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통적인 공포의 대상인 악마나 유령 등의 캐릭터들도 따지고 보면 그 이면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죽음 이후에 그것을 초월한 어떤 존재들이고, 그들이 다시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니까. 죽음이라는 막연함에 부딪힌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캐릭터들은 그래서 두려움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는 역할에 있어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흡혈귀, 늑대인간, 미이라, 에일리언 등 수많은 공포 캐릭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나는 좀비가 가장 무섭고 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좀비는 1968년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수많은 아류작이 나타나면서 공포 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어원 자체는 부두교의 흑마술에서 왔다. 주술로 소생시킨 시체를 일컫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좀비는 형벌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무런 의지가 없어 노역에 동원되는 노예일 뿐 사람을 공격하고 잡아먹거나 감염시키는 것은 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러니까 좀비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 속에서 변화를 거듭했고 그 결과 비주류 장르에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로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좀비는 그 세기말적 분위기 때문에 실사로 제작하기에 용이한 장르는 아니다. 분장도 그렇고 CG도 그렇고 많은 제작비를 필요로 하니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유달리 웹툰을 통해 좀비물이 발전하고 있다. 제 아무리 수많은 좀비가 쏟아진다고 한들 펜으로 모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GQ
투믹스에서 연재 중인 클로버 작가의 'GP'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런데 그 공간이 전세계에서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바로 북한과의 경계이자 대한민국 최북단, 중부전선 비무장지대이다. 비무장지대 내에서도 남측경계 임무를 맡고 있는 DMZ의 섬 같은 곳인 'GP(Guard-Post)'가 이야기의 주무대이다. GP는 북한을 경계하기 때문에 철저한 통제와 보안 아래 실탄을 보급 선별된 군인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어느 날, 이 곳에 북한 귀순자가 나타나게 된다. 매뉴얼에 따라 군인들은 그를 맞이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귀순자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단순히 정신 이상으로 판단한 군인들은 그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 습격을 당한 군인이 좀비가 된다. 그리고 GP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작가는 아무리 훈련된 군인이라고 해도 인간의 본능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밀한 자료 조사로 묘사된 GP의 생활군상을 엿볼 수 있는 연출도 신선하다.

조선좀비실록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곤마 작가의 '조선좀비실록'은 독특하게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팩션 좀비물이다. 15세기 초 조선, 남쪽에서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퍼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 사태의 배후를 왜구로 설정해놨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사람이 좀비가 되는 역병을 심은 것이다. 궁정에서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신녀의 힘을 빌어 고귀한 피를 가진 여인 진을 탐라(제주도)에 데려가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좀비들이 궁까지 입성하게 되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결국 진은 세자와 단둘이 탐라까지 향하는 길에 오른다. 그리고 진을 흠모한 백정 순신이 그들과 합류한다. 이 작품은 좀비가 등장하지만 액션, 판타지 장르의 성격이 더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상의 조선 시대와 왜구가 좀비를 이용해 조선을 침략한다는 참신한 설정이 돋보인다. 조선시대와 좀비의 조합이라니 그야말로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단 호러 장르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데들리 키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박만두 작가의 '데들리 키스'는 좀비는 징그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좀비는 놀랍게도 꽃미모를 가졌다. 좀비에게 키스를 당하면(공격성은 있으나 물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강제 키스를 한다) 전염이 되는데, 갑자기 얼굴 조직이 변하면서 꽃미모를 갖게 된다.
그 이유는 좀비화의 원인이 정체불명의 벌레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좀비의 속에 있다가 키스와 동시에 옮겨간다. 그리고 숙주를 조종해 좀비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연가시를 연상케 하는 설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엑시구아라는 기생충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아름다운 설정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좀비물이 탄생했다.
작품은 여자 같은 외모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자로 착각하는 남자 은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와 동시에 의문의 과거를 갖고 있는 아이돌그룹 핑키돌스의 멤버 한나와 그의 오빠, 그리고 순결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등장시킨다. 이 오묘한 조합 만으로도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데 좀비까지 더해지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절묘한 개그 센스도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재미를 더한다.

좀비원정대
코미카에서 연재 중인 좌승훈 작가의 '좀비원정대'는 최근 개봉한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인생 루저의 성장기 형식이다. 멀지 않은 미래, 세상은 좀비로 가득하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들이 있으니 바로 은둔형외톨이들이다. 그렇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오타쿠, 히키코모리이다. 일명 타쿠니쿤이라는 이 남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오타쿠 이미지에 맞게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
그는 자기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채 '로사'라는 웹툰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회를 남긴 시점에 작가가 사라진다. 타쿠니쿤은 작가가 좀비들에게 습격 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그를 구하고 '로사'의 마지막회를 보기 위해 위대한 외출을 감행한다. 좀비는커녕 살아있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던 그는 이 일념 하나로 모든 장애물을 물리치면서 점차 성장해나간다. 정의를 주제로 한 웹툰 '로사' 덕분에 그가 겁은 많지만 정의로운 인물이었다는 설정이 꽤나 설득력 있다.

투믹스 대표 김성인