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김정화의 전통염색이야기(20)] 오방색(五方色)-적색(赤色)Ⅱ
[글로벌이코노믹=김정화 전통염색가] 국어사전을 보면 적색은 「짙은 붉은색」, 홍색은 「밝은 빨강색」이라고 정의한다. 「붉은」과 「빨강」은 설사 발음을 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확연히 다른 색감으로 떠오른다.오행이론으로 보면 적색은 정색(正色) 즉 오방색이고 홍색은 오 간색(間色)에 속한다. 간색이라 함은 두 가지의 정색을 합할 때 만들어 지는 색을 말하는데 홍색은 적색과 백색을 섞은 색이다. 이론상으로는 분홍색이지만 실제로는 밝은 빨강을 말한다.
실생활에서는 적색과 홍색을 구분하는 것이 별의미가 없으나 염색을 해보면 적과 홍은 확연히 다르다. 적색은 소홍, 목홍이라 하여 잡색이 섞인 빨강, 즉 순수한 빨강색만이 아닌 노랑, 보라, 검정 등이 섞인 순도가 낮은 것 즉 명도와 채도가 낮은 붉은 색을 말한다. 반면 홍색은 대홍 진홍이라 하여 잡색이 들어 있지 않은 빨강으로 명도와 채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소홍, 목홍이라 불리는 적색은 소방목이라 불리는 나무의 심재로 물들였다. 소방목은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큰키나무로 껍질과 가장자리 목질부를 잘라버리고 나무 속살만을 염재로 사용한다. 나무 속살엔 브라실린이라는 연 누른색의 화합물질이 들어있는데 산화되면 붉은 색을 띄는 염료가 된다. 이 염료는 다색성이라 사용하는 매염제에 따라 검은 자주색, 주황색, 주홍색, 붉은색으로 염색된다.
소방목은 색상용출이 쉬워 끓이면 손쉽게 염료를 만들 수 있는 대신 탈색 변색도 아주 잘된다. 사신의 예물로 교환된 소목이 한 두근 정도였으니 근세이전에는 구하기 어려운 아주 값비싼 수입염료였다. 따라서 관리나 서민들은 빠지지 않을 만큼 여러 번 물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치자처럼 물에 녹여 가볍게 물들이고 푸세할 때마다 새로 물들였으리라 본다. 이런 적색을 진홍이라 할 수 없을 것은 당연지사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약 건재상에서 파는 소목의 질이 아주 좋아서 대여섯 차례 끓여내도 색이 진한 염료로 쓸 수가 있었다. 1990년 중반 이후로 차차 질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색이 우려나지 않는 소방목도 유통되기 시작했다.
질이 좋은 소목은 끓여 낸 염료의 색이 양파껍질 같은 누른빛이 많은 주황색을 띠며 붉은 색이 보이지 않는다. 끓여낸 염료의 색이 핑크색, 빨간색이면 염료로서의 효용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1996년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전통 염색하는 곳을 찾았을 때였다. 그들은 소목을 장작처럼 잘라 깊고 큰 가마솥에 넣어 끓여서 염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차례 염료를 우려낸 나무 등걸을 잘게 잘라 들여와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으니 약재로 쓰거나 염재로 쓰는 이들만 큰 피해를 본 적이 있다. 요즈음 염색하는 이들은 예전처럼 질 좋은 소목을 구하기 어려워 적색이라 불리는 붉은 색을 소목으로 물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소목은 명반매염으로 20회 이상 물들일 때 적색이 되지만, 기가 막힐 일이 스무 번 이상 물 들여도 탈색과 변색이 똑같이 된다. 이것을 극복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물들여진 소목 색소를 섬유와 결합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식물의 정유 성분을 이용하는 것이다. 두 세 차례 명반매염으로 물들인 소목 염색직물을 솔잎을 끓인 물에 두서너 시간 침염하고 다시 소목 명반매염을 반복하면 된다. 이 방법을 공개한 지가 20년에 가까운데도 아직도 기 백만원씩 받고 전수를 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솔잎은 봄에 채취한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