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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길뻔한 '전통염색' 되살려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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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길뻔한 '전통염색' 되살려 큰 보람

[염장 김정화의 전통염색이야기(41)] 검정색 - 넋두리Ⅰ
필자가 이렇게 염색에 관한 글을 쓴다는 건, 배부르게 밥을 먹고 숟가락을 놓으려는데 손님이 찾아와 밥을 다시 짓는 일과 같다. 내 배가 한껏 부른데 밥 짓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일처럼 물쟁이의 입장에선 정말 흥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 나는 몰라. 거기 있는 것만 드세요.” 라고 돌아 앉아 있는데, 노 기자님에게 딱 걸려서 시작했다. 사 십 꼭지가 한계다. 정말 컴퓨터 화면이 까맣다.

낮에 다니는 길은 볼게 많아 한길로 가기 어렵다. 밤길은 앞이 보이지 않으니 혹시나 길을 잃을까 온전히 집중한다. 필자는 그랬다. 상노인들의 염색체험담은 전지가 다 닳은 손전등처럼 희미한 것이었고, 옛 자료들의 기록은 각기 다른 색안경을 쓴 분들의 말씀이었다. 길을 잃을까, 헛디딜까, 오직 그 생각뿐이어서 누가 불러도, 아들이 칭얼대도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줘!” 하고는 이 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20여년을 그러다 보니 눈에서 눈물이 줄줄 났다. 다리도 절고 팔도 쓸 수 없었다. 아파트로 피신 왔다. 아니 유배를 자청했다. 지금은 물일을 할 수 없는 한밤중이다. 눈을 감았다. 까맣게 어두운 한밤중엔 무조건 잠을 자고 싶다.

시시비비가 왜 필요하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이 무슨 도깨비 놀음이련가? 정말하고 싶은 이는 말리고 말려도 하게 된다. 하고 싶어서 하는 저지레는 장작불과 같다. 불이 붙는 순간까지는 낑낑 대지만 불이 붙었다하면 웬만한 방해공작으로는 그 불을 끄지 못한다. 사과나무 잔가지나 등걸을 태우던 농가에서 자란 나는, 밥을 짓던 어머니 등에 업힌 아기 때부터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자란 나는, 아궁이속에서 탁탁 튀는 사과나무의 불꽃을 잡고 싶었다. 찰나, 단 한 순간도 정지될 수 없는 불꽃을 정말 정지시켜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 염색의 목적이었고 그것이 가능했던 게 2006년이었다. 더 해야 할 무슨 이유가 없었다. 오롯이 다 탔을 때 물을 끼얹으면 새까만 숯이 된다. 나는 지금 새까만 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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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까지 다달이 경기(驚氣)를 하던 필자는 어둠을 너무나 두려워했다. 경기에서 깨어난 한 밤중, 어머니 등에 업혀 한의원을 나오는 시간이면 앞산에는 부엉이가 울고 온 천지는 새까만 어둠이었다. 어머니의 앞이 아니고 뒤쪽인 등에 업혀 오는 귀가 길은 정말 무서웠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새까만 어둠이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어머니처럼 어른이 되는 게 정말 걱정이 되었다. 두려웠다. 까만 어둠속 밤길을 걸어야 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는 순간 벽에 어리는 그림자가 또 무서웠다. 손으로 하는 일을 글로 쓰는 것은 그림자놀이다. 벽에 비추는 그림자놀이는 놀이일 뿐 실체가 아니다.
나는 지금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들을수록, 읽을수록 헛길로 돌아다니게 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이글 역시 그리될까 두려운 마음 - 그것 역시 나의 맘을 어둡게 한다. 캄캄한 밤중에 혼자 체조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내년엔 물방 문을 다시 열고 일을 시작하고 싶다. 이젠 불꽃을 잡기 위해서, 찰라를 꼭 잡기 위하여가 아니라 밥을 짓고 「색이 고픈 이」들을 먹이기 위해, 아들에게 밥 짓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불을 지피려한다. 숯을 태우려한다. 삶을 끝내는 날 하얀 재로 깨끗하게 돌아가고 싶다.

/김정화 전통염색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