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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불평등과 폭력성 비판하며 판타지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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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불평등과 폭력성 비판하며 판타지 추구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9)] 잔혹동화, 어른들을 위한 현실의 판타지

치유할 수 없는 자본주의 상처 적나라하게 표현

잔혹하지만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야기 담아 내

동화는 항상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왔다. 어렸을 적 읽은 동화에는 항상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과 잘 생기고 부자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며 이들이 결국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커가면서 세상은 동화 속에서처럼 그렇게 항상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소현우 작 잔혹동화 3-1, 2011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잔혹동화 3-1, 2011
소현우는 밝고 아름답고 예쁘기만한 동화를 비틀어 잔혹한 동화를 조각으로 구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동화는 그림형제((Bruder Grimm)가 전해내려오던 여러 민담을 모아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Kinder-und Hausmarhen)』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다. 출판 당시에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잔인함과 폭력성, 끔찍하고 비참한 묘사 등으로 비판받았던 원래의 이야기들은 여러 수정판을 거쳐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기 적합하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는 삭제되거나 완화되고 권선징악을 강조하며 교훈적인,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림동화’가 되었다. 1998년 출판된 기류미사오(桐生操)의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本當は恐ろしいグリム童話)』가 그림형제가 수집한 민담의 원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때부터 ‘잔혹동화’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소현우 작 잔혹동화2, 2009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잔혹동화2, 2009
소현우의 잔혹동화는 그림형제가 수집한 원형 그대로의 잔혹함이 아닌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와 종교, 신화, 만화 속 여러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자본주의를 탐닉하는 어른들을 비판하기 위해 잔혹하게 표현하는 ‘잔혹동화’이다. 경남 통영 근처의 작은 섬 출신인 소현우는 모두 비슷한 생활환경으로 자본주의와 빈부의 격차가 모르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학업을 위해 뭍으로 오면서 자본주의와 가난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동화가 현실 속의 꿈을 좇으면서도 실제 현실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면서 동화의 모티브를 차용하여 스테인리스를 이용하여 자본주의의 불평등성과 폭력성을 비판하는 조각을 만든다. 소현우 작품 속의 동화와 만화, 명화의 캐릭터들은 원래 그것들이 표현하고 있던 순수와 행복, 따뜻함과 사랑, 아름다움의 허울 좋은 환상을 벗어버리고 폭력적 모습 그대로 잔혹함을 내보이고 있다.

소현우 작 잔혹동화 2-1,2-2, 2010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잔혹동화 2-1,2-2, 2010
“잔혹동화는 어른들의 동화이자 자본의 초상이다. 작품의 형상은 대중문화의 산물이며 상품적 수단의 모습을 가지고 대상이 없는 ‘폭력성’ 그 자체로의 폭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자본이라 불리는 현대적 권력의 위기를 말하며, 또한 인간(인간적)의 위기를 말한다. 작품에서 보이는 모순적 결합은 수많은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짜 맞춰진 형상처럼 인간의 역사를 대변한다.” 작가가 설명하듯이 소현우의 잔혹동화는 퍼즐 짜 맞추듯 스테인리스 조각을 퀼팅하 듯 용접하여 이어 붙여서 만들어진다. 헌 이불이나 옷에서 나온 작은 헝겊 조각을 누비는 퀼팅 방식은 그 자체로 이어 깁기를 통해 새로운 재탄생이 일어나는 제작과정인 동시에 공동체의 여성들이 모여 바느질로 조각 이어붙이기를 하며 그간의 시름들을 나누며 이야기와 작업을 통해 힐링을 할 수 있는 작업 과정이었다. 그러나 소현우의 ‘스틸 퀼팅’은 자본주의 산업에서 쓰이고 버려지는 잔재들을 다시 사용해 이어붙임으로써 오히려 치유할 수 없는 그 상처를 적나라하고 강하게 드러낸다.

소현우 작 Cat Girl-orgel, 2013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Cat Girl-orgel, 2013

스틸 퀼팅으로 이어붙인 소현우의 인물들은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을 닮아있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지 그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영원불멸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 시체를 그러모아 만든 이름도 없는 존재인 이 괴물은 비참하고도 슬픈 유한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소현우의 잔혹동화 속 주인공들도 대부분 이름이 없다. 시체 조각을 이어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소현우의 주인공들은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을 붙여 만든 자본주의의 슬픈 자화상이다. 잔혹하고 폭력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이 괴물들은 욕망의 사생아가 되어 자신들만의 새로운 동화를 들려주고 있다.

소현우 작 잔혹동화 3-2. 2011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잔혹동화 3-2. 2011
‘잔혹동화 3-2’의 주인공은 르네상스 시기의 걸작인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1485년쯤)에서의 비너스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녀의 손에는 번쩍이는 총과 칼을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다. 또한 번쩍이는 외관과 강인한 이미지로 온라인 게임 속의 여전사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딱딱한 소재와 여성의 부드러운 곡선의 몸, 연약한 나비의 날개와 단단한 무기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한 작품 속에서 조화되어 기계와 인간, 자연과 인공이 함께하는 현대사회를 보여준다. 명화 또한 자본주의의 강력한 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작가는 명화-게임 캐릭터-작품을 연결하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작품 또한 게임 캐릭터처럼 문화상품화되어 가고 있다는 잔혹한 동화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소현우 작 Goofy, 2013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Goofy, 2013
소현우 작 Mickey girl, 2013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Mickey girl, 2013
소현우 작 잔혹동화 5, 2009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잔혹동화 5, 2009
소현우의 잔혹동화 속에서 디즈니의 구피는 창에 찔리고, 미니마우스는 태엽이 멈추어진 채 고개를 떨구고 있으며, 곰돌이 푸우는 자살하는 듯 손에 총을 들고 있다. 구피와 미키마우스, 푸우라는 친근하고 다정한 캐릭터에 가해진 이런 끔찍한 폭력은 작가가 ‘황금기계’라 칭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른들의 자본주의적 실행인 애니메이션 산업에의 통렬한 비판이다. 그러나 라캉(Jacque Lacan)이 이야기한 ‘죽음 충동(death drive)’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쾌락원칙을 넘어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삶의 충동이듯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죽음은 작가가 비판하는 밝고, 행복하며, 순진한 만화 캐릭터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애니메이션의 고도화된 상업성에 대한 죽음이자, 이는 ‘죽여도 죽지 않는’ 끊임없는 비현실적 판타지 세계에 대한 탐닉이다.

소현우 작 잔혹동화 2-3, 2010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잔혹동화 2-3, 2010
소현우의 작품은 예술제도 속에서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지적한 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된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으로서의 예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주의의 불평등함과 무자비함을 고발한다. 이런 잔혹함 속에서도 소현우의 동화가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들리는 것은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잔혹하지만 아름답고, 끔찍하지만 매력적인 동화.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판타지를 꿈꾸는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소현우의 잔혹동화를 보며 그 달콤쌉쌀함을 음미한다.

소현우 작 미가엘의 침묵, 2014이미지 확대보기
소현우 작 미가엘의 침묵, 2014

● 작가 소현우는 누구?
동아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소현우는 2009년 ‘잔혹동화’라는 주제로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뒤 이 주제로 계속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인사아트센터를 비롯해 송은아트큐브, 노암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5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한전아트센터, 경기도미술관, 토탈미술관, 장흥아트파크 등에서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33회 부산미술대전 통합대상 및 제20회 성산미술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자본주의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스테인리스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고, 매일경제 TV <아름다운TV갤러리>에 미술평론가로 출연중이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