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현대미술(4)] 기계와 속도가 가져다주는 희망찬 흥분, 미래파
기계문명을 미술에 끌어들여차가움과 속도 주제로 삼아
정적인 자연과 인간 묘사하던
기존의 예술 ‘과거주의’로 부정
미래파가 희망했던 인류 미래
더 이상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매치는 결국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1972년 튜링상을 수상한 컴퓨터과학자 에츠허르 데이크스트라(Edsger W. Dijkstra)는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대략 ‘잠수함이 수영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까운 미래에 계산을 넘어서 생각을 하는 기계들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기계 문명에 대한 우려와 흥분을 낳았습니다. 그와 함께 한국고용정보원이 우리나라 주요 직업 400여개 가운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을 활용한 자동화에 따른 직무 매체 확률이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을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가 눈길을 끕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직업 1위가 화가 및 조각가입니다. 예술가의 ‘창의성’을 컴퓨터와 기계가 대체하기 힘든 것으로 본 것인데요, 일찍이 이를 예견했는지 알 수 없지만 기계 문명을 찬양한 미술사조가 20세기 초에 등장하게 됩니다.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파급된 ‘미래파(Futurism)’는 기존의 예술을 ‘과거주의’라고 부정하며 현대의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에 어울리는 새롭고 역동적인 미래의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1901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의 ‘미래주의 첫 선언’은 젊음, 기계, 운동, 힘, 속도를 예찬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영광은 새로운 아름다움에 의해 강화되어왔다. 그것은 바로 속도의 아름다움이다. 마치 터질 듯이 헐떡이는 뱀 같은 파이프로 장식된 멋진 경주용 자동차, 폭발하는 화약으로 뛰어드는 미친 듯이 달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스 섬의 승리의 여신상보다 아름답다.”

이 시기는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어서 이러한 급진적 낙관주의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미래가 흥미롭고 영광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미래파는 보편적 힘인 역동성을 회화에서 보여주고 싶어 했으며 전쟁을 빠르고 소란스러우면서도 극적인 무언가로 여겼으니까요. 그들이 찬미했던 미래를 사는 우리들은 더 이상 속도와 기계, 역동적인 힘을 찬양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보다도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계문명을 두려워하며 과거와 현재에 지금을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미래파는 기계문명을 미술에 끌어들여 기계가 가진 차가운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기계문명의 속도가 주는 흥분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소설 『느림(La Lenteur)』에서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놓이고, 그는 비신체적·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의 엑스터시에 몰입한다”고 썼습니다. 미래파는 특히 그런 ‘속도의 엑스터시’에 주목했습니다.
미래파는 정적인 자연이나 인간을 주로 묘사하던 과거의 미술을 부정하고 역동성과 속도 그 자체를 묘사합니다. 미래파의 많은 작가들은 입체파로부터 영향을 받아 입체파에서 분해되고 재조립된 대상의 이미지와 더불어 움직이는 대상의 순간순간을 포착해 이를 다시 변형해 동시성의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강아지의 움직임을 포착해 한 화면에 담았습니다. 강아지의 과거와 현재 움직임의 궤적이 드러나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강아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견해 볼 수 있습니다. 몸은 상대적으로 길고 다리는 상대적으로 짧은 닥스훈트의 재빠른 움직임은 바로 옆 주인의 신발의 움직임과 함께 경쾌함을 전해줍니다. ‘경주 자동차(연구). 추상적 속도 Speeding Car (Study). Abstract Speed’에서는 자동차의 속도를 급히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과 그 궤적, 그리고 역동적인 느낌으로 묘사하고자 한 그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발라는 “속도 있는 대상이 움직일 때 다른 모든 것도 움직인다. 차는 계속 쇄도하여 다른 모든 것 속을 통과하고 있다 그것은 빛의 원자를 흐트러뜨리며 전율을 남기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미술비평가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 대학원 전시디자인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