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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의 따뜻한 손과 환한 웃음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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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의 따뜻한 손과 환한 웃음을 보내며

그의 손은 야위었지만 따뜻했다. 몸은 예전같지 않았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고 정신은 또렸했다. 아트선재센터에 마련된 대우 50년 역사를 둘러보는 그의 눈과 얼굴은 젊은 김우중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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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사진=글로벌이코노믹DB


지난 2017년 3월 21일 오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김우중 회장의 손과 팔을 잡았을 때 그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전세계를 다니며 대우와 한국을 각인시킨 기업인의 체온을 느낀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즈막했지만 50년 전 대우를 창업한 주인공 답게 힘이 있었다.

그는 '대우창업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다큐멘터리 '내아버지의 연대기'를 시청하고 전시장을 둘러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외환위기를 겪은 50여 명의 언론인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2년 여만에 그를 보내고 나니 가슴이 아프다. 그는 지금 병원에 계신 아버지와 동년배여서 더욱 그렇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마치 아버지의 야윈 손과 체온의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그 전까지 김우중 회장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모르고 대우를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신문사 초년병으로 대우그룹 계열사로 종합상사인 (주)대우를 맡은 기자로서 그의 이름과 경영, 회사 사정 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는 내게 가장 많은 조언을 준 이들이 대우그룹 임직원이었기에 2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를 잊지 못했다. 개인이 쓰러지듯 대우가 쓰러져 해체됐을 때 느낀 비통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울 역 앞 대우본사에 켜진 환환 빛을 보며 대우의 재기를 얼마나 기도했는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그렇다.
세상 물정을 아는 기자가 되어 김우중 회장과는 책으로 만났다. 2014년 나온 '김우중과의 대화'와 2017년 발간된 '김우중 어록: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이 그 주인공이다.김우중과의 대화는 싱가포르 국립대 신장섭 교수와 김 회장의 대화록이다. '김우중 어록'은 김 회장의 강연 등을 엮은 책이다.

김우중 어록은 그의 생각을 읽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가 신문팔이 소년이었다는 점이 기자에게 호소하는 바가 컸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말들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래도 이런 말들은 깊이 새길 가치가 있다. "노력이 기회를 만들어 준다","무언가를 꼭 이룩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은 즐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리더의 3계명은 비전, 용기, 희생정신이다", "혁신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 등등

이 몇 마디로 김우중 회장 83년 전부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삶, 그가 걸어온 족적을 농축하고 있는 말이다. 그는 가고 없지만,비전을 품고, 용기를 갖고 희생하는 정신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는 제2, 제3의 김우중이 그를 뒤따를 것으로 믿어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2018년 하반기까지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글로벌 인재양성 활동에 힘썼다. 김 전 회장은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인 베트남에 머물며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프로그램에 주력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63년부터 한성실업에 근무하다가 1967년 자본금 500만원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기업인이다.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을 기치로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14%를 짊어진 대기업으로 성장했다.그리고 1999년 8월 41개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제 그는 영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꿈과 이상이 멈춘 것은 아니다.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비롯한 많은 이가 그의 뜻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그의 말대로 부자로 남기보다는 멋진 경영인으로 우리의 기억속에 영원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