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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칠의 음악기행(3)] 불가리아 편③ 불가리아의 나의 음악생활…'음악의 땅' 불가리아서 지휘자로 인정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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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칠의 음악기행(3)] 불가리아 편③ 불가리아의 나의 음악생활…'음악의 땅' 불가리아서 지휘자로 인정받다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대동여지도'영화음악 녹음, 소피아 BNR hall(2016년 7월 9일)이미지 확대보기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대동여지도'영화음악 녹음, 소피아 BNR hall(2016년 7월 9일)
2006년부터 현재까지 불가리아에서 나는 많은 지휘를 해왔다. 처음 2, 3년간은 불가리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연간 30~40회 연주를 했다. 지금은 다른 나라 연주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일 년에 소피아필 세 번, 플로브디프 오케스트라를 4번 정도 지휘한다. 여느 지휘자처럼 나도 지휘 초창기에는 이력과 경력을 쌓기 위해 지휘를 많이 했다.

보통 사람들은 서유럽, 러시아, 터키 예술가는 금전을 안 따진다고 생각하는데, 클래식 연주자들도 연예인과 다름없이 개런티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 지휘자인 나도 공연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때문에 매니저가 필요하고,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로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어느덧 10년 이상의 지휘 경력으로 개런티가 많은 나라를 찾아다니는 편이다.

연주회에서 인기란 사실 솔리스트를 말한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직장인들인 셈이다. 그들은 연주로써 관객들에게 만족을 주고 월급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솔리스트들 보다는 인기의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인연이 깊은 소피아 필하모닉은 국가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정규 시즌 이후에 해외연주를 많이 하는 편이다.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는 아시아 투어에서 많은 이익을 본다. 세계적 오케스트라는 시즌 이후인 여름동안 많은 아시아 투어를 한다. 그들의 대표적 수입은 한국, 일본, 중국 같은 아시아 투어에서 나오는 편이다. 축구와 마찬가지 이치겠지만 마케팅 상, 많은 아시아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베를린 필이나 뉴욕 필 등에서 단원이나 수석으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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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기획도 외국 매니지먼트가 기획하면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많은 세계적 연주자나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의 안정적 생활을 위해 그들의 만들을 잘 듣는 편이다. 아무리 세계적 콩쿠르를 우승하더라도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매니저의 입김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역사적 명성, 음악적 재능, 건설적 충고는 같은 선 위에 있는 것이다.

불가리아에는 주요 도시마다 예술종합학교가 있다.그 중 수도에 있는 국립 소피아 음악학교가 유명하다. 예비학년 포함 1~12학년까지(초ᆞ중ᆞ고)의 과정이 있고, 학과는 성악, 기악, 작곡 등 음악 전반의 과정이 있다. 성악만 변성기가 지난 고등학교 때인 11학년부터 13학년까지 3년 과정이 있다. 학과목은 국ᆞ영ᆞ수 등 모든 과목을 배워야 하고, 음악은 실기위주 교육이다.

불가리아의 유명 음악가들 대부분이 이 음악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철저하고 튼실한 음악교육을 통해 훌륭한 음악가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년 이 학교에서는 어린이, 청소년 등 인재 발굴을 위한 국제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내년 2017년 이면 100번째 개교기념일을 맞아 뜻 깊은 13번째 영 비루투오소 국제 콩쿠르가 개최될 것이다.

내 삶에서 열정적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란 없었을 것이다. 가끔 나는 일본에서 가라데를 제패한 최배달이 생각난다. 난 항상 도전하면서 다녔다. 불가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라가 못산다 해서 예술가들의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산주의를 겅험한 나라들은 예술적 깊이와 자존심이 강해서 아시아 지휘자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나에게 실수란 바로 음악계에서 퇴출을 의미했다. 완벽하게 지휘를 해야만 말이 없다.

