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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장현수 안무의 '생수(生水)'…시적 상상력과 절정의 기량이 낳은 격조의 전통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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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장현수 안무의 '생수(生水)'…시적 상상력과 절정의 기량이 낳은 격조의 전통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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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의 춤 도살풀이.
장현수의 무역(舞域)은 경계가 없다. 그녀는 바람과 구름의 신비를 독해하여 춤에 응용하는 무예인(舞藝人)으로서 전통춤의 현대적 해석과 동시대적 춤의 전통미 구사로 담대한 진전을 보인다.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수요춤전'에서 만난 오월의 전통무용 선정작 『생수』는 한국전통춤 연기자의 정형인 국립무용단 주역무용수 장현수(들숨무용단 비상임안무가)의 절정의 춤 기량, 감각적 연출, 땀을 볼 수 있는 거리에서 공감하며 품격으로 관객을 존중하는 공연이었다.

때나 곳에 관계없이, 혼자 춤을 추거나 어울려 춤을 추어도, 어느 빛과 어울리거나 장단에 맞추어도, 차림이 화려하거나 수수해도 장현수의 존재감은 극(極)을 발한다. 느긋하게 춤을 대하는 자세와 극성이 가미된 대목을 만나면 그녀의 연기력은 도드라지고 경탄을 자아낸다. 강산이 변하고 또 넘어가는 봄에도 나이를 잃은 장현수의 춤은 현대의 도회적 윤기를 더하여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고, 생수처럼 시원한 맛과 시각적 청량감을 선사하였다.

『생수』는 대지의 춤(태평무), 동진의 춤(승무), 기원의 춤(검무), 방어의 춤(도살풀이), 즐김의 춤(한량무), 환영의 춤(장고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수』에서 장현수는 검무에 송원선이 독무로 나서고, 한량무에 소리꾼과 송원선이 장현수와 삼인무를 이룬 것 말고는 혼자 춤을 춘다. 전통의 도식적 공식을 우회하여 약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면, 칸딘스키적 발상이 아니더라도 춤의 미묘한 변화가 감동의 전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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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춤 태평무.

대지의 춤(태평무); 달관에서 분출되는 자유로운 춤 연기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춤이 아니어도 병풍, 의상, 표정을 비롯한 자세가 미술품이다. 기존의 십장생도 대신 은은한 단색 금빛의 병풍, 마음의 심중을 보이며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 의상에 새겨진 붉은 소나무가 일편단심의 심지 굳은 왕비의 위엄과 신비를 보인다. 정주의 울림을 시작으로 가야금에서 사물로 넘어가며 해금이 감정변화를 조율해낸다. 궁녀는 보이지 않고, 에너지 충만한 춤은 더욱 자유롭게 보였고, 메마른 현대인들의 가슴에 단비처럼 내리는 춤은 장현수가 기원하는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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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의 춤 승무.

동진의 춤(승무); 담론 도입을 위한 엄숙한 진청(眞靑)의 제의는 하늘을 내리고 존중을 표하면서 시작된다. 소나무를 대북의 대안물로 전개시킨 춤은 구음의 가세로 상승효과를 이룬다.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안정된 춤 구사 속에 뿌려지는 천의 유희는 춤 철학의 본질로 향한다. 오방의 이치를 곁에 두고 벌이는 춤 수사는 타고(打鼓) 속에 강조되는 초월적 의지를 부각시킨다. ‘승무’와 자신의 춤 인생을 일관된 톤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을 집중으로 몰아넣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힘은 한국춤의 전통과 깊이를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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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의 춤 검무.

