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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광기의 군중심리 분석한 창작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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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광기의 군중심리 분석한 창작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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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
군중의 집단적 광기와 부정적 양상을 표현할 때 나치즘, 마녀사냥, 인터넷 공격 같은 말을 쓴다. 군중 심리는 자신의 참 모습을 잊고, 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기습적 공격성을 유도한다. 선동적 공격은 시공간을 이동하며 반복적으로 자행되는 사회의 한 모습이다. 이 작품은 이런 성향의 우리가 아무런 죄책감이나 성찰없이 군중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착안한다.

안무가 이지현은 무대를 유대인 포로수용소로 설정하고 집단적 광기가 몰고 온 공포와 불안, 그 안의 평정을 묘사해낸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군중 속 상하관계를 식재료 ‘소시지’로 시각적 요소를 부각시키고, ‘호루라기’로 청각적 요소를 가미하여 다양한 요소들이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도록 만든다. 붉은 세트와 소품은 카키색과 조화를 이룬다.

작품 이미지와 무용수의 캐릭터에 맞게 디자인된 의상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는 두건과 무릎 한 뼘 아래 정도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넓은 원피스, 밑단의 끝처리를 하지 않아 풀어지는 실들은 유대인들의 당시 공황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용수의 캐릭터를 살리고 선이 잘 보이도록 의도된 의상은 관객들에게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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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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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
1장 ‘그곳으로 향하는 유대인’은 암전 속 음악에 따라 조명이 서서히 들어오면서 무대 뒤쪽의 무용수들을 비춘다. 죽음을 앞둔 군중집단의 피해자 유대인의 모습이다. 멜로디 없이 긴장감 넘치는 효과음만 들린다. 괴로움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커질수록 음악도 빨라지며 컷 아웃으로 암전된다.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며 음악과 조화를 이룬 무용수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2장 ‘빨간 혀’는 과거의 군중심리를 보여주는 ‘나치즘’의 씬이다. 무대 뒤쪽 일직선으로 앉아있는 무용수들은 원형의 조명을 차고 앉아있다. 한정적 움직임을 표현하는 1장보다는 밝은 조명, 니꼴라 피오바니 작곡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가 음악으로 사용된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음악과 대비되는 비참한 처지의 유태인들의 움직임이 강조된다. 수용소 이미지를 상징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오버랩 되고, 북소리가 낮게 깔리며 음악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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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
3장 ‘열 개의 손가락’은 현대사회의 군중심리를 보여주는 ‘마녀사냥’ 씬이다. 반복되는 정적 멜로디가 호루라기 소리를 돋보이게 한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 속에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아닌 연기적 요소가 부각된다. 원형의 조명은 집단의 형태와 피해자를 보여주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누워있는 무용수 위의 원형 조명은 홀로 남겨진 피해자의 모습을 강조한다.

4장 ‘악순환의 고리’는 군중의 정신적 특징을 표현한다. 암전으로 모든 무용수들이 군중집단이 되고 의미가 확장된다. 끝날 것 같은 현악기 소리에서 새롭게 효과음이 이어진다. 무용수들이 숨을 내쉬면서 음악은 달라지지만 흐름은 계속된다. 작품에서 움직임이 가장 많은 씬이다. 군중의 힘이 커짐에 따라 음악은 웅장해지며, 그 속에서 개인이 사라짐에 따라 반복적으로 강한 사운드가 무대를 장악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조명이 사용된다.

4장의 음악이 웅장하게 끝나면 ‘인생은 아름다워’의 음악이 멀리서부터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악순환의 반복, 한편의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되돌아간 의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부정적 양상들을 바로잡자.’는 안무가의 의도가 깔려있다. 안무가는 나치즘을 대변하는 길게 연결된 빨간 실과 생존과 직결되는 목에 걸린 소시지로써 상징성을 드러낸다. 수많은 소시지가 뜯겨져 무대 바닥에 깔리면서 나치즘의 몰락과 나치즘이 잘못된 사건이었음을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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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무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
5장 ‘작은 외침’에서 무용수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안무가(군중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개인의 모습)는 피해자의 마음을 공감하는 모습이다. 모순적 행동의 인간군상의 모습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소시지를 먹으며 호루라기를 부는 행위로 표현된다. 무용수의 움직임 보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주황색 조명, 다소 어두운 조명은 아련하고 여운이 남는 분위기를 연출하었다.

윤수미 무용단의 춤꾼 이지현은 2015년 차세대안무가로 선정되어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지현은 나치즘이라는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어 현재 우리 주변을 감돌고 있는 광기를 차단하고자 한다. 그녀의 상상은 밝은 음악에 맞춰 의미에 부합되는 움직임을 배치하고, 암울한 상황을 간결하게 풀어내어 한국 창작춤계의 기대되는 차세대 안무가임을 증명하였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