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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염색은 색이 깊고 생명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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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염색은 색이 깊고 생명이 길다

[염장 김정화의 전통염색이야기(6)] 빨강색, 파랑색이 왜 이렇게 낯설지?
[글로벌이코노믹=김정화 전통염색가] 너 댓가지의 옛 문헌(규합총서, 임원경제지, 상방정례, 탁지준절, 천공개물 등)에 전통염색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길을 찾는 이에겐 지도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정보여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기록대로 따라하여 본 사람은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고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처음에는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여기고 책을 끌어안고 한마디 한마디 따라가며 일을 해보아도 결과는 늘 시원치 않았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책이나 글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는 뜻으로, 학문을 열심히 탐구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맹신한 탓이다.

기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물들였던 어른들께 듣고 해보고, 또 묻고, 다시 해보고 하면서 알게 되었다. 손끝으로 익힌 사람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자신이 하는 것을 따라해 보라고 한다. 기록자가 기술자가 아니어서 생긴 한계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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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물을 예로 들어 보면 쪽물을 만들 때 "려회(藜洃- 명아주의 재) 봉호회(蓬蒿洃-흰개쑥의 재)로 잿물을 만들어"라고 한다. 불행히도 글쓴이가 있던 시대엔 잿물의 농도를 정확히 표시할 도구가 없었다. 짚재, 소나무재가 흔하던 시기에 굳이 어떤 풀의 재를 지칭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주지방에서는 콩대, 경주지방에서는 물쑥이나 개쑥을 골라 사용했다. 이들은 강 알카리성이다. 잿물을 받았을 때 그 색이 메주를 꺼낸 간장 색과 같다. 이것을 리트머스지로 측정하면 pH가 14, 리트머스지의 색상이 확 빠져버릴 정도로 진한 잿물이다.

질 좋은 쪽 풀과 꼬막껍질을 태운 가루가 준비되어도 쪽물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 책과 인터넷에서 말하는 pH 11에서는 석 달을 둬도 제대로 발효되지 않는다. 출강교육을 한다고 쪽 항아리를 옮겨 다니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잉물(경상도의 쪽)은 부정을 잘 타니 항아리를 옮기면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 '부정 탄다'라는 말의 속뜻은 '서향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둔 항아리'의 온도가 일정해야 발효상황이 지속 된다는 뜻이다. 쪽물염색에 하이드로설파이드를 사용하는 개량법은 pH가 11이어도, 항아리를 옮겨 다녀도 되지만 전통 쪽 염은 그 점을 절대불가한 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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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 또한 마찬가지다. 홍화염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초다. 옛 기록에는 오매(烏梅)나 오미자액을 사용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화의 홍색소는, 알카리성을 띠는 잿물의 pH가 9~10인 용액에서 용출된다. 잿물 속에서는 익은 살구빛으로 홍색이 보이지 않다가 산도가 강한 pH 4의 식초로 용출액의 pH를 5~6으로 만들면 그 색이 진홍으로 발색된다. 결국 강한 pH 4의 산성을 가진 천연초산이 필요한데 현재의 오매나 오미자액으로 전통홍화염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 그것이 불가능한지 원인을 찾아보니 시중에서 유통되는 오매의 제법과 오미자의 품종과 수확 방법이 옛날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모든 책과 자료에서는 오미자와 오매로 홍화를 물들인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쓴다 해도 필요한 농도와 양을 맞추려면 홍화 값보다 몇 배나 더 비싸고 반드시 합성초산을 첨가해야 한다. 합성초산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색감이 달라지고 10년 이상 두면 탈‧변색이 일어난다. pH 4가 되는 천연발효 초를 만들지 않고서는 전통염색을 할 수가 없었다. "갈수록 태산이다"라고 한 말이 전통염색법을 찾는 길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보고 쓰던 색이 아닌 다른 적과 홍, 남과 청을 쓰고 본다.

짚풀생활사 박물관의 인병선 관장님이 모 박물관의 한국과 일본의 청, 홍색 전시를 보고서 "빨강색, 파랑색이 왜 그렇게 낯설어? 이상해? 우리가 보던 색이 아니야."라고 하셨다. 무엇이 다른지 한참을 설명하자 "보여주고 비교를 해야 알 수 있지, 쌓아만 두면 직무유기"라고 필자에게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2011년엔 『왕의 색-대홍』, 2013년엔 『백성의 색-쪽』 두 가지 색만 집중 조명하는 전통염색 전시를 열었다.

전통염색은 현존 유물에서 보듯 그 색이 깊고 생명이 길다. 채록을 하면서 들은 말과 옛 기록, 현존 유물이 일치하면 그것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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