기원의 춤(검무); 송원선의 검무에서 사용되는 검은 기방이나 무속의식에서 사용되는 꺾이는 칼이 아니라 목검이다. 전립은 없고, 전복과 전대 등 무복과 무구도 연출의 의도로 생략되어 있다. 현대적 의상이 춤의 행동반경을 넓힌다. 새로운 느낌의 검무를 안무해낸 안무가의 세심한 디테일이 들어가 있다. ‘대지와 하늘에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의 춤’이라고 안무가가 특정한 남성 춤꾼의 검무는 짙은 갈색이 주는 의미와 더불어 검무의 외향성을 고양시킨다. 장현수 춤의 확장은 자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읽어내는 타자를 통해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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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의 춤 도살풀이.

방어의 춤(도살풀이); 검무의 들뜸을 가라앉히고 나쁜 기운을 덜어내는 즉흥춤 도살풀이춤에 이르면 긴 수건을 운명의 무게처럼 들고 한국의 전통 단스블랑(Danseblanc)이 무서운 전형으로 다가 선다. 탑조명이 내린 공간 속에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한 장현수의 연기 속으로 다시 빠져들게 되고 도살풀이춤의 미학적 아름다음을 접하게 된다. 산에서 올리는 도살풀이춤의 재현은 긴 수건의 의미에 대한 의문, 스토리가 달린 구음, 지속적 천 던지기와 손발의 균형감을 견지한 백색유희의 유형과 양식, 표정연기와 호흡 등에서 차별화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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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김의 춤 한량무.

즐김의 춤(한량무); 자연을 벗 삼은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을 보이는 춤이다. 장현수는 기존의 ‘한량무’들이 자신들의 기량과 분위기만 던지고 만 아쉬움을 재해석하여 어울림의 ‘한량무’를 제시한다. 로맨스와 해학이 용해되고 멋과 맛, 자연스런 흥이 살아있는 ‘한량무’가 연출된다. 뒷모습을 보이며 등장한 사내(송원선)는 놀이가 따르는 극을 유도한다. 익숙한 광경에 관객들의 미소가 피고, 김율희가 소리를 하며 등장하고, ‘사랑가’에 와 닿는다. 춤・극・소리가 있는 ‘놀이’ 형식의 ‘한량무’는 높아지는 관객들의 웃음과 함께 ‘춘향전’에 헌무(獻舞)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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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춤 장고.

환영의 춤(장고춤); 피날레를 장식한 장고춤은 소통을 강조한다. 치마・저고리・장고의 노랑, 빨강, 파랑의 삼원색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며, 푸른 소나무가 자리 잡은 무대는 늘 푸른 희망으로 대지를 일구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국악그룹 ‘바라지’의 열정적 장단과 완벽한 호흡을 맞춘 장현수의 역동적이며 기교적 장고춤이 피곤한 일상의 서민들을 위로한다. 신명의 소리가 다시 들리고, 팔에 안긴 빨간 장고가 연기를 한다. 장현수는 장고춤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무대로 진입한 설장고의 장현수식 접근법이 차별화된다.

수요춤전의 두드러진 장현수 안무의 『생수』는 춤의 수맥을 관통하면서 기존의 춤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예술작품 이었다. 울림과 떨림을 깔고 ‘사위와 디딤에서 나오는 내공의 깊이’와 그 여유에서 나오는 안정된 자세와 호흡 조절, 냉정한 예술성 추구와 품격 있고 변화무쌍한 춤 수사는 신뢰감을 보태었다. 차별화된 무대 세트, 적송이 강조된 의상과 모든 장르의 엔딩이 인상 깊었으며, 해금으로 장을 열고 장고로 마감하는 음악 콘트롤, 장면 전환과 구성의 탁월함, 기존의 것을 재해석해내는 놀라운 상상력과 상징성을 보여주었다.

사회자가 없어서 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 『생수』는 '소리'같은 타 장르와 동시에 발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소리와 춤의 조화, 흥미유발 인자를 보여준 해학, 호쾌한 액션, 갈래에 따른 춤의 기교적 차이, 소리 그룹과의 어을림 등은 장현수의 도전적 담대함을 보여주었고, 일탈된 우리춤의 방향감각을 잡아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 시대에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춤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현수의 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