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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95)]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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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95)]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계절의 변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새싹들이 다투어 돋아나던 봄날이 어제 같은데,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나의 눈은 펑펑 내리는 눈으로 행복하다 못해 환상적인 시간을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날은 마냥 고향이 그립다.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친구들, 그들과 함께 걸었던 추억의 길을 걸어보고 싶은 시간이다. 인생 마흔을 넘기며,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건가?’ 하는 물음을 던진 박성우 시인의 '창문엽서'가 그리운 고향을 대신한다.

"……마흔이 넘은 뒤로는 '어떻게 사는 게 나답게 사는 건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야말로 '나답게' 살아가는 내 곁 사람들의 삶을 유독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번지르르한 겉보다는 늘어가는 굳은살로 세상사는 이치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새삼 크고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아갔다. 그저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한껏 기분이 좋아지는 지고지순한 삶이라니!……"

그렇다. 박성우 시인의 글처럼 우리는 너무나 남을 의식하며 세상살이를 스스로 어렵게 만들어 스트레스에 노예가 되는 경향이 있다. 삶은 자신이 행복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기 위해 책이나 신문, 잡지, 매스컴을 통해 무지막지하게 지식을 쓸어담지는 않았는가? '늘어가는 굳은 살'로 세상사는 이치를 깨닫는 나이가 적어도 마흔은 되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은 기준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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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타고 올라온 담쟁이가 손을 펴 보이던 봄날이었다. 마당에 나가 빨강 우체통을 만져보면서 나는 이 높고 순한 사람들과 풍경을 엽서에 빼곡히 담아 그대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중략)……다행히 창비문학 블로그를 통해 게으른 '창문 엽서'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잉크통과 펜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엽서도 필요치 않다. 이 얼마나 글쓰기가 좋은 세상인가. 마음먹기에 따라, 입맛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블로그든, 카페든, 밴드든, 브런치든, 페이스북이든 자신의 넋두리도 좋고, 무엇이든 타이핑하면 글이 되는 세상이다.

박성우 시인은 담쟁이 창문 앞 창가에 앉아 그대에게 '창문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창비문학 블로그'였다. 우체통이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노트북으로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야 폼이 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창문 엽서'를 통해 전해오는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쉬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삶을 공유하면 이 나니 행복한가?

"정읍터미널에서 섬진강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내리면 거기가 우리 마을이다. 자두나무 정류장에는 언제나 섬진강 물줄기인 옥정호가 마중 나와 있고, 벚나무를 따라 안길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종석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침동(종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우리 마을 장금리 수침동은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 안겨 있는데……"
음력 칠월 보름, 백중날에 마을회관 앞 모정으로 나온 할매들이 모시를 다듬는다. 모시를 다듬는 할매는 셋이다. 백국형 할매(남동떡, 88)와 이아순 할매(마장이떡, 88) 그리고 양봉순 할매(가춘떡, 92)가 새색시 같은 얼굴로 날랜 손을 놀린다. 섬진강 물줄기를 휘돌아 종석산 자락의 수침동 종암마을 모정에서는 '무더기무더기 모여 앉아 노는 듯 일하고 일하는 듯 놀다보면 금시 일이 마무리' 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창문 엽서'에는 우리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 시인의 멋진 사진(모시떡 33쪽)들이 적절하게 턱허니 자리 잡고 앉아 독자인 그대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미는 '덤'이라는 사실이다.

"내 친구 갑선이는 농부다. 팔년 차 블루베리 농사꾼이다. 제아무리 잡풀이 밭으로 밀고 들어와도 약 한번 친 적 없는 고집불통 농사꾼이다. 오랜만에 갑선이에게 전화를 넣는다.……"

"대혁 씨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총각이다. 스물두어살 무렵, 강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을 입구 정류장 옆에 자두나무를 심은 총각이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마흔여섯 살 총각 대혁 씨는 자두나무 정류장 몇발치 옆에서 매운탕집을 한다.……"

"내 친구 성준이는 면내 유일한 공식 '포수'다. 멧돼지가 출몰하여 농작물을 파헤치기라도 하면 유해조수전담퇴치반인 성준이가 현장으로 달려나가 해결한다.……(중략)……역시나 성준이의 사격실력은 어마어마했다. 남자 넷 여자 넷 도합 여덟 명이 벌인 사격대회에서 성준이는 탁월한 사격실력을 선보이며 뒤에서 일등을 했다."

'그대 안의 블루베리, 갑선이', '자두나무 총각, 대혁 씨', '그 많던 고구마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성준이' 등 어느 하 이야기도 버릴 수 없는 시인의 글쓰기에서 에서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농촌의 아름다움을 그냥 있는 그대로 글로 표현해 독자인 그대들에게 전해주는 정말 고마운 시인이다.

자두나무 정류장이 있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시인 박성우. 그를 통해 우리는 '사람'을 통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순박한 시골 청년이 해맑게 웃으며 반겨주는 곳, 그 풍경을 '창문 엽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 보자.

독자인 그대들이여. 하나의 욕심을 가져보자. 그립고 잊힌 추억의 그것들에게 정성을 다해, '창문 엽서'를 써 보자. 가슴이 따스해진다. 코흘리며 웃어 주던 아랫집 초등학교 친구 김영자가 보고 싶은 날이다.
박여범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편집출판팀 연구원(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북 용북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