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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에 갇힌 200조 원 퀀트 펀드…유가 급등에 '무위험 전략' 사상 최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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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에 갇힌 200조 원 퀀트 펀드…유가 급등에 '무위험 전략' 사상 최악 위기

중동 전쟁발 유가 폭등에 1340억 달러 규모 퀀트 모델 직격탄
공급망 붕괴에 따른 '백워데이션' 현상으로 커브 캐리 전략 붕괴
지정학적 리스크 고착화 시 선물 시장 불균형 및 자금 혼조세 지속
정교한 수학 모델로 무장한 '상품 커브 캐리' 전략이 중동발 유가 쇼크로 인해 지난 3월 초 지수 산출 이후 가장 가파른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정교한 수학 모델로 무장한 '상품 커브 캐리' 전략이 중동발 유가 쇼크로 인해 지난 3월 초 지수 산출 이후 가장 가파른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 여파로 석유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국제유가가 폭등하자, 월가 대형 은행들이 주도해온 1338억 달러(약 200조5600억 원) 규모의 인공지능(AI) 기반 퀀트 투자(AI와 수학 모델을 이용한 자동 투자) 전략이 사상 최악의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4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정교한 수학 모델로 무장한 '상품 커브 캐리(선물 가격 차이를 이용한 투자)' 전략이 중동발 유가 쇼크로 인해 지난 3월 초 지수 산출 이후 가장 가파른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뒤집힌 선물 곡선, 퀀트 모델 정조준


이번 사태의 핵심은 선물 시장의 가격 곡선이 거꾸로 뒤집힌 데 있다. 본래 원유 선물은 보관비와 보험료 등 비용 탓에 먼 미래에 인도받는 원월물이 비싼 '콘탱고(Contango)' 구조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월가의 퀀트 펀드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근월물을 팔고 비싼 원월물을 사는 방식으로 그 차액을 챙겨왔다.

그러나 전쟁으로 당장 확보 가능한 원유가 귀해지면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98.13달러까지 치솟았고, 오히려 근월물인 4월 인도분이 6월분보다 배럴당 5달러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백워데이션(당장 받는 기름이 나중에 받는 기름보다 비싼 현상)'이 뚜렷해졌다.

데이터 제공업체 프레미아랩(Premialab)에 따르면, 이 전략은 이달 11일 기준 올해 들어서만 3.1% 급락했다. 연간 한 자릿수 수익률을 추구하는 모델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블랙 스완' 수준의 충격이다.

마비된 공급망, 무력해진 AI 알고리즘


금융권 안팎에서는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는 알고리즘 매매가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변수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시에테제네랄(Societe Generale)의 벤자민 호프 상품 퀀트 연구 총괄은 "에너지 액체 화물 전반에서 유례없는 규모의 공급망 차질이 발생했다"며 "자부심을 가졌던 정교한 퀀트 시스템도 이러한 파괴적인 상황을 포착해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실토했다.

알본 파트너스(Albourne Partners)의 조사 결과, 지난해 6월 기준 전 세계은행 스왑 기반의 상품 퀀트 투자(QIS) 운용 규모는 1338억 달러에 이른다.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이번에 직격탄을 맞은 롱-숏 전략(나중에 받을 기름은 사고, 지금 당장 쓸 기름은 미리 파는 전략)에 집중되어 있어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전반에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시장 흐름을 따르는 '트렌드 추종' 전략은 유가 상승 랠리에 힘입어 3.8%의 수익을 올리는 등 전략별로 희비가 갈렸다.

'시장 정상화' 기로와 국내 업계 비상


향후 시장은 중동 분쟁의 확전 여부와 주요국의 비축유 방출 시점에 따라 요동칠 전망이다.

비엔피파리바(BNP Paribas)의 자비에 폴레아스 QIS 총괄은 "지정학적 논의가 긍정적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근월물 가격이 낮아지며 다시 유리한 진입 시점이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20년 3월 팬데믹 당시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수요 절벽' 위기와는 정반대인 '공급 마비' 위기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에너지 업계 관계자 또한 "단순 가격 상승을 넘어 선물 곡선의 백워데이션 심화는 수입 원가 구조를 왜곡하고 있다"며 "국내 정유사들의 헤지 전략 수립에도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