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40여 년 만에 낡은 안전규정 개정 착수... SMR 등 신기술 길 터
방사성 폐기물·안전성 등 과제 산적…'국제 협력'이 상용화 열쇠
방사성 폐기물·안전성 등 과제 산적…'국제 협력'이 상용화 열쇠

잇따른 국제 협력과 규제 정비, 기술 발전은 차세대 원자로를 상업용 선박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규제 공백이라는 난관이 있지만, 원자력 추진 선박을 향한 흐름이 바뀌고 있다.
HD현대조선해양(KSOE)은 지난해 3월 6일, 세계 유수의 원자력 분야 기업들과 함께 '원자력에너지해사기구(NEMO, Nuclear Energy Maritime Organization)'를 설립했다. NEMO는 부유식 원자력 발전소와 선박의 도입, 운영, 해체에 관한 국제 표준을 마련하고 규제 공백을 해소하고자 국제기구를 지원한다. 또 국제해사기구(IMO)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기구에 전문적인 지침을 제공하며 원자력과 해양 분야의 격차를 해소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NEMO 창립 회원으로는 HD현대를 비롯해 로이드 선급(Lloyd's Register), BWXT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스, 테라파워, 오노미치 조선소, 웨스팅하우스, 코어파워, 바드 그룹, 뷰로 베리타스, RINA, 제일 파트너스, 로이드 선급 해사 탈탄소화 허브 등 각 분야 최고 기업들이 이름을 올렸다.
◇ IMO, 낡은 규제 뜯어고친다... 국제 표준 마련 '청신호'
규제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IMO의 아르세니오 도밍게즈 사무총장은 원자력 추진을 미래 연료 해결책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특히 올해 6월 열린 IMO 해사안전위원회(MSC) 제110차 회의에서는 핵추진 상선에 대한 낡은 규정을 전면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핵추진 상선 안전 규정(결의안 A.491(XII))'은 소형 모듈 원자로(SMR)나 완전 전기 선박 같은 신기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선박설계건조전문위원회(SDC)는 ▲최신 기술 발전을 반영한 규정 개정 ▲기술 중립적이고 목표 기반 접근 방식의 표준 마련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제8장 등 관련 국제 규정 개정안 제안 같은 과제를 추진한다. 개정 작업은 이르면 명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가 있다. SMR은 크기가 작고 안전성이 높아 해상 환경에 적용하기 유리하다. 유럽해사안전청(EMSA)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4세대 원자로는 신뢰도 높은 동력원이며 초기 비용은 기존 연료와 비슷하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높다. 또한 '연료 채굴에서 운항까지(Well-to-Wake)'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핵연료 공급망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 상세 위험 평가 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 SMR 선박 개발 경쟁... 글로벌 기업들 '속도전'
산업계의 움직임은 더욱 빠르다. 올해 초, 노르웨이 바드(VARD) 그룹은 4세대 SMR을 상선에 적용하는 '누프로십(NuProShip)' 계획을 발표했다. 직후 HD한국조선해양은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해상 신규 원자력 회의'에서 SMR을 탑재한 15,000 TEU급 컨테이너선 시제품을 공개해 주목을 끌었다.
영국의 코어파워는 2030년대 중반까지 부유식 원자력 발전소(FNPP)를 상용화하려는 미국 중심의 '리버티(Liberty)' 계획을 추진한다. 로이드 선급은 아마존, 구글 등과 함께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약속에도 함께했다.
물론 상용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해운 탈탄소화에서 원자력의 역할'이라는 종합 연구 보고서는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사선 안전 등 특화된 선원 훈련 및 자격 체계 구축 ▲사이버 보안 ▲원자력 해운 보험과 책임 분담을 위한 표준화된 모델 수립 등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IAEA 사무총장이 직접 그리스를 찾아 선주들과 미래를 논의하고, AI 데이터센터용 해상 원전까지 거론되는 등 원자력의 활용 범위는 바다 너머로 넓어지고 있다. 이처럼 원자력 추진선박은 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해운 탈탄소화 해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30년대 중반 상업 운항이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앞으로 국제 사회의 긴밀한 협력과 엄격한 안전 기준 확립이 상용화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