믿기 힘들겠지만 난 지금까지 지휘하면서 실수를 한 적이 없다. 내 공연 중 중요한 공연은 유투브에서 다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인들은 지휘자가 완벽하지 않으면 지휘자의 말을 무시한다. 그들의 음악인데 작고 젊은 아시아 지휘자의 말을 들을 리 없다. 나의 장점은 머리로 지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늘 가슴으로 지휘한다고 생각하고 노력을 해왔다.
내가 즐기고 슬퍼하고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다. 난 한번 연주한 교향곡은 왠만하면 반복해서 연주를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곡과 협연곡들을 연주했다. 100개 이상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거의 모든 중요한 교향곡은 젊은 나이에 다 연주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언제든지 어떤 곡이든 자신감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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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는 우리의 80년대와 닮아있다. 자본주의 체제로 바꾸면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예술인들은 생활고를 겪고 있다. 일반대학교 교수들의 월급이 100만 원 정도이다. 물가는 한국의 2/3 수준이지만, 공산주의 시절 무상이었던 집값은 월세가 50만 원 정도로 그리 싼 편이 아니다. EU 국가가 된 이후, 많은 젊은 인재들이 서유럽으로 나가게 되었다.

불가리아는 현재 EU 국가들의 많은 투자로 경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경제발전에 집중하다보니 문화예술계는 사회주의 시절보다 더 어려워졌다. 클래식을 보는 사람과 전공하는 사람도 감소하고, 정부의 지원도 줄어들고, 예전의 예술계보다는 많이 위축된 것 같다. 요즘 불가리아에도 젊은 관객보다는 노인층이 더 많다.

내 경험상 불가리아 단원들은 말이 많은 것 같다. 가끔 그 말소리가 연습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언제가 소피아필을 연습하는데 관악기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난 조용히 지휘를 멈춘다. 그럼 단원들은 의아해 한다. 왜 멈출까? 그리고 난 나에게 연습은 연주와 같다고 애기를 한다. 연습도 연주처럼 난 하니까 여러분이 떠들면 내가 연주를 못한다고. 그러면 단원들은 날 이해하고 조용해진다. 음악은 관중을 위한 것도 있지만 본인들의 만족도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화합이 되면 더욱 더 멋있는 연주가 된다.

1시에 연습이 끝나기 때문에 보통단원들은 두 개의 직장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호른을 하는 단원 중에 라디오 DJ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만큼 레슨으로 사는 사람이 없기에 음악 이외의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보통 소피아필은 매주 목요일이 정기연주회이다. 그럼 난 일요일에 도착해 월요일 아침 10시 부터 오후 1시까지 연습을 한다. 쉬는 시간은 정확해야 한다. 1분이라도 늦으면 단원들은 난리가 난다. 단원들이 날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보통 5분전에 연습을 끝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국에 가서 여행하고 그럴 것 같지만 나는 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거의 연습 후에 오케스트라가 정해준 숙소에서 컴퓨터로 한국에서 못 본 드라마나 예능프로를 본다. 나는 원래 여행에 취미가 없어 숙소 1km 범위 내에서 생활을 한다. 나는 아직 지휘자로서는 젊은 나이여서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곡들을 좋아한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프로크피에프, 라프마니노프 등 러시아 곡을 선호한다.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 영화음악 녹음, 소피아 BNR hall(2016년 2월 21일)이미지 확대보기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 영화음악 녹음, 소피아 BNR hall(2016년 2월 21일)
브람스는 50대에 교향곡을 만들었다. 그때 50대는 지금의 80대에 해당한다. 그러니 젊은 나의 경험으로 완벽한 브람스를 지휘하기는 힘들다. 작곡가의 나이에 따라 지휘의 느낌이 다르다. 지휘자는 창작자가 아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민족성이 중요하다. 러시아 오케스트라가 러시아 곡을 잘 연주하는 것도 그들의 느낌을 악보에 적지 않아도 러시아인들은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잘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곡의 선택은 내 몫이 아니라 극장의 선택이다. 보통 내가 연주하기 전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추천하지만 대체로 극장측에서 연주곡을 정해서 온다. 극장은 수입의 구조이기에 관객의 입맛대로 프로그램을 정하는 것이 많다. 그러다보니 내가하고 싶은 곡보다는 극장이 원하는 곡을 많이 지휘하는 편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인맥관계를 술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외국에 있을 경우 음식이 느끼해서 가끔 맥주 한 병 정도 마신다. 술이란 같이 마시는 사람이 있어야 그 분위기에 술을 마시는데 십년 이상 같이 일하는 매니저 이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 지휘자는 단원들하고 개인적인 만남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외국생활은 외롭다. 나의 친구는 비디오이다.

