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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현대미술(1)] 난해한 현대미술이 전하는 메시지 함께 풀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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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현대미술(1)] 난해한 현대미술이 전하는 메시지 함께 풀어봐요

철학과 사상으로 점철된 작품
감상·해석하는 것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술·비예술 경계 모호
우리 일상생활에 녹아 있어

현대미술은 난해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손에 무언가를 쥐고 끄적거리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길고 긴 입시의 시기를 거치며 그리고자 하는 본능은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는 일부, 혹은 그리는 취미가 있는 일부 사람들만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어떨까요? 모두가 사랑해마지 않는 인상파 작가들의 밝고 예쁜 그림들,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풍경화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는 명화들을 감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요? 우리의 눈은 추상회화가 그려진 캔버스 속에서 무언가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찾다가 좌절하기 일쑤이고 소위 설치라는 장르에서는 이러한 좌절감이 더해집니다. 간혹 현대미술을 전시한 전시장에서 작품과 쓰레기를 구별하지 못해 작품이 청소되는(?) 사건이 일어나 기사화되는 것을 보면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만 느끼는 현상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경매시장에 나온 현대미술 작품이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은 평생 구경도 못할 천문학적인 액수로 거래될 때 우리의 절망감은 극에 달합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1969년작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Three Studies of Lucian Freud)’가 1억4240만달러(경매 수수료 포함, 약 1756억5040만원)에 거래되어 최고가를 기록했을 때, 끔찍한 이미지의 이 그림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왜 저 그림이 그토록 비싼가’라는 의문을 품곤 했습니다. 이쯤되면 “예술은 사기다”라는 백남준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 작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1969이미지 확대보기
프란시스 베이컨 작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1969

그러나 소위 말하는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이런 용어가 등장하는 현대미술이 등장한 지도 거의 한 세기가 다 되어갑니다. 이제 미술은 디자인, 영화 등 다른 시각문화 분야와도 크게 구별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아트나 디지털아트 등 21세기의 미술은 게임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소위 ‘현대’란 명칭을 단 이후 예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너무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게 아닐까요?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예쁜 이미지들, 보고 마음 편한 이미지들만 ‘진정한 예술’로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실제로는 무식하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저게 무슨 예술이야”를 외칠 용기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미술의 변화는 단지 이미지의 변화가 아닙니다. 시대의 모든 변화상을 가장 통찰력있고 예리하게 예술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존의 미술 작품들은 대개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이라기 보다는 공공적 목적이 주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조각품은 대개 성당이나 교회, 궁전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고, 회화 역시 성경의 중요한 장면을 그리거나 왕 혹은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문생산에 의한 예술품은 제의적인 목적이거나 어떤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설득을 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목적에서도 예술작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왕권이 약해지고 사회가 산업화, 자본화됨에 따라 예술가는 작품을 ‘전시’라는 시장에 선보여 대중의 선택을 받게 되는 일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예술의 가치가 ‘제의적 가치(Kultwert)’에서 ‘전시가치(Ausstellungswert)’로 이동했다고도 설명합니다. 또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인한 카메라의 발명 등으로 사람들은 기존에 못하던 것-예를 들어 달리는 말의 다리 모습 등-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예술의 기능 상당부분을 이 견고한 기계에 빼앗기게 됩니다. 특히 초상화 분야가 그랬습니다. 예술은 이제 상당히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예술가는 후원자(patron)로부터 독립해 자신이 원하는 어떤 주제든지 표현할 수 있지만,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직접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게 된 것입니다.

제프리 쇼 작 읽을 수 있는 도시, 1988-1991이미지 확대보기
제프리 쇼 작 읽을 수 있는 도시, 1988-1991
따라서 작품은 작품을 보는 감상자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현대미술이 관객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지요. 이러한 소통의 중요성은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상호작용성이란 간단히 정의하면 ‘사용자가 매체로 자신의 경험을 직접 조작하고, 매체를 통해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입니다. 상호작용이란 기술적 의미에서는 사용자가 컴퓨터 프로세스에 개입해 실시간으로 자신이 개입하여 조정한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을,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대화와 교환에 기반을 둔 인간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뜻합니다. 예술에서의 상호작용성은 매체이론을 통하여 특히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 작품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이 접근하는 이미지나 텍스트를 가동시키거나 변화시켜 작품의 완성 및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성은 관객이 직접 작품을 변화시키는 미디어아트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이지만,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작품들, 그리고 물리적으로 작품과 소통하는 작품들 또한 포괄적인 의미에서 상호작용적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작 캔디 피이스, 1991이미지 확대보기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작 캔디 피이스, 1991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며 영상으로 보이는 텍스트 사이를 여행하는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읽을 수 있는 도시(The Legible City)’(1988-1991), 사탕더미를 쌓아놓고 관감객들이 가져갈 수 있게 하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캔디 피이스(Candy Piece)’(1991), 그리고 온 화면을 색으로 물들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명상의 공간에 빠져들게 하는 마크 로드코(Mark Rothko)의 작품까지 표현방식은 달라도 모두 상호작용적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의 미술 이론가인 니콜라스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상호작용’이라는 용어 대신 ‘관계 미학(Esthetique Relationnelle)’이라고 지칭하지만 작품 그 자체의 완결성을 넘어서서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크 로드코 작 주황과 노랑, 1956 이미지 확대보기
마크 로드코 작 주황과 노랑, 1956

‘응답하라 현대미술’ 시리즈에서는 난해한 현대미술이 관객한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며, 관객들은 이를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지 밝혀내고자 합니다. 사실 철학과 사상으로 점철된 현대예술 작품들을 쉽게 해석하고 감상하는 것은 결코 쉽거나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되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재에 예술은 사실 어느 때 보다도 우리 삶에 가깝게 녹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접하는 광고, 영화, 디자인 이 모든 것에 사실은 현대미술이 알게 모르게 숨어있으니까요. 하얀 벽면에 걸려 숨소리, 발걸음 소리조차도 조심스럽게 감상해야 했던 미술들을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불러보고 그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모두 눈을 뜨고 불러보세요. ‘응답하라, 현대미술!’ 어쩌면 고상한 척 전시장에만 갇혀있는 듯한 그 작품들도 우리에게 소리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 어려운 친구들과 ‘상호작용’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마세요. 어렵다고 붙잡고 끙끙 씨름하는게 아니라 같이 놀며 즐겨볼테니까요!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