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향기] 빅토리아 연꽃…밤의 여왕의 대관식

기사입력 : 2019-08-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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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빅토리아 연꽃 보러 가시죠."

지인으로부터 두물머리의 세미원으로 '밤의 여왕'으로 불리는 빅토리아 연꽃의 대관식을 보러 가자는 전화를 받았다. 밤 10시에 야간개장이 끝난 뒤 특별히 30명에 한해서만 입장을 허락한다고 했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마고 했다. 꽃을 좋아하면서도 그동안 빅토리아 연꽃의 대관식을 볼 기회가 없었다. 빅토리아 연꽃은 어디서나 볼 수 없는 귀한 꽃인데다 밤에만 피기 때문에 개화시기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드디어 빅토리아 연꽃을 보러가는 날,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걱정 아닌 걱정이 생겼다. 얼마 전에 그곳에 갔을 때 연지에 쟁반 같은 빅토리아 연잎만 떠 있는 것을 보고 온 터라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혹시라도 꽃이 피어 있지 않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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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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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연꽃

꽃을 보러 다닐 때면 나는 종종 불가에서 말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떠올리곤 한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시기가 있으니 만나게 될 인연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되고, 만나지 못할 인연이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날 수 없는 게 시절인연이다. 꽃이 피는 날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아니니 꽃을 보고 못 보고는 시절인연에 달려 있다. 그러니 때가 되었다면 미리 애태우고 걱정하지 않아도 빅토리아 연꽃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빅토리아 연꽃은 '큰가시연'이라고도 하는데, 꽃잎을 제외한 식물 전체에 가시가 촘촘히 돋아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전 세계에 1종 1속뿐인 우리의 꽃인 가시연이 한해살이풀인 데 반해 빅토리아 연꽃은 수련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수생식물이다.

빅토리아 연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잎을 지닌 연꽃으로 남미의 아마존이 고향이다. 1836년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아마존 강에서 발견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를 기념하여 빅토리아로 명명하여 여왕의 이름을 지니게 되면서 밤의 여왕으로 불린다. 잎은 보통 1~2m까지 자라는데 최고 3m까지 자란다. 이렇게 큰 잎은 사람이 올라서도 가라앉지 않을 만큼 두껍고 단단하다. 잎의 크기도 독보적이지만 잎 끝이 쟁반 테두리처럼 올라온 특이한 모양은 빅토리아연만의 특징이다.

특히 빅토리아연이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소위 '밤의 여왕의 대관식'이라 불리는 꽃 피는 모습 때문이다. 꽃은 3일에 걸려 친다. 첫날 피어날 때는 순백색으로, 둘째 날은 분홍색,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은 붉은 색으로 만개한다. 꽃은 지름이 30~40cm정도의 대형인데다 밤에 피는 마지막 모습은 여왕의 왕관을 닮아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연지로 모여든다. 하루도 아닌 사흘 동안 꽃을 지켜보는 일은 여간한 집념과 인내심이 아니고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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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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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연꽃을 볼 수 있는 양평 두물머리 세미원.

일행들과 세미원을 찾았을 때 빅토리아 연꽃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여왕의 왕관을 닮은 마지막 날의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흰색에서 연분홍빛이 도는 꽃의 자태는 매혹적이었다. 저마다 가져온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꽃의 모습을 담느라 한동안 연지에 셔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빅토리아 연꽃 외에도 밤에만 핀다는 희귀한 열대 수련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생각지 못한 행운이었다.

연지에서 한참을 꽃구경을 한 뒤 두물머리로 이어진 배다리 위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함께 나눌 추억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늦은 밤 일행들과 어둠 깊은 세미원을 돌아 나오며 좋은 사람들과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을 공유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향기롭고 어여쁜 빅토리야 연꽃을 함께 본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 삶에서도 연꽃 향기가 날 것만 같다. 꽃을 보는 일은 마음을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향기로운 추억을 짓는 일이기도 하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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