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 인물탐구(2)] 허균
1569년 음력 11월 3일 (양력 12월 20일) 묘시(卯時) 출생사주 : 기사(己巳)년 병자(丙子)월 임신(壬申)일 계묘(癸卯)시
대운 : 6세 을해(乙亥), 16세 갑술(甲戌), 26세 계유(癸酉), 36세 임신(壬申), 46세 신미(辛未)
허균은 자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나는 기사년 병자월 임신일 계묘시에 태어났다. 성명가(星命家)가 이를 보고 ‘신금(申金)이 명목(命木)을 해치고 신수(身數)가 또 비었으니 액이 많고 가난하고 병이 잦고 꾀하는 여러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다. 그러나 자수(子水)가 중간에 있는 고로 수명이 짧지 않겠고 수(水)가 맑고 깨끗하여 재주가 대단하겠고 묘금(卯金)이 또 울리므로 이름이 천하 후세에 전하리라’ 라고 말했다. 나는 그전부터 이 말을 의심해왔으나 벼슬길에 나온 지 17년에서 18년 이래 전패(顚沛)와 총욕(寵辱)이 반복되는 갖가지 양상이 은연중 그 말과 부합되고 보니 이상하기도 하다.”

허균은 많은 논설을 통해 당시 정부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백성의 편에 선 혁명가적 사상을 가졌는데, 국가의 반란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50세 무오(戊午)년에 참수형을 당했다.
무오년의 무토(戊土)는 자신을 뜻하는 임수(壬水)에게는 매우 험한 일을 뜻한다.
이 사주의 천간(天干)에 임수(壬水)가 병화(丙火)를 수극화(水剋火)하고 있다. 이 때 목(木)이나 금(金)이 통관시켜주지 못하면 이를 역천(逆天)이라고 한다. 수(水) 백성이 화(火) 임금을 극한 것으로 반역, 혁명 등의 성향을 나타낸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그의 비판정신과 개혁사상을 반영한 것으로서 적서차별 반대, 탐관오리 징벌, 가난구제, 새로운 세계 건설을 제안한 책이라고 하겠다.
유덕희 벽오 역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