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억을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친구들과 다투고 ‘눈물바람’을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의 대답은 ‘마징가제트’, ‘손오공’, ‘하나님’, ‘비행기’, ‘인디언’, ‘공산당’, ‘빨갱이’, ‘제트기’, ‘우주선’, ‘우주인’ 등 다양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목소리가 큰 아이’가 정답의 꼭대기를 차지했다.
아무리 힘이 세고, 잘 생기고, 잘 사는 집의 아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아이(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다.
그랬다.
잘 되는 사람을 보면, 그 주변에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언제나 그 사람 주변에는 그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을 맹자(孟子)는 한 마디로 ‘득도다조(得道多助)’라 했다. 맹자(孟子)가 말하는 ‘득도다조(得道多助)’는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엄청난 부를 소유하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助) 사람이 많은(多)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주위에 우리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많은가?
그들이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얻어야 할까?
그렇다. 그것은 인심(人心)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잘 생기고, 귀엽고, 예쁘며, 다재다능하고 돈이 있는 집안의 자식이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정말로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아쉽게도 이런 아이들이 존재한다.
가난하고 그저 그렇게 생겼고, 공부도 고만고만하지만, 아이들에게 인기가 짱인 우리네 이웃 같은 아이들은 마치 만화영화의 주인공처럼 또래집단의 마음을 홀딱 뺏어버리곤 한다.
세상은 핵가족 시대에 자신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길에서나 골목에서나 운동장에서나 교실에서나, 심지어 가정에서도 ‘도와주는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음에 그냥 웃음이 난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감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이들’이라 부르고 싶다. 이 아이들의 삶은 때론 어른들의 삶을 반성하게 하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든다.
직장이든, 동문회든, 종교활동이든 자신만을 생각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입으로는 ‘빛과 소금이 되겠노라’고 외침의 중심에 있는 별로 달갑지 않은 부류가 있다. 그렇지만, 그 세상의 ‘빛과 소금’은 모두가 자신만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내뱉으며 활동하는 불순한 발언임을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도 어른들의 이런 볼썽사나운 행태에 이 시대의 만나고 싶지 않는 인물들이 ‘어른들’임을 잘 알고 있지만 심드렁하게 내색하지 않고 살아간다.
학교 현장에서 이런 어른들의 몰지각한 삶이 나를 부끄럽게 할 때가 많다. 평교사로서 변화를 주도하고 싶지만, 현실은 늘 평교사를 외면하고 갑과 을이 되어 달려오는 세상의 거친 풍파를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 온 몸으로 막아내기에 급급하다.
교사로서 이 길을 걸으며 우리 후대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단지,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그들의 출발점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언제까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대로 허공을 허우적대며 살아가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이미지 확대보기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이어갈 결론은 득도다조(得道多助)다. 이 득도다조(得道多助)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감히 허공에 내지르고 싶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살아가는지를 되돌아보자. 부족한 부분을 ‘배려’와 ‘겸손’, ‘꾸준함’과 ‘지켜냄’의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이들과 호흡하며 ‘마음 나눔’으로 하나가 되어 보자.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