한국에서 불가리아로의 직항편이 없어서 이웃 나라를 경유해간다. 가까운 나라는 터키이다. 한국에서 터키 직항은 많다. 그러나 난 십년 동안 가격이 싼 편인 러시아항공을 타고 다닌다. 마일리지가 벌써 100만, VVIP 고객이다. 3년 전 만해도 일반석을 타고 다녔다. 개런티가 그리 많지 않아서 보통 외국오케스트라에서 초청할 땐 내 개런티에 비행기 표값을 포함해서 보낸다. 어떤 때는 오케스트라가 내 표를 사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그래도 개런티가 많이 올라 비즈니스 석을 타고 다니는 정도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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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들이 고난이도 곡에 따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든 현악기는 그다지 문제가 없지만 말러나 차이코프스키 곡들 중에는 브라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번은 스트라우스에 곡을 지휘하는데 호른이 연습 때부터 실수를 많이 했다. 그럴 경우 보통 지휘자는 그 호른 연주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나는 내가 호른 주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힘든 사정을 잘 안다. 그래서 일단 아무 지적을 안한다.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고, 악기 특성상 많이 불지말라고 충고한다. 중요한 것은 연주가 우선이라고 하면 그들은 스스로 노력한다.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된다. 그들이 자심감을 갖고,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할 책임이 있다.

불가리아의 시장은 우리나라의 오일장 같은 장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오일장이 아니라 매일 열리는 시장이다. 시장마다 다르지만 보통 각종 신선한 과일, 야채, 꿀, 견과류, 잡동사니 등을 살 수가 있다. 많이 사거나 말을 잘하면 인심이 좋아서 깎아주기도 한다. 한국의 70, 80년대와 비슷하다. 불가리아의 시골인심은 넉넉하다. 순수하고, 인심이 많고, 손님대접도 푸짐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다. 길가는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모른 척 하지 않고 이웃 사람들과도 서로 돕고 잘 지낸다. 한번은 불가리아 시골에 놀러갔다가 내가 어릴 때 봐 왔던 가부장적인 가정을 본 적이 있다.

불가리아인들이 존경하는 세기의 국민음악가는 오페라 가수 드라마틱 소프라노 게나 디미트로바와 카탸 뽀뽀바, 베이스로는 보리스 흐리스토프와 니콜라이 갸우로프, 작곡가로는 판쵸 블라디게로프와 도브리 흐리스토프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기억에 남는 불가리아 영화는 조르니차 소피아 감독의 『화성에서온 밀라』(2004), 마야 비트코바 감독의 『빅토리아』(2014), 크리스티나 그로제바, 페타르 벨채노프 공동 감독의 『더 레슨』(2014)이다.

이영칠(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칠(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
불가리아는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의 사이에 있다. 음악 스타일도 사회주의 국가일 때 러시아와 동독의 영향을 받아 연주자들은 모든 음악을 잘 소화해낸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성악과 현악이 발달해서 세계적 연주자가 많다. 인구는 다른 나라보다 작지만 그들의 민족성은 500년의 터키지배에서도 고유한 문화를 지킬 정도로 우리나라의 특성과 비슷한 점이 많다. 오페라와 연극을 사랑하는 민족이고 유럽 내에서도 불가리아 음악인을 인정한다.

공업화에 역점을 둔 경제발전으로 국민총생산은 인구증가율보다 가파른 속도로 성장했다. 흑해 연안의 해수욕장과 유흥지를 중심으로 한 관광업은 중요한 외화수입원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동유럽인, 러시아인, 터키인들이다. 급속한 도시화로 이촌 현상도 두드러진다. 도시인구의 비율이 현재 70%에 육박하고 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주택난이 심각하여 새로운 주택단지의 조성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 평균수명은 남자 68세, 여자 75세이다.

불가리아는 제2차 발칸 전쟁의 패전으로 도브루자를 루마니아 왕국에, 마케도니아 지방을 그리스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에 할양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에 가담하여 패전하여 서부 트라키아를 그리스에 할양하는 비극을 겪은 바 있다. 강한 민족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불가리아는 경제재건 후 문화예술, 특히 음악 중흥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불가리아, 여전히 매력이 넘치는 음악적 기회의 땅이다.
이영칠(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