조금 늘어났어요. 막걸리 시장에 변화가 오면 저희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준비할 생각입니다. 우리 전통술에 대해 더 연구하고 유통망도 한걸음씩 넓혀나가면 지평막걸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지평막걸리는 하루에 얼마나 생산합니까?


“계절별로 차이가 많이 나요. 무더운 여름철이면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추운 겨울철이면 소비가 줄어들어요. 지난해에는 평균 월 매출이 7000만~8000만 원선이었는데, 올해는 1억 정도 됩니다.”

-서울에서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데, 유통현황은?


“서울 전역에는 못 나가고 있지만, 서울 일부 지역에는 공급하고 있어요.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는 대형 유통망이 장악하고 있어 맛만으로는 뚫기가 만만치는 않아요. 그러나 지평양조장의 시스템이 정착하고 나면 대형마트에도 도전할 작정입니다. 지금도 대형마트 일부에서 제의가 들어오지만, 갑자기 생산량을 늘릴 수도 없어 무작정 일을 저지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 지평막걸리 제품 검사과정

-국순당 막걸리와 경쟁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하죠. 국순당은 연구개발을 많이 했고 존경할 부분도 많아요. 게다가 자본력도 있고 유통경쟁력도 높아 저희가 경쟁할 상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희는 오로지 제품의 질로만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그 다음에 직원관리와 함께 설비투자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고무적인 일이 있다면 지평막걸리가 새로 들어가는 곳에서는 국순당에 비해 판매율이 높다는 점이에요. 그렇다고 국순당이나 서울탁주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늘 우리 색깔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김 사장은 어떤 술을 좋아하시나요?


“막걸리 회사 사장이니 당연히 막걸리도 좋아하고, 시원한 맥주도 좋아해요. 예전에는 맥주를 자주 마셨는데,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막걸리와 우리 전통술을 자주 마십니다.”



▲ 지평막걸리를 병에 주입하는 생산라인
-앞으로 지평양조장을 어떻게 키워나갈 생각이십니까?


“숙성 시간이 여름과 겨울이 달라서 계절마다 술맛이 달랐어요. 생산자 입장에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일일수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지평막걸리는 가양주(家釀酒)이므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도록, 무엇보다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생산체계를 정착시켜 지평막걸리만의 색을 찾고, 우리 몸에 좋은 술을 생산해야지요.”

-지평막걸리는 그 맛에 비해 다양한 마케팅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광고회사 출신인 제가 더 노력을 해야 하지요. 변변한 홈페이지조차 없어 제작을 의뢰해 놓은 상태입니다. 거의 제작을 완료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벤치마킹하고 싶은 미국의 술 회사가 있어요. 그 회사는 자사의 술을 파는 가게를 오픈했는데, 저희도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평막걸리의 다양한 맛과 함께 막걸리에 어울리는 다양한 한식 안주를 선보인다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영업력이나 자본력이 된다면 대형유통보다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옛것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지요.”


-소비자들에게 지평막걸리가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마시면 마실수록 찾는 술,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술로 소비자들에게 기억되길 바랍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마시는 막걸리의 맛이 이게 지평막걸리이구나, 하고 차별화되었으면 합니다. 대부분의 막걸리가 비슷한 맛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평막걸리는 확실히 맛이 다르다는 소비자의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 제품 출하 과정
-경영철학이 있다면?



“아직 거창한 경영철학은 없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대로 미흡한 부분이 보이면 그 부분부터 개선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특히 지평양조장은 붉은색 목조건물인데다가 흙벽이라 위생관리에 커다란 신경을 씁니다. 제가 지평양조장을 맡은 지 3년째인데, 시간이 지나면 제 나름대로 경영철학을 만들어야 하지요. 그러나 아직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제 곧 100년이라는 전통을 갖게 됩니다. 100년 기업으로서 남다른 목표나 각오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건강한 술맛을 내는 기본적인 일에 충실하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위생이나 품질개선이 성공하면 지평막걸리만의 색깔을 드러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는 2024년 100년이 되는 해에는 풀무원이 건강기업으로 자리매김했듯이 지평막걸리도 한국인의 건강술로 자리매김해보고 싶습니다. 예전의 가양주(家釀酒)는 대개 그 가문의 몸을 보양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들었어요. 지평막걸리도 우리 몸에 좋은 술을 생산해 널리 보급할 생각입니다. 그게 100년 기업의 의무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