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태가 지은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은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중 한국의 이중섭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혼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화가 이중섭은 어린 시절부터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생을 그림과 함께 했다. 열네 살 때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다니게 된 이중섭은 그의 평생 미술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미술교사 임용련으로 이중섭의 그림에 때한 끼와 혼을 발견하고 그의 스승을 자처한다. 이중섭은 이처럼 훌륭한 스승인 임용련의 가르침을 받아 그림에 대한 눈을 뜨고, 소 그림에 대한 열정도 싹터 소를 즐겨 그리게 된다.
위의 예문은 이중섭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1953~1954 무렵, 종이에 유채, 32,3x49.5cm)에 대한 저자 최석태의 질의 형식의 해석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무엇인가를 하소연하듯 입을 벌리고 있는 앳된 소를 보고 있자니, 이 '소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또, '소 그림 이외에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라며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
“1929년, 열네 살의 이중섭은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의 중등 과정은 오늘날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이 합쳐진 5년제였습니다.……(중략)……이중섭이 이렇게 먼 곳의 학교에 다니게 된 까닭은 평양의 가까운 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에게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중략)……오산학교에 입학한 이중섭은 특별활동 또는 과외활동으로 미술부에 들어갔습니다. 이 미술부에 나이가 같으나 먼저 들어와 있던 문학수라는 학생을 만납니다.”
오산학교는 김억을 비롯하여 김소월, 백석 같은 아주 이름난 시인을 여럿 배출한 전통 있는 학교다. 때문에 이중섭은 오산학교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오산학교의 전통은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그림에 혼을 담아 낼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31년, 회복이 되어 학교로 돌아온 이중섭에게는 그 크기를 짐작하기 힘든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술 교사가 새로 부임해 왔는데, 그 교사는 아주 독특하고 놀라운 이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임용련입니다.”
이상과 같이, 책을 통해 가까이 할 수 있는, 이중섭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그러면서, 그의 생애를 따라가 보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값지게 살찌우는 일이지 않을까?
'시간이 없다', '바쁘다', '할 일이 산더미다'는 말은 접어두고 이번 주말, 시간을 만들어 보자, 자녀가 있다면, 함께 손을 잡고 이중섭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좋다.
가까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 눈과 마음, 나아가 우리의 영혼을 높이고 정신을 맑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여겨진다.
박여범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편집출판팀 연구원(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북 용북중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