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대한광복단 제100주년 기념행사・추모제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문화전문기자] “吾人은 大韓獨立光復을 위하여 吾人의 生命을 犧牲에 供함은 勿論 吾人의 一生에 目的을 達成치 못할 시는 子子孫孫이 繼承하여 讐敵 日本을 完全 驅逐하고 國權을 光復하기까지 絶對 不變하고 一心 戮力할 것을 天地神明에게 誓告함” 이는 1913년 경북 영주시 풍기에서 채기중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광복단의 포고문이다. 대대손손 일본을 몰아내고자 온 힘을 쏟을 것이란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나기 6년 전 경북 풍기에서는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최초의 비밀결사조직인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단>이 결성되었다. 그 대한광복단 창설 100주년 기념행사 및 추모제가 4월 28일 오전 11시에 서울 서대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순국선열위패봉안관 앞에서 광복회 서울시지부 주최로 있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최초의 비밀결사조직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단은 일제의 감시와 노출의 위험을 피해서 비밀결사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다 1915년 박상진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 국권 회복단과 만주에서 활동하던 이관구와 통합하면서 대한광복회로 조직을 확대하여 국내와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와도 연계하여 거국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이렇듯 대한광복단의 활동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일제는 헌병과 경찰을 총동원하여 대한광복단을 와해시키려 광분했는데 1918년 1월 안타깝게도 대한광복단 조직이 발각, 핵심 인사가 모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뒤 지도부 박상진, 채기중 등은 대구와 서대문 형무소에서 각각 처형되었다.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한 대한광복단은 1910년대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 중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1919년 3.1만세운동과 192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준 독립운동 단체이다.
이날 행사는 먼저 김구환 광복회 서울시지부장의 약사보고로 시작되었다. 약사보고는 대한광복단이 어떻게 결성되었고, 어떤 투쟁을 펼쳤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이어서 (사)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김병수 회장의 제문봉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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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제문봉독을 마친 뒤 추모사가 있었다. 안홍순 부회장이 대신 읽은 추모사에서 광복회 박유철 회장은 “선열들의 위대한 업적을 알리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선열님들의 발원대로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반쪽짜리 독립국가일뿐이며, 국권을 회복한 지 68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친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어 선열들을 뵐 낯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서 김성만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이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의 추모사를 대신 읽었다.
이미지 확대보기교활한 제국주의 침략의 오만함을 불사르고
이천만 조선인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준 임이시여
임들이 지켜낸 금수강산
무궁화동산 되어
또 다시 억겁의 역사를 꽃피우리라
억겁의 역사를 꽃피우리라“
행사장에는 잠시 숙연한 기운이 감돌고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쓴 이윤옥 시인의 “또 다시 억겁의 역사를 꽃피우리라” 시가 장엄하게 낭송되었다. 이윤옥 시인은 가슴에 북바치는 듯 비장한 목소리로 광복단 창설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후 육군사관학교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인천역사어린이합창단의 ‘독립군가‘ 합창이 있었고, 주요인사들의 헌화와 분향순서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육군사관학교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인천역사어린이합창단의 ‘선열추념가’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날 추모사를 하기로 했던 정치인들은 한 사람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정말 바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실은 대한광복단이 조국과 겨레를 위해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모르는 소치라고 참석자들은 안타까워했다. 또 추모제라면서 선열들의 한을 녹여줄 ‘살출이춤’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행사에 함께한 최구현 의병장 손자이며, 평화재향군인회 최사묵 상임공동대표는 “대한광복단’은 최초로 항일투쟁의 깃발을 높이든 위대한 단체인데 정부도 언론도 제대로 관심을 두지 않아 대부분 국민이 모르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창립 100년이 된 대한광복단, 이제라도 우리가 나서서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만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얼마 전 친일파 후손이 재산 되찾기 소송에 승소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은 떵떵거리며 산다고 한다. 대신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항일투사들은 잊히고 후손들은 어렵사리 삶을 이어간다는 안타까움이 장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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