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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리틀 포레스트와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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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리틀 포레스트와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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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리틀 포레스트'는 잔잔하면서 감동적인 영화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임용고사에 실패한 젊은이가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찾아가는 과정을, '먹을거리'를 등장시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관람 포인트도 다르고 감동 받는 장면도 다르게 마련이다. 식품과학과 음식윤리 전공인 나의 관람 포인트는 당연히 먹을거리와 삶의 관계이고, 이를 음식윤리의 관점에서 본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그래서 영화의 참맛을 놓칠 수도 있지만.

#장면1: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주인공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는 장면. 밥이 상한 줄 모르고 한입 넣었다가 다시 뱉는 주인공. 그 모습엔, 힘든 삶을 억척스럽게, '살기 위해 먹는' 서러움이 잘 드러난다. 언젠가 어머니가 중한 병으로 입원하셨을 때, '금식'인데 어떤 착오로 환자식이 나왔다. 음식을 버릴 수도 없어 먹게 되었는데, 그 한술 밥의 감촉은 참 꺼끌꺼끌했다. 어머니는 어찌 될지 모르는데. 그 옆에서 살겠다고 꾸역꾸역 먹던 내 모습…. 정말이지 사람이 살기 위해 먹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장면2: 고향의 고모가 차려주신 음식을 먹는 주인공의 모습. "천천히 먹어라"고 연신 등을 두드려주며 걱정하는 고모와 게걸들린 듯 허겁지겁 먹는 주인공. 이 장면의 주인공은 오로지 '먹기 위해 사는' 듯한 삶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진짜 배고파서…" 하고 계면쩍게 웃는 주인공. 나 역시 한 끼만 굶어도 온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가. 이와 대조적인 아이러니는 배가 부른데도 깃털로 목을 간지럽게 해 토해가면서 먹었다는 로마 귀족의 음식문화, 그리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성어나, 곱창마차, 타이타닉주, 먹토, 맛캉스 등의 한글 신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면3: 텃밭에서 얼어있는 배추와 파를 뽑아 배춧국을 끓여 먹는 주인공의 모습.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상한 편의점 도시락도 아니다. 고모가 지어주신 맛깔난 성찬도 아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끓인 배춧국. 주인공의 먹는 모습과 다 먹은 다음의 포근한 모습은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니고, '먹기 위해 사는' 모습도 아니다. 그야말로 '먹고 사는' 담담하고 진솔한 모습이다. 우리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바로 '먹고 산다' 아니던가? '먹는 게 사는 거, 사는 게 먹는 거.' 오늘을 사는 우리네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어 줄지어 등장하는 칼국수와 배추전, 삼색 시루떡, 오이콩국수, 막걸리, 크렘 브륄레, 감자 빵…. 모두가 살 맛 나게 하는, 먹을 맛이 가득한 먹을거리다.

그렇다면 사람이 '삶을 산다'는 것과 '먹을거리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관계일까. 바로 '윈-윈'의 관계 아닐까?.그렇다. 좋은 삶은 먹을거리를 먹을 맛이 나게 하고, 좋은 음식은 삶을 살 맛나게 한다. 먹을 맛 안 나게 하는 삶도, 살 맛 안 나게 하는 먹을거리도 바람직하지 않다. 삶의 윤리처럼 음식윤리도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살 맛 나게 하는 먹을거리를 먹는 것이 음식윤리에 걸맞은 삶이다. 반대로 살 맛 안 나게 하는 먹을거리를 먹는 것은 음식윤리를 거스르는 삶이다. 이런! 두서없이 떠들다보니 맑은 작품에 흠을 내는 건 아닐까. 맛깔난 냉면에 괜히 식초를 더 넣는 것처럼. 리틀 포레스트, 참 좋은 영화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