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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맹시'에 담은 세월호 사건, 그 현재적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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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맹시'에 담은 세월호 사건, 그 현재적 몸짓

[무용리뷰] 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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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당신들은 보고 있으나 보고 있지 않는다. 절대적인 맹신과 사실의 왜곡으로 눈이 멀어간다.
세상엔 맹시들의 천지니까. 우리는 아르고스가 필요하다.’

4월 첫째 주 토·일요일 참신한 주제로 주목을 끈 M극장 신진안무가전 후반 초청작 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예술감독 이해준 한양대 교수)은 ‘무주의 맹시’를 동인(動因)으로 삼는다. 무주의 맹시, 눈이 특정 위치를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향하는 위치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고, 편시현상으로 정작 중요한 사항을 놓치는 상태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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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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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우리 사회에 허다한 무주의 맹시,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절대적 맹신을 만든다. 관심분야 이외의 것은 인지하지 않거나 관심조차 주지 않고 개의치 않는다. 사실에 대한 의도적 무시로 ‘거대한 배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곡되어 거대한 배는 가라앉았다. 『눈 먼 선택』은 ‘노란 리본’으로 상징되는 세월호 사건을 세묘(細描)한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사실과 잘못된 선택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점차 자신의 눈이 멀어가는 것을 모른 채 또 다시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원하는 것만을 향해 간다. 세월호 사건에 얽힌 다양한 의견 분출 속에 우리 앞에 이기적·개인적인 눈 먼 자들의 세상이 놓여 있다. 안무가는 우리가 그리스 신화의 백 개의 눈이 달린 아르고스의 눈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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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눈 먼 선택』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무가는 공연 내내 파도소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공연 전반부에는 레몬글라스(Lemongrass)의 '마지막 탱고, The Last Tango', 후반부에는 노르웨이의 엘렉트로니카 프로젝트 퓨스크(Pjusk)의 ’숨겨진 진실, Granitt‘을 음악으로 사용하여 슬픔과 위로, 침통한 현장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

1장, 세 명의 여인이 갈색 빵 봉투(비석)를 들고 들어와 바닥위에 세운다. 노란 실을 끊고 상체 탈의의 한 남자가 등을 보이며 들어선다. 그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파도소리 속에서 바닥위에 여섯 줄, 그 뒤로 무수한 죽은 자들을 상징하는 수많은 봉투가 서있고, 검은 의상을 입은 한 여자가 등장하며 연극 대사처럼 독백을 한다.

“보았다. 보지 않았다. 찾았다. 찾지 못했다. 찾지 않았다. 찾을 수 없었다. 찾으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귀를 닫은 채, 제 각각의 선택과 판단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변의 빛이 춤추는 가운데, 여인은 봉투를 집어 든다. 가벼운 드럼 소리, 가족들의 흐느낌이다. 강한 형상, 진혼무의 개념으로 오인무가 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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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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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장, 팽목항에는 빗소리가 떨어지고 파도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소중하고 아끼고 아꼈던 봉투는 이제 누군가의 놀이 감이 되고, 먹잇감이 되어간다. 절대적인 맹신과 왜곡된 사실 속에 ‘아르고스가 필요하다’고 누군가(이다애)는 외친다. 사내는 거부감에서 큰 소리로 웃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 외침을 반복한다. 봉투는 붉은 빛으로 강조된다.

3장, 모두 봉투를 뒤집어쓴다. 두 손엔 여자들의 분노가 담겨져 있다. 사람들은 눈이 멀었다. 여자(최은지)는 봉투를 안은 채 벌레처럼 바닥에 탈진하여 하늘을 향해 애원하듯 누워있다. 사내는 다시 개가 되고, ‘기다려, 기다려, 아니야, 죽었어’ 소리가 들린다. 개는 다시 노란 실을 목에 걸고 연결하려는 동작에서 공연은 끝이 난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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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이다애, 이화선, 윤희섭, 강아람, 최은지의 열연 속에 크라프트 봉투(갈색 빵봉투)는 1장에서 수많은 비석의 의미이고, 그 이후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되었고,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씀으로써, 우리 눈이 멀어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의상은 순수와 깨끗함을 의미하는 화이트 계열이 선택되었다. 노란 실은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사건’을 인식하게끔 만들고 싶은 안무가의 의도였다.

최은지, 고양예고강사로서 한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석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다. 그녀는 밀물현대무용단 정단원 활동을 하면서 한국무용학회 차세대 안무가상, PADAF 안무가상, 한국현대무용협회 은상을 수상한 심지 굳은 춤꾼이다. 그녀가 정성으로 빚은 춤은 주변의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적 이슈를 끄집어내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무운(舞運)을 빈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